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거야?
경제적 독립이 필수였던 20살부터 나의 알바 인생은 6년간 꾸준히 함께했다. 서빙, 학원, 근로, 빵집 등 다양한 일을 하다 알바의 꽃인 카페에 정착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대형 카페의 설거지로 들어가 경력을 차츰차츰 만들어갔다. 그 후 개인, 프랜차이즈 등 카페만 4곳을 넘게 일하다 드디어 5번째 카페에선 혼자 오픈하고 마감을 하는 경지에 올랐다. 6개월간의 인턴을 하며 알바를 잠시 쉬다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또다시 알바를 시작했다.
벌어둔 돈도 있고 학교생활에 크게 관여를 받고 싶지 않아서 딱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만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알바에 대한 이력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5년 넘도록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알바 로맨스를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복이 많아 좋은 사람들을 잔뜩 만났지만 이상하게 연애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싶다는 열망은 있었지만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욕심은 적었던 터라 모든 경제활동은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었다.
학교 앞 작은 카페에서 일요일마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오후 7시에 문을 닫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2000원 아메리카노가 제일 잘 나가는 카페에서 시험기간에 혼자 70만 원 가까이 파는 일은 절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혼자 카페에서 일하는 건 창업한 내 카페에서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재밌었다. 일요일에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고정되어 있다. 주로 매일 공부해야 하는 로스쿨, CPA 준비 학생들이었고 개중에 나의 지인들 그리고 외국인 손님 한 명이 있었다. 3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일요일마다 꾸준히 오는 외국인이 조금 신기했지만 정신없는 시험기간을 넘기고 매우 여유로워진 4월 말 시점에 외국인 손님을 유심히 관찰했다. 교환학생이라면 나가 놀기 바쁜 생활인데 일요일에 한국어 공부를 하러 오는 외국인이 조금 신기했고 관찰할수록 눈이 참 예쁘다고 생각을 했다. 그 손님과 나, 단 둘이만 있을 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Are you an exchange student?” 항상 암묵적 손님과 아르바이트생 관계만 유지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거니 놀랬는지 더듬거리며 한국어로 대답을 하는 외국인 손님을 보며 약간의 내적 친밀감을 쌓아 올렸다. 그렇게 또다시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공부를 하던 손님은 나가기 전,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머리 모양이 예뻐요.”라는 세상 처음 듣는 칭찬을 남기고 떠났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온 외국인에게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을 걸었다. 개인적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지만, 코로나로 다 무산되어 외국 언저리도 못 간 사람 인터라 다른 문화권의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욕망이 항상 몸 안에 흐르고 있었다. 언어교환 채팅은 친구들과 카톡도 귀찮아하는 나에겐 너무 힘든 과정이었고 학교에서 하는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은 일회성 만남으론 좋았지만 이어가기엔 장벽이 너무 높았다. 여유로워진 카페에서 시간도 때우고 영어도 사용할 겸 외국인 친구의 한국어 튜터를 자청했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져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손님은 프랑스인이었다.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과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영어를 통해 소통을 하니 그 나름대로 재밌었다. 한국어만 가르치다 조금 지루해져 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냐는 나의 질문에 상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자신에게 센세이셔널했다고 대답했다. 특히 칸영화제에서 본 ‘아가씨’가 정말 충격적이었고 그 이후로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을 보았다고 신나서 이야기했지만, 정작 내가 본 박찬욱 감독 영화는 아가씨뿐이어서 혼신의 리액션을 해주었다. 일터는 일터인지라 손님들이 갑자기 불어 닥치며 대화는 끊겼고 자연스럽게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고 따로 밥 먹을 약속을 잡았다.
외국인 친구와 단 둘이 밥을 먹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친구가 아닌 이성과 만남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라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첫 데이트를 했다. 비가 왔기에 김치전과 막걸리를 마시면 좋겠다는 나의 계획과 달리 줄이 너무 길었던 식당을 뒤로하고 그냥 피자를 먹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