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_ 우리는 사랑일까
만남이 시작되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설렘만이 가득할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론 가족과 친구, 그 어디에도 끼지 않는 형태의 등장에 곤혹스러웠다.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공유가 필요한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자주 보고 싶다는 표현을 하는 게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고 항상 나의 삶이 최우선이었던 내가 마냥 애인과 놀고 싶어만 하는 모습 자체에 실망도 했었다.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가 일 번이 되어 자신의 삶을 놓치는 사람들을 보며 현명하지 못한 삶의 태도라고 여겼건만, 완전히 분리하여 연애를 부차적인 놀이로 두는 사람은 정말 다른 경지에 오른 최고급 레벨의 사람인 거 구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애인이 나의 하루에 끼치는 영향이 커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락가락했고 애인이 친구와 약속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왠지 모를 서운함도 느꼈다. 단단함이 가장 큰 장점이었던 내가 원래 이렇게 상대에게 의지하는 사람인 건가, 연애는 대체 뭐고 사람을 왜 이렇게 유치하게 만드는 것일까라는 절망을 맛볼 때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다시 내 손안에 들어왔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이었지만 직접적인 큰 울림은 없었던 이 책이 다시 읽으니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내 마음이고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역시 간접경험과 직접 경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구나를 최대로 느끼며 마음이 심란할 때면 책을 다시 찾게 되었다.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도 사랑을 하면 편집증에 걸리고, 별별 최악의 생각을 다 한다. - 그 남자 / 여자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싫증내고 있어. 적당한 때가 되면 이 사람은 모든 걸 없던 일로 돌릴 거야..- 편집증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따르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 수밖에. 하지만 일단 재앙의 시나리오에 끌려들면 사랑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중
다른 문화권에서 오는 차이가 또 다른 작용을 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연락을 안 하기로 유명한 나도 외국인의 연락 빈도에는 완전히 좌절했다. 정말 약속을 잡는 용도 아니면 쓰이지 않는 카톡에 내가 애인이 있는 건가 또다시 의문점을 들게 만들었다. 매 순간 일상을 공유해야 했던 이전의 썸 관계에 지쳤었던 나지만, 내 일상을 묻지 않는 애인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말이라고 여겼던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생각을 내가 하고 있었다.
애정은 수치로 나타낼 수도 없을뿐더러 상대가 나를 얼마만큼 좋아하던, 내 감정에 충실하고 후회 없이 표현하면 돼지라는 교과서적 사고를 가졌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정확한 표현의 안정감이 필요했다. 연락과 표현의 정도의 차이로 위태로운 감정을 낳는 나의 첫 연애가 흘러갈 때 즈음 예상치 못한 안정감을 선물해준 시기가 왔다. 바로 자가격리를 함께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