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위기

갑자기 이렇게?

by 글몽인

상대는 프렌치, 난 한국인. 상대는 교환학생, 난 막 일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비자’라는 문제가 생겼다. 교환학생 비자인 D2비자의 끝은 9월 30일로 한 달 앞으로 다가왔고 다른 비자로 변경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한국에서 풀타임 직원으로 취직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너무 적은 비자 변경이었고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생이별을 앞에 두고 있었다.


나이가 비슷한 우리는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넘어가야 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가장 불안한 시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8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준비해야 하는 애인이 만약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면 거기서 일을 시작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고 코로나 시대에 내가 프랑스로 가서 일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장거리 연애도 연애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라는 점이 숨을 막히게 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이별하고 평생 못 볼 수도 있는 관계라는 것이었다.


모든 걸 내던지고 사랑을 택해서 비행기를 타기엔 솔직히 사랑이 내 인생보다 앞서지 않았다. 그냥 단지 지금 이별하는 건 너무 이르다는 생각뿐이었다. 우리가 평생을 함께 안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1년은, 아니 2년은 지켜보고 모든 정 다 떨어져서 이별을 해야지,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은 우리가 이렇게 이별을 하는 건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왜 남들은 그냥 평탄하게 이어나가는 연애가 나에겐 이렇게 많은 장애물을 선물하는지, 내 삶 자체도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편인데 왜 연애도 이렇게 다른지. 별의별 속상함이 터졌다. 이제 평생 못 볼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애태웠고 이별 후 혼자 남겨진 우리의 추억의 공간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자신이 아직은 너무도 없었다. 어쩌면 상대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 안에 있어서였을 거다. 프랑스로 돌아가서 학업이 아닌 취직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 너무나 모험적인 선택이었기에 내가 만약 애인의 입장이라면 안 올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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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위태로울 때 이성적인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매일 쓰는 나의 일기장에 항상 기록되는 한 문장이 있었다. “life goes on”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 이별이 오고 혼자 남겨져도 나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공허함과 그리움이 사무쳐도 나의 일상은 반복될 것이다.

내 인생이 아닌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관여할 수 없으니 그 어떤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넌 몸만 와, 내가 네 인생 책임질게”라는 사랑이 전부인 사람인 척 하기에는 나도 내 인생만으로도 불안했고 그 어떤 책임감도 상대에게 뻗치기엔 버거웠다.

비자 문제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애인이 점점 걱정을 내비치고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무슨 생각해?라는 질문에, 어떻게 다시 돌아올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내가 조금 더 나이가 적었다면, 사랑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하며 기쁨에 펄쩍 뛰며 같이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을까?


난 조금은 침착하게 말을 했다. 진심이었지만 조금은 더 어른스러운 척하며, “네가 돌아가서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너의 일상에 다시 적응해갈 때, 그때도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와. 난 너에게 어떤 부담감도 주고 싶지 않아. 네 인생이니깐.” 어쩌면 이 말에 “네가 돌아온다고 해서 네 삶을 내가 책임져주진 않을 거야.”라는 암시를 내비쳤을 수도 있다. 나의 애정이 적은 것이 아니라 이건 불변하는 사실이니깐. 지금은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연애가 나에겐 너무 소중하지만, 모든 걸 바치기엔 내 안의 이성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어 조금은 더 담담해져 갔다.


애인이 살고 있는 집을 내가 이어받기로 해서 8월에 기숙사 짐을 빼고 애인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9월, 마지막 한 달간 이별 준비 겸 우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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