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와 책 큐레이팅
종로5가역 1번 출구로 나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가는 길목에서 걸음을 틀면 오래된 외관의 건물이 보인다.
"시간을 되돌리는 문"을 힘차게 열고 살살 닫으면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향기가 가득한 카페가 나온다.
큰 공간에 다양한 형태의 좌석이 있어 고르는 재미가 있다.
'혼자 책 읽기 좋은 자리'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곳을 찾는 중 은밀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발견했다.
앞 뒤로 있는 두 자리 중 조금 더 밝아 보이는 곳을 골랐다.
마치 옛날 집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샛방 서재 같은 느낌이어서 읽을 책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아마츄처 작업실 광장시장 점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는 '이곳의 책'은 바로
은희경 작가님의 장편 소설 [새의 선물]이다.
1995년에 출간된 [새의 선물]은 등단 첫 해의 은희경 작가님께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을 안겨준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한국 소설이다.
1995년 무궁화호가 발사되는 광경을 본 '나-진희'가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발사되던 1969년 열두 살 소녀시절을 회상해 보는 '액자소설' 형식이다.
지방 소읍에서 부모 없이 외할머니에게서 살던 소녀가 "나는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라고 선언한다.
그런 소녀의 눈에는 어른들의 삶의 이면이 신비스럽다기보다는 허위에 차 있고 우스꽝스럽게 비쳐진다.
-책 소개 중
12살의 나이라고 하기에는 성숙할 대로 성숙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소로 가득한 소녀, 진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어른들의 삶을 그린다.
어린이가 전하는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은 창피할 때가 많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서 마음껏 얼굴을 붉히거나 어쩔 땐 소리를 내어 웃으며 읽기도 했다.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진짜의 나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이 위선이나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꾸며 보이고 거짓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일은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위'라는 말을 알게 된 뒤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졌다.
나의 분리법은 위선이 아니라 작위였으며 작위는 위선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아는 어른들의 비밀을 털어놓는 데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빚진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 새의 선물 중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 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 새의 선물 중
씁쓸하면서 또 한 편으론 애달프고
날카로우면서 또 한 편으론 너그러운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을 '시간을 되돌리는 문'을 넘어야 하는 [아마츄어 작업실]에서 읽어보길 추천한다.
* 카페 팁 :
- 네모 치즈케이크가 유명한 곳이라 드립 커피와 세트 메뉴인 '작업실 세트'를 추천한다.
- 내가 택한 자리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는 자유롭지만, 답답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안쪽 넓은 소파 자리를 추천한다. (나중에 옮김)
- 2층도 있다.
* 독서 팁 :
책을 읽기 전에 팟 캐스트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 2021년 4월 25일 '새의 선물' 편을 듣고 읽으면 줄거리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책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