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찬 Mar 27. 2022

실망스러운 사람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실망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입버릇처럼 붙어있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일상적인 단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에겐 꽤나 큰 임팩트와 큰 의미로 다가오는 단어입니다. 아마도 실망이라는 건 오로지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사람에게만 내뱉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기 때문일 겁니다.


'너, 실망이야'


그렇기에 이 말은 내가 싫어하거나 별 감정이 없는 사람에게 들으면 상처받을 일 없는, 그러니까 일말의 기대를 준 적도 없었기에 떳떳해서 해가 되지 않는 문장입니다. 오히려 나를 좋아하던 사람의 기대가 꺾였을 때 듣게 될 수 있는데, 그럴 때면 내 모든 게 꺾여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실망은 그만큼 기대했다는 의미의 역설적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건 제가 갖고 있는 큰 모순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에하나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 사실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준 적이 없었다면, 저는 실망할 자격조차 갖지 못하는 걸까요? 반대로 개인의 감정에 아무런 자격 조건이 없다면 저는 멋대로 기대하고 실망감을 가져도 되는 걸까요?


이런 식으로, 나와 상대방 사이 마음의 깊이가 맞지 않을 때가 저는 유독 두렵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처음 마주할 때도 혹여 이 사람이 나를 좋지 않게 볼까, 외사랑을 할 때도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을까, 걱정부터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루하루가 갈수록 모든 관계에서 자기 검열만 늘어가고 정작 진심으로 대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스스로 죄책감이 들게 되고, 결국 그 죄책감이 가로막아 선뜻 다가가지를 못하니 그 관계 또한 배려와 적당한 거리를 가장한 죽은 관계로 변모되는 것 같은 기분이 유독 드는 요즘입니다.


여기저기에 흩뿌려져있는 저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제가 명확히 알진 못하겠지만 아마 '실망스러운 사람' 내지는 '실망스러울 일만 남은 사람'이 아닐까, 감히 추측하게 될 뿐입니다.


사실 모든 것은 제 마음의 문제입니다. 정작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은 모를 것이라는 건,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여러 번 생각할 만큼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전 제 인생에 원치 않게 캐스팅 된 주인공이니만큼, 그래도 스스로를 가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 아래에서 캐릭터 해석을 멈출 수 없다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뭐 언제나 결론이 '실망'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정리되는 건 조금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애초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낮았기에 그 실망이 뼈아프게 다가오진 않는다는 건 썩 다행입니다.


2022. 03.

작가의 이전글 개성이라 포장된, 추함의 껍질을 벗기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