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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Aug 15. 2020

아슬아슬한 관계의 끈을 이제 내려놓아도 괜찮을까

괜찮다,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쪽의 노력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언니 이번 주말에 밥 먹어요"


귀여운 연락이 왔다,  20살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그녀였다. 모든 게 어설펐던 인솔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났던 그녀다. 한참 공부에 취업에 힘들어하던 동생은 소소한 여유가 생길 때마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봐준다


늘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일이 익숙한 나는,

누군가 나에게 안부를 물어주는 일이 늘 고맙고 감사하기만 하다


오늘 무거웠던 마음이 동생의 귀여운 안부인사로 사르르 녹고 말았다


그녀와 나는,

알고 지낸 지 10년이 되어가는 인연이다




'언니 이번에는 제가 꼭 밥 한 끼 사드리고 싶어요'


6년 전 그녀에게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나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신기했다, 삼총사 중에서 유난히 나를 불편해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다


단둘이 밥을 먹자고 제안할 줄은 사실 상상하지 못했었다. 나를 기억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는데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했다


맛있는 초밥을 사준 그녀는,

오늘은 자신이 꼭 밥값을 계산을 하겠다며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몇 년 전 내가 20살이었을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피자를 사준적이 있는데 그게 매번 고마워 나에게 꼭 한번 밥을 사주고 싶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성인이 되어 나를 떠올리니 더 고마운 마음이었나 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이었다, 누군가는 당연시 생각했을 마음을 그녀는 나의 진심을 알아줬다. 그래서 자신이 번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나에게 꼭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망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누군가에게는 언니가 사주는 밥이 당연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자 고마운 마음이었다니

나는 그날 그녀에게 오랜 시간의 다정함을 배웠다






나는 늘 '스치면 인연'이라는 말을 믿고 살아왔다


스치기만 해도 너와 나는 인연이 될 것이라고 믿고, 나는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먼저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보기 위해 약속을 잡고, 우리는 그렇게 특별한 인연이 될 거라는 믿음이 강했던 시기기가 분명 존재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정답은 없겠지만, 내가 수많은 인연을 잡으려 하면 할수록 나의 에너지가 방전되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갔던 인연이 조금씩 깊어질수록 그 관계의 진짜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려 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여행 메이트로만 생각하려 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노력은 점점 물거품이 되어갔다

어쩌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말 자체가 부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관계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꼭 시소를 타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시소는 내가 한쪽으로 발을 힘차게 구르면, 반대편에서 또 한 번 힘을 힘차게 굴러줘야 한다. 어느 한쪽에서라도 아무런 힘을 쓰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면 더 이상 시소에서 함께 웃으며 시소놀이를 할 수 없게 된다


STOP,

한쪽에서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으면 관계에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우리의 관계 또한 멈춰버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시소가 멈췄다는 사실을 알고, 허공 위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상대를 쳐다봤다. 혹여나 내가 상대방에게 서운함을 안겨준 건 아닌지, 말실수를 한건 아닌지,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닌지 천천히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아무런 답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우리의 관계에는 큰 이유가 없었다. 내가 상대방을 서운하게 한 것도 아니었고, 우리는 각자의 삶이 바빠질수록 자신에게 소중한 관계과 어중간한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그 정도의 인연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 당시에 관계에 대한 집착이 커져 버렸을 때라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하나둘씩 나의 관계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자 진짜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관계는 한쪽의 노력이 아니라 양쪽의 노력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





밥 한번 먹자



우리는 여전히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어쩌다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누군가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을 떠올려 서로에게 연락을 해보기도 한다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연스럽게 조만간 밥 한번 먹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지만 딱 거기까지 라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우리의 시간에 '조만간'이라는 시간은 없다, 정말 이어질 관계였다면 그날의 대화가 끊기기 전에 한쪽에서 정확한 시간을 제시하고 서로 조율을 했을 테니까 말이다


더 이상 관계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돈독하다고 장담할 수 없고,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짧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잘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리의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는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너와 나, 우리가 얼마나 이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서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워간다






관계에 대해서 수없이 고민했던 밤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것만 같아 서운하기도 했고, 이렇게 우리의 인연이 끊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던 날들도 있었다. 누군가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면 너무 애써 관계에 대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만의 노력으로 이어졌던 관계는 어느 순간 끊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힘겹게 잡고 있던 끈은 상대방이 함께 잡아주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는 끊어지기 마련이다. 그 시기가 조금 당겨졌을 뿐이다.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속상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관계는 일방적인 노력이 아니다
관계는 양방향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많은 관계를 안고 살아가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요 우리, 약하고 보잘것없는 내 모습까지 사랑해주는 관계에 더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요. 존재만으로도 예쁜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관계라면 서서히 줄을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진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인연이었더라면 내가 잠시 인연의 끈을 놓더라도 상대방이 잡고 있으니 절대 끊어지지 않으니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관계, 넓지 않아도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헤엄치면서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요 우리


넓어지기보다 깊어지는 우리로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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