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과 특별함의 경계 속
내 나이 25, (만 나이 24) 한 번도 연애를 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더 멋있는 사람을 찾아 헤맸던 20대 초반과, 더 잘 맞는 사람을 찾아 헤맸던 20대 중반을 넘기고 보니 그냥 연애를 못 해본 사람이 되어있었다. 물론 연애 대신 선택한 경험들이 나의 자아를 만들어갔고 혼자서도 안정적일 수 있는 인격을 형성하게끔 도와줬다.
한국 사회에서 연애를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맞닥뜨리게 되는 타인들의 수많은 참견이 있다. “왜 가장 예쁠 나이에 아무도 만나지 않느냐”는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는 꾸짖음을 간신히 넘기면 “연애는 너를 더 알게 해주는 최고의 경험이다”는 인생의 큰 배움을 놓치고 있다는 걱정을 받게 된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엔 어느 정도의 공집합이 있을지언정, 여집합을 더 중요시 여기는 나로선 그들의 진심 어린 (거짓 어릴 수도) 관여에 큰 흔들림이 없었다.
단지 모든 취미 생활이 책, 영화, 음악에 있는 간접경험 마니아로서 예술에서 그리는 ‘사랑’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자신, 가족, 친구, 반려견 등 사랑에는 수많은 형태가 존재하지만 헤테로인 난 이성에 대한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에 빠져 모든 세상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다는 노래를 들으며 약 같은 사랑에 취한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내 인생을 흔들 만큼 피 하나 안 섞인 사람이 중요하다고? 이건 다 심지가 약한 사람들이 겪는 사랑일 거야 라고 단정 짓고 약간의 코웃음을 치며 들을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난 왜 세상이 뒤집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거냐며 조급함과 답답함에 휩싸여 사랑을 못 하고 있는 우울함에 빠지기도 했다. 특히나 이별에 대한 음악이 쏟아져 나올 때면 이별에 눈물을 쏟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가슴 절절한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즉, 이별을 해보고 싶어서 연애가 궁금해졌다 랄까.
각자의 애인을 자랑하기 바쁜 20대 초반을 지나면 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고민의 부류에 속하게 된다. 친구들의 고민에는 자신의 성격에 대한 고찰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애인과 섞여 있었고 같이 고민 상담을 하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남들 다~해 본 경험을 혼자 못 했을 때 느끼는 그 소외감은 종류 불문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 단지 이야기 재료를 위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불순해 보이지만, 인간에게 소외감만큼 슬프게 만드는 것은 또 어디 있을까.
원하는 목표가 생기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성취하면 되고 실패를 맛보면 다시 일어나 도전하면 되었다. 하지만 연애는, 나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 노력해서 생명체를 뚝딱 만들고 사랑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뭐든지 마음먹으면 노력으로 해내던 나의 삶에 유일하게 넘지 못하는 벽이 바로 이 ‘연애’였다.
‘낭만’이 인생에 얼마나 큰 요소인지, ‘사랑’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여기는 나에게 연애는 명예, 재력, 성취보다 조금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청년의 인생에 꿈과 도전이 필수라면 내가 생각하는 청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는 마음껏 젊음을 낭비하며 사랑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 어쩌면 사랑에 너무 큰 가치를 두어서 더 시작이 어렵고 생각을 많이 하게끔 만들었을 수도 있다. 언젠가 나타나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도 이제는 지쳐갈 때 즈음 정말 갑자기 언젠가 불쑥 나타나버렸다. 너무 자연스럽게 시작되어서 정의 내리기도 힘들 만큼 그냥 물 흐르듯 나의 연애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