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현 Aug 21. 2020

산타할아버지 같은 아빠는 환갑에 뇌경색 진단을 받으셨다

슈퍼맨 같았던 아빠를 이제 우리가 지켜야 할 때가 왔구나

오후 5시

회사에서 한참 일을 하다가 조금 숨을 돌리고 있던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랑 병원에 왔어, 뇌경색인 거 같아서 검사받으려고 들어가셨어"


내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 아빠가 뇌경색 이라니, 말도 안 돼' 


사실 검사를 받고 있다는 전화였는데 나는 아빠가 뇌경색일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고, 순간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빠의 고혈압과 흡연, 그리고 뇌출혈로 쓰러지셨던 할머니와 고모가 계셨기에 가족력만 생각하면 아빠가 뇌경색이라는 것 또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응 알겠어 엄마, 검사 결과 나오면 알려줘"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갔던 엄마는 많이 놀랐을 것이고, 아빠는 자신의 아픔보다 일하고 있는 딸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최대한 늦게 알리셨을 것이다


후에 들었지만, 아빠의 뇌경색 증상은 언어 전달이 어려웠다고 한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버버버 하는 아빠의 대화에 엄마와 아빠는 점심쯤 대학병원으로 향했고 오랜 대기 끝에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역시나 엄마는 아빠가 뇌경색 일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과 함께 검사를 들어가고 나서야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렸던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빠의 뇌경색 소식에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선 엄마에게 달려가야만 했다, 엄마는 얼마나 놀랬을까


회사에 아빠의 입원 소식을 이야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흘러 당황스러웠다


아빠가 환갑이 되셨으니 충분히 몸이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왜 외면하고 살아왔던 걸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아빠는 건강할 거라는 착각 속에서 나는 내 삶을 채워 나가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아빠를 살피지 못난 딸이라는 생각만 가득 차올랐다


나는 왜 아빠의 건강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부모님의 나이쯤 되면 당연히 한두 군데씩 아프기 시작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내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 가까운 가족을 살피지 못했다는 마음에 하염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빠 뇌경색이라네 "


아빠의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그렇게 아빠는 환갑에 뇌경색 판정을 받으셨다, 정말 다행인 건 뇌경색의 부위가 크지 않아서 수술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고 원인을 찾기 위해 일주일 정도 입원해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하셨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맹장 수술 이후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빠를 두 번째 마주했다. 병실에 누워계셨던 할아버지와 꼭 닮아있는 아빠의 얼굴은 까맣고 한없이 말라 있었다. 아빠의 젊었을 적에는 오동통하고 남자다운 얼굴로 참 잘생겼었는데 말이다(나는 아빠를 꼭 닮아있어서 사실 나도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꽤 잘생긴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제 이렇게 많은 세월을 지나왔는지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애써 웃으며 아빠의 뇌경색 진단에 놀랐던 마음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이면 아빠 곁으로 가서 하루 종일 아빠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셨고, 나는 저녁시간이나 퇴근시간을 이용해 아빠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서 병문안을 갔다


언니와 동생도 병문안을 갈 때면, 아빠는 간호사에게 '우리 딸이에요'라고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 아빠에게 세 딸은, 아빠가 살아가는 힘이자 원동력이었던 거겠지






아빠가 퇴원을 했다


일주일 동안의 병원 생활은 활동적인 아빠에게 답답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엄마의 말을 따르자면, 아빠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1층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셨다고 한다


워낙 집돌이와는 거리가 먼 엄마 아빠 덕분에 우리 집은 대부분 집돌이 집순이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기에 아빠의 마음이 백번 공감이 된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으면 정말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기에 일주일 동안의 병원 생활에서 산책은 아빠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힐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에게는 한 가지 숙제가 남아있다


그렇게 아빠는 다행히 큰 문제없이 퇴원을 하셨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금연은 꼭 하셔야 된다고 몇 번이나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심장 쪽에서 흘러가는 피가 뇌 쪽으로 잘 흐르려면 우선 금연이 우선이라고 하셨다, 지금부터 금연을 해도 피가 깨끗해지려면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에 당장 금연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사실 아빠는 꽤 오랜 시간 타지 생활을 하셨다


젊었을 적, 세 자매와 엄마를 두고 해외로 나간 적도 몇 번 있으셨고 우리는 그때마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 어렸을 적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가 어렸을 적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었을 엄마는 세 자매와 함께 일상을 살아내느라 많이 힘드셨다


남편의 부재,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세 자매를 챙기는 것도 벅찼을 텐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니, 사실 그때의 일 때문에도 아빠를 종종 미워하기도 했다. 물론, 아빠는 우리 가족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테지만 네 가족을 두고 홀로 떠났을 아빠의 무책임에 엄마는 홀로 수많은 눈물을 흘리셨을 테니까 말이다


아빠를 미워했던 시간도 분명 있었지만, 내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해하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분명 힘들었을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지켜내 주신 분들이니까 말이다






엄마 아빠의 서른은 어땠을까


문득 내가 서른이 되고 엄마 아빠의 서른을 상상해 본다. '부모'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을 나이, 수많은 꿈을 바라보기보다 당장의 생계유지를 위해 일을 해야만 했을 나이. 부모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책임감을 안고 매일매일 우리만 바라보며 살아왔을 우리 엄마 아빠의 서른이지 않았을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나에게 엄마 아빠가 느꼈을 서른의 책임감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분명 엄마 아빠의 서른은,

우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을 것이다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던 날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부모님에게 감사한 날들이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우리 가족에게는 왜 항상 불행한 일들만 가득할까 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성실하게 일하는 아빠에게 임금 체불은 기본이었고, 항상 가족을 위해 애쓰는 엄마에게는 상처 받는 일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 문제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는 왜 항상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까 생각했다. 그 무엇을 탓할 수도 없었지만, 내 마음은 항상 불안정했고 불안했다


나는 우리 가족이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평범하다, 특별히 빛나는 건 없지만 특별히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생활을 자주 생각하곤 한다. 아빠가 퇴원을 했고, 이제야 평범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는 우리 가족의 삶이 평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평범함의 기준은 모두 상이하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내가 그토록 바랐던 평범함은,

사실 우리 가족이 누리고 있는 수많은 평범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오늘도 출근을 하신다


퇴원을 하고 일주일, 아빠는 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하셨다. 새벽 6시, 여전히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출근을 하신다. 나는 회사일이 벅차오를 때면, 자꾸 도망가고 싶을 때면 이제는 아빠를 떠올린다. 아빠의 서른부터 환갑까지 아빠는 얼마나 수많은 순간에 도망치고 싶었을까 라는 마음을 떠올리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진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아빠의 삶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아빠의 삶에 '가족'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빠의 삶은 든든했을 것이고, 소중했을 것이다. 표현은 부족하지만 늘 세 자매 바라기이긴 아빠 덕분에 우리는 사랑을 배웠고, 삶을 조금 더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 가족이 지나온 시간이 매 순간 꽃길은 아니었을지라도 들꽃들을 자주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는 않지만, 엄마 아빠의 선한 마음과 선명한 기준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나의 삶을 조금 더 아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빠의 뇌경색 소식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그렇게 다시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검사 소식에 너무 놀라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던 시간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안도했던 마음

내가 나이를 먹듯 부모님 또한 나이를 먹고 건강이 당연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내 삶을 바라보듯 부모님의 삶 또한 자주 들여다봐야겠다는 다짐


수많은 생각들과 다짐들이 스쳐 지나갔고, 오늘도 일상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수많은 순간들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여전히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슬아슬한 관계의 끈을 이제 내려놓아도 괜찮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