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랑스러운 소녀, 앤
" 뭔가 실제와 다르게 상상해보신 적 없으세요? 정말 많은 걸 놓치고 계시네요."
앤이 끔찍했던 보육원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상력 덕분이었다. 어두운 옥탑방에서 상상 속 공주였던 앤에게 책만이 유일한 친구였고 자연만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넷플릭스 빨간머리 앤을 보다보면 상상력, 감수성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감동을 잘 받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지식도 많고 감동도 잘 받는 앤은 참 사랑스럽다.
"사랑은 자선이 아닌데요. 제 모든 힘과 가진 돈을 털어 친구를 도와주면 그 친구는 고마워하면서 사랑 받는다고 생각할 거에요. 때로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해요."
초록 지붕 집에 함께사는 커슈버트 가족의 관계성은 따뜻한 분위기를 선물해준다. 'be loved'사랑받는 것에 갈증이 많았던 앤에게 따뜻한 마를로 아주머니와 인자한 매슈아저씨는 정말 큰 존재다. 아이가 성장할때, 옆에서 지켜봐주는 어른 한명만 있어도 그 아이는 잘 자라난다고 한다. 항상 앤의 행복을 일순위로 생각하는 캐나다 시골의 순수한 남매가 있었기에 앤은 마음껏 세상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내 가치를 정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기란 쉽지않다. 1800년대가 배경이었던 빨간 머리앤에는 성별, 신분, 인종 등 다양한 형태의 편견이 있었고 차별 또한 쌓여왔다. 모든 사람을 같은 인간으로 존중할 줄 아는 앤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3편의 시리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앤이 여성과 남성에 대한 평등을 시사하는 기사를 썼던 이야기이다. 남성이라는 권력이 지금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때 앤은 평등에 대해 글을 쓰고 모두에게 공정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물음을 던졌다.
차별받는 사회에서 순응하며 살다보면 내가 받는 게 차별인지, 불평등인지 구분 하지 못하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식하지 못한채 살아가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변화시키기 시작할 때는 수많은 저항과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모두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정의를 따라야하는 의무를 가진다.
색안경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행동하는 앤과 점점 달라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이야기한다.
"변화는 불편합니다. 미래는 불확실하니까요, 하지만 미래는 급속히 다가옵니다. 기차처럼요."
2020년에 사는 나라고 해서 편견에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빨간머리 앤을 처음 볼땐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뛰어난 앤이 낯설었다. 이 아이의 행동이 정도를 넘는 다고 생각하며 혼자 볼을 붉히며 보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앤을 지켜보며 내 안에 '평균' '적당히' '보통' 등의 기준이 정해져 있었고 이 기준에 빗대어 사람을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0월이 있는 세상에 산다는 게 정말 기쁘지 않아요?"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 알들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앞으로 알아낼 것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만약 이것 저것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앤의 긍정적인 대사들은 인생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해준다. 태어나서 죽는 삶이란게 마땅히 대단한 것 같지 않은데 가끔 모질만큼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내가 정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얄미운 인생을 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설레고 감사한 선물이 되어있다.
주어진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소녀 앤을 한명의 팬으로서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