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의 함정.

앵무새가 되지 마세요.

by 슈에뜨

정체성의 혼란이 사춘기쯤 한번 온 것 같았다. 권위적인 한국의 문화가 싫고, 그렇게 잘 먹던 김치도 마늘을 빼 달라고 엄마한테 징징 졸랐다. 거부함으로써 독일의 문화에 속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간 후 깨닫게 됐다. 아, 난 완전히 속할 수가 없구나. 또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됐다. 아, 내가 이 문화의 습성 그리고 언어의 패턴을 앵무새와 같이 습득한 것이구나. 나의 본성은 그냥 한국도 독일도 아닌 지구인으로 정하기로 하였다. 물론 한국문화에 정이 더 많이 가지만.


내가 독일인과 소통을 할 땐, 난 독일인들 에게 특정 단어들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배웠고, 어떤 단어와 문장을 구사해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독일인이 날 이방인이지만 편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렇게 해야지만 상대방이 나에 대한 경계를 내리고 나와 어느 정도 거리낌 없이 얘기 나눌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위험한 함정이 있다.


상대방의 시그널과, 제스처, 그 사람의 문화적 배경을 너무 집요하게 나의 행동과 언어 패턴에 관련시키면, 난 독일인이 원하는 동양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공손하고, 배려심 있고 항상 미소 지어주는 그런 동양인. 서양인 사이에선 이런 동양의 모습이 약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상대방의 반응을 신경 쓰는 나머지, 나는 앵무새가 되어 그 사람에게 익숙한 모습과 이미지를 구사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나를 어느 정도 잃어버리게 된다. 가끔 이러한 나 스스로 에 반감을 가져 좀 더 거친 모습과 언어를 보여 주려고 하다가 괜스레 부자연스러워지게 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고는 한다.


결론은 이렇다.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나의 모습에 절망하지 말고, 나를 하나의 매개체로 생각하는 거다. 한국과 독일 사이에 있는 그런 통로. 이것을 나 자신이 라고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위로가 있다. 대신 나의 주체성은 잃지 말 것. 나 여기 있다고 크게 소리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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