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별 그날 밤
때는 지난 일요일 밤이었다.
내가 느끼는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마음을 다잡고 통화를 시작했다. 어쩌면 애인의 드문 연락과 성의 없는 답에서 오는 불안이 하나의 촉이었던 것 같다. 애써 문화 차이와 상대의 바쁜 상황이라는 나의 합리화는 우리의 관계에 문제가 없길 바라는 하나의 핑계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연락을 조금 더 해 줘"라는 말을 하는 게 너무 무섭고 두려웠나 보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펀치를 한 대 맞았다.
새로 취직한 회사에서 내년에 '중국'발령에 대한 오퍼가 왔다고, 한국은 본인 회사에서 담당하는 지부가 없어서 중국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롱디에 대해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것에 대해 생각을 한다고 자기가 요즘 연락에 소원했다고 설명을 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거론하기 이전에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다. 본인이 달라졌다는 것을)
너무 급작스러운 말에 가슴이 덜컹 가라앉고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어? 아니? 이게 아닌데? 내가 예상한 대화의 흐름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당장 페이스톡으로 바꿔 무슨 말이냐고, 다시 설명을 해봐라고, 그래서 지금 헤어지자는 거냐고 눈물이 펑펑 나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다. 이 아이가 얼마나 '현실'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인지, 그리고 메시지는 not interested 하다고 느끼는 사람인지. (물론 나도 메시지 연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다시 한국에 갈 수 없게 됐어. 여행이라면 모르겠지. 하지만 여행은 롱디의 연장선이지 끝은 아니잖아. 네가 내년에 프랑스에 온다고 해도 한 달, 두 달은 행복하겠지. 하지만 그 후는? 또 롱디의 시작이잖아. 나는 이제 내 커리어를 시작하는 시점이고 너도 너의 미래가 중요한 시점인데 우린 너무 불안정한 상태여서 롱디를 지속하는 건 힘들 것 같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롱디에 계속 이렇게 문자와 전화로만 연애를 하는 건 서로에게 힘들잖아."_상대
모든 말이 맞는 말이었다. 사실 마주 보고 싶지 않아 피했지만 우리의 관계는 너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가 한 번은 더 얼굴을 마주하고 그때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며 이후에 어떻게 할지, 어떤 미래를 결정할지 생각하면 된다고 여겼다. 일단은 다음 만남까지는 롱디가 지속될 거라 생각했다. 지금 이별을 하는 건 너무 일렀다.
"내가 내년에 프랑스 간다니깐? 왜 먼 미래를 벌써부터 걱정해."_나
"네가 올 때 난 중국에 있을 수도 있어, 그리고 만난다고 해도 우리의 결말은 크게 달라짐이 없을 거야. 근데도 네가 오게 된다면 난 부담만 느낄 것 같아."_상대
부담이라는 단어에 꽂혀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 그럼 한국에 있는 동안 그냥 편하게 지내려고 나 만났던 거야? 이렇게 떠나고 금방 헤어질 거면?"_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나오고 눈물이 더 터졌다.
"우리가 어떻게 지금 헤어져. 넌 나에게 첫 애인인데,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연 상대인데. 어떻게 벌써 이렇게 빨리 지금 헤어져"_나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설득하는 태도를 일관했던 애인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 놀랬다. 처음으로 본 애인의 눈물이었고 어딘가 마음에 이상한 위안이 되었다. 얘도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구나, 라는 위안이었나?
"나도 한국에 있을 때 어떻게든 비자 늘려보려고, 더 있어 보려고 노력한 거 알잖아. 내가 얼마큼 너를 좋아한 지 알잖아. 나한테도 네가 첫 여자친구고 소중해. 난 지금 당장 네가 내 앞에 있으면 좋겠어, 근데 그게 안되잖아 그리고 시간만 지체하면 우린 더 지치기만 할 거야. 네가 비행기 표를 끊기 전에 빨리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나도 급하게 이야기를 꺼낸 거야. 나도 너무 힘들어"_상대
모든 말이 맞았다. 상황이, 타이밍이, 환경이 다 아니었고 너무 급작스럽고 빠른 결정이지만 언젠간 내려야 했던 결정이었다. 그걸 누가 먼저, 언제,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 이 있다면 못 할 게 뭐냐? 일단 만나!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인데 일단 지속해!라고 하겠지만,
우리의 성향은 아니다. 나와 애인의 수많은 다른 점 중에서도 유일하게 잘 맞는 부분이 바로 자신의 삶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자기 우선적인 성향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에겐, 직업을 찾아야 하는 우리에겐, 서로의 인연보단 나의 인생의 밑그림이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게 일주일 동안 각자 시간을 가지고 주말에 다시 통화를 하자는 말을 끝으로 눈이 퉁퉁 부은 둘은 전화를 끊었다.
우리의 연애가 내가 프랑스를 갈 때까지는 이어질 거라는 믿음에 의심하지 않았던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당장의 미래도 사라진 느낌이었고 같이 지냈던 이 방의 공기가 차갑고 무겁고 심지어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