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의 전설 속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풀어헤쳐놓은 짐을 야무지게 정리해서 배낭에 차곡차곡 담았다. 체크아웃을 하고, 택시를 2대 불러서 디두베 버스터미널로 출발했다.
2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터미널은 통상적인 버스터미널과는 사뭇 달랐다. 번듯한 건물에 정돈된 버스시간표, 정해진 탑승구를 기대한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넓긴 하지만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공터에 버스와 미니버스, 승합차, 승용차들이 제각각으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정해진 플랫폼도 없고, 정기적인 노선버스도 없어서 기사하고 목적지와 교통비를 흥정해야 했다. 같이 갈 일행을 찾아야 하는 것도 여행객들의 몫이었다. 능력자인 우리들의 가이드께서 협상을 시도했다. 우리 일행이 6명이어서 한 명만 더 추가하면 승합차가 출발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한 명은 금방 추가됐다. 마치 우리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여행자 한분이 눈치 빠르게 합류했다. 60대 초반의 여행자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국인이었다.
차는 출발 준비를 마쳤는데 사람들이 아직 합류하지 못했다. 두 여사님과 아들이 탄 택시가 도착을 했다는데, 터미널이 넓기도 하고, 복잡해서 찾을 수가 없었다. 있는 곳 주변을 사진을 찍어서 보내고, 우리가 타고 갈 차의 기사에게 그 사진을 보여준 후에야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7명을 꽉 채운 승합차가 터미널을 출발했다. 몸 부피와 성별, 나이, 취향 등을 고려해 자리를 배치한 후, 첫 만남인 여행자의 신원조사에 착수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그분은 고등학교 7년 선배님이셨다.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말씀도 재미있게 잘하시고, 아는 것도 많고, 여행 경험도 풍부하고, 인상도 푸근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선배라는 학연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쉽지가 않았다.
도시를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경유지에 도착했다. ‘잔발리’ 저수지. 주위의 산들이 팔을 펼쳐 보호하듯 싸안고 있는 호수는 진녹색의 물빛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백두산 천지의 아류 정도는 될 듯했다.
선배님의 여행담을 들으면서 첫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홀짝홀짝 마신 와인에 취해갈 즈음 차는 ‘아나누리’ 성채에 도착했다.
‘아나누리’는 13세기부터 실크로드의 한축을 담당했던 무역 통로의 주요 거점인 마을로, 이곳 성채에는 두 개의 성곽과 서로 다른 구조의 교회 두 채가 나란히 서있다. 카즈베기로 오고 가는 관광객들이나 러시아를 오가는 무역상들이 잠시 쉬어가는 장소다. 잡다한 기념품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팔고 있다. 안개에 쌓인 성채는 은밀한 비밀이라도 간직한 듯 신비로웠다. 보슬비가 기척도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카즈베기로 가는 유일한 도로인 조지아-러시아 군용 도로는 구불구불 위태로운 산길이었다. 도로 옆 고산 곳곳에는 산사태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않고 흉터로 남아 있었다. 산등성이로 높이 올라갈수록 자욱한 안개는 천지분간을 어렵게 했다.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이 뽕잎을 갉아먹고 있는 누에처럼 보였다. 그 아슬아슬한 좁은 산길에서도 곡예라도 하듯, 경주라도 하듯 추월은 예사였다. 아마도 부족한 교통비를 벌충하려고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조지아는 교통비가 저렴했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까지 산길을 족히 3시간은 가야 하는데 교통비는 1인당 20라리(9,000원 정도)였다.
13시쯤 차는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 마을에 도착했다. 고생하신 기사님에게 색동연필집과 4홉들이 소주 1병을 선물로 줬다. 너무 좋아하시면서 필요하면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게스트 하우스에 6명이 다 들어갈 수가 없어서 양 동지네는 조금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했다. 공교롭게도 선배님도 우리와 같은 숙소였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서 짐을 맡겨두고 점심식사를 하러 중심가로 걸어 나왔다. 선배님께서는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자고 하시면서 마트를 찾으셨다. 몇 군데를 돌아다녀봤으나 냉동고기에다 질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선배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식당을 추천해주시고는 유유히 사라지셨다. 식당을 찾아가다 시그나기에서 같이 와이너리 투어를 했던 중국인 모녀를 우연히 만났다. 그때는 데면데면 말도 붙이지 않고, 찬바람만 쌩쌩 날리더니 오늘은 웬일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조금 후에 카즈베기산 중턱에 있는 성당에 가야 하는데 2명이 차 한 대를 빌리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우리 일행들과 같이 한 차로 움직이면 좋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우리도 손해 볼 것이 없어서 그러자고 했다. 오랜 숙제를 푼 듯이 너무 좋아했다. 진즉에 좀 아는 체도 하고 싹싹하게 굴었으면 좋았으련만.
선배님께서 추천해주신 식당은 다 좋은데 테이크아웃 전문이라 실내에 앉을자리가 없었다. 주문을 해놓고 식당 밖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제법 쌀쌀했다. 이곳 스테판츠민다 마을은 조지아 북동부에 위치하는 작은 마을이다. 므츠헤타 미티아네티주에 포함된 카즈베기 지역(Kazbegi Municipality)의 행정 중심지이다. 이곳의 지명은 조지아 정교(Georgian Orthodox)의 수도사였던 스테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테르기 강(Thergi River)변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Tbilisi)로부터 북쪽으로 약 157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고도 1,74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의 서쪽으로는 세계의 명산으로 잘 알려진 카즈베기산이 자리 잡고 있다. 식당은 명성처럼 음식 맛도 좋고 양도 푸짐했다. 하지만 날씨는 춥고, 국물도 없이 먹으려니 팍팍했다. 반만 먹고 남겼다.
봄 여사가 옷을 갈아입으러 숙소에 갔다 오는 동안 근처에 있는 관광센터에서 몸을 녹였다. 어느 정도 몸이 풀릴 때쯤 봄 여사가 돌아와서 중국인 모녀에게 전화를 하고 차 타는 곳으로 갔다. 그들은 마치 잃어버린 가족이라도 다시 만난 듯 반가워했다. 산악 전문 지프차에 8명이 구겨져 탔다. 운전석 옆 자리는 당연히 가장님 자리. 가운데 3명, 뒤쪽에는 4명이 앉으니 숨쉬기도 힘들었다.
해발 5047미터로 조지아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인 카즈베기는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서려있는 산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기꾼, 욕심꾸러기, 호색한으로 자주 등장하는 제우스는 자기의 뜻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참혹한 형벌을 내렸다. 프로메테우스는 세상 끝에 있는 카우카수스산에 묶인 채,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밤에는 회복한 후 다시 낮이 되면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3천 년간 당해야 했다. 조지아 사람들은 프로메테우스가 묶여있었다던 전설 속의 산이 카즈베기라 믿고 있다. 카즈베기 산 중턱인 해발 2170미터에는 14세기에 지어진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성당(Gergeti Trinity Church)이 우뚝 서있다.
구불구불 아슬아슬한, 곳곳이 산사태로 파이고 깎여나가 상처투성이인 산길을 고물 지프차를 몰고 70대의 할아버지 기사는 잘도 올라갔다. 중간중간 고갯길을 내려갈 때는 갑자기 속력을 내서 우리들을 질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30분을 넘게 올라간 뒤 차는 성당 밑 주차장에 도착했다. 성당에는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올라와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몸이 날릴 듯했다. 무슨 폼생폼사라고 파카도 안 입고 얇은 바람막이 점퍼만 걸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는 압권이었다. 건너편 고산 중턱에는 신화처럼 구름이 하얀 띠를 두르고 있었고, 스테판츠민다 마을은 마치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산들은 우람한 몸뚱이를 서로 맞대고 근육질 몸매를 자랑을 하고 있었다. 카즈베기산 정상은 구름에 덮여 신비감을 더했다.
산마루에 홀로 우뚝 솟아있는 성당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면 성당의 실루엣을 볼 수 있다. 무심코 지나가면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곳에 홀로 서있는 성당. 누가 이곳에다 성당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이곳까지 자재들은 어떻게 운반을 했을까? 이곳의 수도사들은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모든 게 궁금했으나 온갖 풍상 속에 700년의 역사를 견뎌온 성당은 무심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