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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May 25. 2020

부족함을 인정할 수 없고,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던 날

사람과 사람, 관계 속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귀여운 딸이 생기면서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된 동생을 보러 오랜만에 동생네 집에 놀러 갔던 날이었다. 항상 정성스럽게 대접해주는 동생 덕분에 나는 엄마가 되어도 이렇게 누군가를 대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곤 했는데 그날도 역시 그녀는 나에게 정성스러운 한 끼를 내주었다. 얼굴도 예쁜데 성격까지 좋고, 요리까지 잘하니 정말 남편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밥을 먹고 디저트를 내어 준다는 동생은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내 자르더니 이내 "happy birthday"라고 적힌 귀여운 초를 꽂아 이제 '엄마 아빠'를 시작한 딸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스러운 모녀의 생일 축하 노래와 함께 마음이 뭉클해진다. 생일 며칠 전, 나의 서른 살 생일을 처음으로 축하해준 모녀는 특유의 사랑스러운 미소로 방긋 웃어 보이곤 '언니 얼른 소원을 비세요'라고 이야기한다


순간적으로 '우리 모두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곤 초를 불었다. 오랜만에 만난다는 반가움에 생일 축하를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역시나 마음이 깊은 동생은 내가 놀러 오기 며칠 전부터 마음을 쓰고 있었나 보다






이십 대의 나는, 수많은 관계에 수많은 이유를 붙이곤 했다


추억이 있는 관계는 오래오래 이어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친구라면 어린 시절을 함께 했기에 조금 더 깊은 사이가 될 거라 믿었고, 어렸을 적 친구는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관계는 끈끈할 거라고 믿어 왔다.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을 때 만났기에 우리는 조금 특별한 친구 사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모든 인연은 다 소중하고, 나를 위해 주는 긍정적인 관계라고 생각했다


이십 대의 시간은 나에게 수많은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선물해주었다. 이십 대 초반에는 넓은 관계만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증명해줄 것만 같아 관계에 집착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십 대 중반이 되면서 관계에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내가 마음이 넓은 사람인척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조금 더 쉽게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내 마음이 넓지 않았기에 나는, 누군가 내 마음에 상처를 내기 시작할 때 당황스럽기만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십 대의 나는 관계에 대해서 서툴렀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가야 할지, 이 사람과 어느 정도로 거리를 두어야 할지 알려주는 이가 없어 온전히 나의 마음을 믿고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이십 대 후반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어 수많은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금전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하는 일마다 무너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서 삶을 배워왔던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니 사람을 만나는 일을 점점 꺼려하게 되었다


점점 더 나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초라해진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툭하고 건들기라도 하면 세모난 마음이 수면 위로 올라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족함을 인정할 수 없었고,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나의 진짜 약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와르르 무너져 내려버린 내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이 두려웠다. 나는 모든 순간들이 두려워 잠깐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섬에서 몇 달간 머물면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온전히 내 마음을 안아주는 일에 애쓰려고 노력했다.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고, 오늘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세 달, 그렇게 섬에서 보낸 세 달간의 시간은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해줬다. 계속 섬에서 머무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아직 이곳에서 하고자 하는 일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이들이 있었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음이 채워지니 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고 싶어 졌다, 이제는 진짜 약했던 내 마음을 나누고 안아달라고 말할 용기가 생긴 것만 같았다


보고 싶었다고 말해주는 이들에게 '그리웠어, 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하며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불안하고 부족했던 이십 대를 보내고 그렇게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되어 맞이하는 첫 생일 전야제는 참 행복하다. 예쁜 모습을 하고, 좋은 일들만 나누어야 하는 사이 말고 - 진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나눌 수 있는 이들과의 관계가 여전하다는 생각에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싶었던 날들


생일 며칠 전 가장 먼저 축하해준 귀여운 모녀부터 야근이 많았을 텐데도 생일 전에 축하해주고 싶다며 나를 위한 선물을 가득 채워 준 친구까지 - 아직 나의 생일은 오지 않았지만, 따뜻한 이들의 마음 덕분에 나는 벌써 생일을 맞이한 것만 같다. 이십 대의 시간이 깊어질수록 생일날 축하받는 게 어색하기만 한데, 온전히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의 진짜 마음에 나는 이제 조금 더 생일을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고맙다는 말보다 항상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될까 싶었던 날들의 내가 아니라 이제는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더 많이 표현하며 사랑하는 나로 살아가야겠다


수많은 관계를 마주하며 넘어지고 또 일어났지만, 서른이 되어 보니 조금은 알겠다. 진짜 내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관계를 소중히 하고 아껴야 하는지 - 나의 빛나는 모습만이 아니라 약하고 모난 모습까지 아껴주는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라면 나는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겠다 싶은 날들






누군가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진짜 그 사람이 나와 오래오래 함께 할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더 잘해주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진짜 내 사람이라면 내가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더 깊어질 것이 분명하고, 나의 약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거나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십 대의 단편적인 고민들이 지나가고 삼십 대가 되어 수많은 고민들이 찾아올 때 수많은 순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고, 안아주려고 노력하는 관계가 분명 있을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알고 지낸 시간이 길다고 해서 깊은 관계도 아니고 알고 지낸 시간이 짧다고 해서 얕은 관계도 아니기에 - 수많은 관계에서 혼란스럽다면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관계에 집중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진짜 내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내 곁에서 머물 것이고,

떠나갈 인연이라면 어떤 이유로도 떠나갈 것이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관계에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여전히 수많은 관계 속에서 함께해주는 보석 같은 이들의 마음에 보답하며 살아야겠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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