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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Jul 17. 2020

어쩌면 세상에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더 신경 쓰며 살아왔나 보다

중학교 2학년, 유난히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는 날들이 많아지고 친구가 전부라고 생가하며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하하호호 웃는 게 일상이었고, 방과 후에는 친구네 집으로 놀러를 가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일들이 당연시되었던 학창 시절


사실, '관계'에 대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보게 되는 학창 시절이 나에게는 큰 부담감과 상처이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눈동자가 흔들리고 얼굴이 빨개지는 편이라 거짓말을 잘하지 못할뿐더러 좋고 싫음이 분명해서 싫은걸 좋다고 말하는걸 어려워했던 나에게 학창 시절의 인간관계는 어렵게만 느껴졌다. 학기 초가 되면 각자 반을 배정받고 그 속에서 우리는 일 년을 함께 할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진짜 깊은 우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겉으로 친한 친구인척 하는 사이가 많았기에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학기 초가 되면 일 년을 함께 지낼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일은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친구들과 조금 친해지려고 할 무렵 나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몇 달 동안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이 주 7일을 바쁘게 살았고, 친구들과 까워질 수 있는 기회는 저 멀리 날아갔고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기 시작했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이러다 진짜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세상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많이 느껴보지 못했을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을 나에게 너무나 큰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조금 더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소심하고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상처투성이의 아이였다


나를 챙겨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멀어짐을 느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깊은 동굴 속으로 꽁꽁 숨어들어갔고, 쉬는 시간이면 손을 잡고 화장실을 가거나 모여서 떠드는 시간 대신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누군가 나를 따돌리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가는 일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내야 할지 두려웠고, 그 누구에게도 내가 외롭다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깊은 어둠이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외로워야 할까 마음속으로 우는 날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었던 일이 하나의 사춘기 소녀의 마음으로 기억되고 있다


분명한 건 그 당시의 나는 참 많이 외로웠고, 힘들었다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기에 꼭 세상에 홀로 남겨진듯한 두려움과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지금은 그때의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걸 잘 알지만 그 당시의 나는 얼마나 어두운 터널을 홀로 걸었을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나의 상황을 탓하고, 소극적인 나를 탓하며 세상에서 진짜 혼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얼마나 나를 작은 사람으로 만들었던가






어린 시절의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면서도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많은 관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내편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휴무날이면 수많은 약속을 잡아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들어주고, 사랑받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노력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깊어질 것이라고 확신했고,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나의 호의가 권리인 줄 알고 나를 막 휘두르려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고, 나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수많은 관계를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다. 이렇게 한 명씩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누군가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고, 뻔히 나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실수일 거라고 나를 다독이며 관계에 대해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STOP, 관계로 인한 상처가 깊어질수록 진짜 관계에 대해서 정리가 필요했다

모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려고 했던 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진심 어린 마음일지 모르겠지만, 나를 갉아먹는 관계를 애써 안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대신
홀로 남겨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나를 더 아껴보기로 했다

어찌 사람이 한순간에 바뀔 수 있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노력이 필요했다. 관계에 대한 생각부터 행동까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관계에 대해 호의를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먼저였고, 타인을 배려하기보다 지금 나의 감정을 더 우선시하려고 노력했다


휴무날이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잡았던 약속들 대신,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만나고 돌아서면 행복하기보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관계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거절하는 게 무서워 잡았던 약속들을 조심스럽게 미루기 시작했고, 관계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넓혀 가기 위해 시간을 쓰기로 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썼던 시간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초록 초록한 풍경을 보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여전히 함께하고픈 이들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주 안부를 물었고 종종 얼굴을 보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 사이는 더 깊어져 갔다






홀로 남겨져도 괜찮다고 마음먹으니 나의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애써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는 대신 운동복을 입고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행복해졌다. 며칠 전부터 약속을 잡지 않더라도 '보고 싶다, 저녁 먹자' 한마디에 마주할 수 있는 이들과의 관계에 나의 마음은 더 풍요로워졌다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듣느라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공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고 관계를 위해 공감하는'척' 했던 시간 대신 나의 감정과 마음을 위해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나의 마음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혼자 보내는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서로의 삶이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도 있었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보면서 여전히 깊어지는 관계도 여전히 존재한다. 관계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니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가 더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관계에 집착하기보다 나와 인연이 되는 관계에 마음을 쓰고 있다, 넓은 관계는 아닐지라도 깊은 관계가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지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나에게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는 어쩌면 관계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에는 많이 아프고 상처가 되었던 기억들도 존재하지만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관계 덕분에 나는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었다. 집착을 버리니 오롯이 진짜 관계에 대한 애정이 가득 남을 수 있었다


누군가 나처럼 관계에 대해 집착하고 상처 받고 있다면,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노력할 시간에 '나'를 더 많이 생각하고 아껴줬으면 좋겠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기도 했고

관계에 대해서 집착하며 나를 갉아먹기도 하고

수많은 관계에 물을 주며 내가 메말라 갔던 시기를 겪고 보니

결국 삶은 혼자일 때 풍요롭다면 관계에 있어서도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면

나는 조금 더 관계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쏟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 혼자 일 때도, 함께 일 때도 우리는 풍요로운 행복감을 마주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처럼 혼자가 되기 두려워 관계에 대해 유난히 집착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대의 선한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다는 말과 함께 그대를 꼭 안아주고 싶다. 당신의 애정 어린 마음을 당신을 위해 더 많이 썼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잔잔한 윤슬이 빛날 것이고 그대의 빛나는 마음으로 타인을 안아주며 삶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와 나, 우리의 삶에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도 괜찮다

결국 우리는 함께 걸어가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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