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백만 송이 장미의 슬픈 사연을 뒤로하고 미니버스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출발했다. 좁은 도로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어디 마실을 다녀오는 중인지, 풀밭에서 배를 채우고 집으로 가는 중인지, 인간들의 빠듯하고 건조한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직하고 여유로운 걸음을 천천히 내딛고 있었다. 20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곳은 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이었다. 수도원 앞 공터에도 소 한 마리가 위태로운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비스듬한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보드베 수도원은 키 큰 편백나무가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맑고 파란 하늘과 깨끗한 대기, 가지각색의 꽃과 넓고 싱그러운 들판, 큰 키를 뽐내는 짙푸른 편백나무 숲 속의 오랜 역사를 가진 수도원은 전체적인 조화가 돋보이는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전설에 따르면 성녀 니노가 생을 마감하자 미리안 왕은 200명의 기병을 보내 시신을 당시 수도였던 므츠헤타로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관이 움직이지 않아서 옮기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 보드베에 작은 수도원을 지으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현재의 보드베 수도원은 17세기에 재건되었다.
15시 20분경 차는 수도원 근처에 있는 시그니기(Sighnaghi)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바로 식당을 찾아갔다. 아침 식사 후 지금까지 먹은 것이라고는 와인 몇 잔과 푸리 한 조각. 점심시간은 이미 한참을 지난 후였다. 이제라도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만을 억지로 삭였다. 테이블별로 식사 주문을 마치고 뭔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이드는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에 동네를 구경하자고 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나는 꼼짝 않고 앉아서 버텼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몇 시간 전부터 배가 고팠으나, 단체로 움직이는 일정이라 뭐라 불평도 못하고 꾹 참았는데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무슨 극기훈련을 온 것도 아니고, 공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15시 30분이 넘도록 식사도 못하고, 또다시 구경이라니, 구경 못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유년시절과 청춘기를 힘겹고 가파르게 넘어온 나에게 한 끼의 식사를 건너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8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난생처음 해고라는 것을 경험했다. 제일 먼저 닥친 문제는 경제적 궁핍이었다. 쌀이 떨어져 밥은 꿈도 못 꾸고,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아침에는 속도 풀 겸 국물 있는 라면, 점심때는 국물 없는 라면, 그리고 저녁에는 막걸리. 지하 셋방은 습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이 흥건할 정도여서 하루 종일 찌뿌드드했다. 그러던 중에 노동상담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 봐야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교통비나 지원받는 정도라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노동상담소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담소 소장님은 부업으로 수족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점심때쯤 큰 금붕어 한 마리를 가지고 오셔서 그놈으로 매운탕을 끓여 먹자고 하셨다. 금붕어로 매운탕을 끓여 먹어도 되는지 의심스럽긴 했으나, 어쨌든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매운탕을 끓여 본 적이 없는 지라 언젠가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서, 이것저것 야채를 넣고, 금붕어를 잘 손질해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매운탕이니까 매운 것은 기본이고 달착지근했던 기억이 떠올라 설탕을 넣기로 했다. 그러다 실수로 설탕이 왕창 냄비 안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그래 놨으니 그게 설탕물에 금붕어가 빠진 꼴이라, 참 그 한심한 맛 하고는. 그렇다고 아까운 국물을 다 버리고 다시 끓일 수도 없고, 모처럼 매운탕으로 몸보신을 하리라고 기대하며 이제나저제나 숟가락을 빨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가이드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왜 같이 안 가냐고, 같이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잘들 다녀오시라고,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더니,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더 실랑이를 벌이다가는 일행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부글부글 끓던 심사는 시그나기 마을의 한가로우면서 곱고 단아한 풍경에 저절로 녹아버렸다. 붉은색과 분홍빛의 파스텔 색상의 지붕들, 고색창연한 교회와 뾰족한 첨탑, 조약돌이 깔려 있는 거리, 육중하고 단단하게 보이는 성채들이 조화를 이룬 마을은 ‘코카서스의 이태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시그나기는 조지아 가장 동쪽에 위치한 카케티(Kakheti) 주에 속한 마을로 와인 재배 지역 중심부이며 역사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이 바라보이는 평원에 우뚝 솟은 언덕에 자리 잡은 시그나기는 천혜의 요새이기도 하다. 동쪽의 이민족들이 조지아를 침략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어서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시그나기는 양탄자를 만드는 장인들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조합이 있다고 한다. 거리에는 장인들이 직접 만든 양탄자를 판매하는 가계도 여러 곳 있었다.
1시간에 걸쳐 동네 곳곳을 탐험하듯 구경하고 왔는데도 주문한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할 때쯤 음식이 나왔다. 뭐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음식, 다만, 1000CC 컵에 담겨온 와인이 그나마 특별하다고나 할까. 저녁식사 같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트빌리시로 향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