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수용
함께 갔던 장소에서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우리는 꼬박 10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다. 특히 타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난 고향으로 쫓겨나게 생겼지만, 고향에서도 부모님의 만류에 결국 혼자 살고 있는 애인의 집에 들어가 같이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얼마 만나지 않은 애인과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 동거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약간의 혼란을 안겨주었지만, 내 예상보다 우린 탁월한 팀워크로 큰 소란 없이, 별다른 답답함 없이 격리 생활을 하였다. 같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공부를 하고 영화도 보며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은 너무나 재밌었다. 따로 연락을 할 필요도, 약속을 잡을 필요도 없는 10일이 내 안에 안정감을 만들었고 더 이상 누가 더 큰 마음을 가졌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예상보다 더 만족스러운 격리기간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연애 초반의 아슬아슬함을 10일간의 동거생활이 없애주자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났다. 편안함이 안겨준 서운함 단계에 이르렀다. 자신의 예민함을 눈치 보지 않고 표출하는 상대에게 실망감이 늘어났다. 특히 나를 가치롭게 생각하지 않는 듯한 상대의 모습을 보며 이 관계를 지속시키는 이유에 대한 의문점만 들었다. 달라서 흥미롭고 맞춰가는 재미가 있었다면, 그 다른 점 때문에 지치고 언성이 높아지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다른 문화권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하는가 아님 상대가 가진 개인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로 하는 건가에 대한 갈등도 피곤해졌고 싸우고 삐지는 일이 늘어났다.
여기서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너무 별로다”라는 점이었다. 친구한테 절대 안 할 말과 행동을 서스름 없이 하고 머리를 거치지 않는 언행이 날카롭게 튀어나갔다. 상대의 부족한 점과 서운한 점만 찾는다고 놓치고 있었던 점은 나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안 들 때면 말도 없이 불쑥 그 자리를 떠나버리는 회피형 인간이었고, 화가 날 때면 눈물이 먼저 나오는 감정형 인간이었다.
“연애를 하게 되면 네가 누군지 더 잘 알 수 있게 돼”라는 귀에 딱지 앉았던 조언들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인생 교훈이 될 지경이었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는 모습과 자존심으로 끝까지 인정 안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별로인 것을 깨닫자 부끄러워졌다. 나만 이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물러나서 바라보니 상대도 상대 나름대로 노력을 하며 관계에 힘을 쓰고 있었다. 은연중에 난 애인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상대의 태도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던 점이다.
‘애인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이런 사람 만나지 말아요’ 류의 수많은 참견 자료들을 보며 나의 애인과 비교를 했고 상대에게 하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었다. 나만의 기준으로 만족감을 느끼면 될 것을 왜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평균에 기대어 우리의 관계를 헤치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깨닫고 이해하고 집착하지 않으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자아가 단단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던 높은 레벨의 부차적인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어떻게 하면 내 미래를 더 발전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두자 연애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요소로 남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고 애인과 만들어먹는 저녁은 하루의 피곤함을 씻겨 내려줬고 주말에 하는 바깥 데이트는 다음날을 더 힘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커플에 비해선 적은 횟수지만 애인은 나의 하루를 메시지로 묻기 시작했고 그냥 편한 친구라고 여겼던 관계에서 나에게 직접적인 표현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내 안의 여유로움이 상대에게 매력으로 다가갔는지 서로가 비슷한 온도로 이해하고 표현했다. 물론 안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기대와 실망을 완전히 없애는 건 어렵지만 회피하지 않고 대화로 풀려고 노력하고 내 감정 하나하나를 마주하며 다스렸다.
이렇게 안정기로 도달한 연애가 계속되면 해피엔딩으로 가겠지 싶지만 또 위기가 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