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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Jan 15. 2021

문재인 이후의 교육

한국교육,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함께 읽는 책 No. 27

이범(2020), 『문재인 이후의 교육』


이범(2020), 『문재인 이후의 교육』



문재인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두 가지 사건


이범 교육평론가의 <문재인 이후의 교육>은 "먼 훗날 한국 교육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문재인 이전'과 '문재인 이후'로 뚜렷하게 나뉠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그런가? 문재인정부 들어 겪은 두 가지 사건 때문이다. 첫 번째 사건은 2017년 수능 개편안, 2018년 대입 공론화,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에 따라 3년 간 벌어진 '대입제도 논쟁'이고, 두 번째 사건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보편적 원격 교육'이다.


사건1. 대입제도 논쟁

대입제도 논쟁과 관련하여 저자는 두 가지 주장을 펼친다. 첫째, 대입 경쟁과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부도덕한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경쟁의 양상이 1990년대를 기점으로 '출세경쟁'에서 '공포경쟁'으로 바뀐 부분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 대학입시 폐지,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공영형 사립대, 교육 분권 등 진보 교육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핵심 정책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진보 교육계의 '학종'에 대한 전반적 지지에 대하여 "시대를 오독하고 학부모를 비난하는 '갈라파고스 교육학'에 빠져 미래 비전을 제시할 임무를 저버리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건2. 보편적 원격 교육

저자는 보편적 원격 교육의 성공 요인으로 ① 높은 인터넷·스카트기기 보급률, ② 접속 환경이 열악한 학생에 대한 효과적 지원, ③ KERIS와 EBS로 대표되는 공공기관이 미리 준비한 플랫폼과 콘텐츠, ④ 엄청난 동시접속을 견뎌낸 시스템 지원을 꼽으며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된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한국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물론 보편적 원격 교육은 세 가지 과제를 남겼다. 첫째는 학습 결손 문제이며, 둘째는 돌봄 문제, 셋째는 교사-학생 및 학생-학생 관계 문제다. 이는 교육이 결코 '수업'으로만 국한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러나 보편적 원격 교육이 이른바 'K-방역'과 같이 'K-에듀'로 진화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피력한다. 그 이유는 '후진적 교권'때문이다.



K-에듀의 선결 조건: 교권 선진화


저자는 한국 교사들의 교권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① 교사가 충실한 기획과 준비를 하기 어려운 일정, ② 선택하거나 집필할 권한이 없는 교과서, ③ 지나치게 자세한 국가 교육과정, ④ 수업·평가를 제약하는 각종 규제, 특히 '학년' 단위 평가, ⑤ 교사 행정업무의 과다가 그것이다. 사실 이 다섯 가지는 그동안 교직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2019년 10월 23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OECD 국제교육컨퍼런스>에서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2030년을 향한 한국교육, 학생 성공을 다시 정의하다’라는 주제의 기조 연설을 통해 “한국의 교사는 미래 학생 성공에 있어 가장 큰 자산”이라며 “금전적 측면뿐만 아니라 전문성 측면에서도 가르치는 일은 더 매력적 직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은 현재 교사 전문성과 경력 관리 및 역량 개발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할 적기”라며 “교육의 변화를 위해 'Teacher Agency'를 장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교사의 자기주체성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Teacher Agency'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교사들이 그들 자신의 전문적 성장을 기획하고 동료들의 성장에 기여하기 위해 과감하고 건설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


슐라이허는 교사의 자기주체성 장려를 위해 (1)자율성, (2)동료네트워크, (3)지식기반교수 등 3가지 교사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정책 수단을 제안했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의 대처능력의 결정적 차이가 위에서 슐라이허가 언급한 3가지 교사 전문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저자는 코로나 이후 새로운 교육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 자율성, 콘텐츠 다양성, 보편적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을 저자가 표현한 것처럼 'K-에듀의 3가지 원칙'으로 칭할 수 있는가는 잘 모르겠다. 일단은 'K-에듀'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다음으로는 아무리 'K-에듀'라는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교육의 아주 오래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오래된 문제


대한민국 교육의 뿌리깊은 문제는 '타일러주의'와 '입시경쟁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상호 연결된 문제로 산업화 시대의 추격자 모델에 따른 것이다. 즉 '동일 교재, 동일 진도, 동일 시험'이라는 규격화된 알고리즘을 통해 산업화시대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저비용으로 생산해내고 입시경쟁체제를 통하여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추구해 온 것이다.


'타일러주의'가 혁신학교를 비롯한 진보교육 아젠다와 자유학기제, 고교학점제 등의 이슈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원격수업 상황을 통해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면, 입시경쟁체제는 여전히 강고하게 버티고 있다. 이 책의 2~4부는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 서열화는 물질적인 것으로 입시 제도 개선을 통해서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 교육 경쟁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그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대학 서열화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범 평론가의 분석을 살펴보자. 그는 대학 서열화의 원인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꼽고 있다.


① 교육 여건
학생 1인당 투입 교육비, 학생 대 교수 비율, 교육 프로그램의 질과 수준

② 후광효과(halo effect)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대학의 사회적 평판에 의한 영향

③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
동문 인맥으로 인한 사회적 유·불리 요인

④ 지리적 위치(인서울효과)
서울에 소재한 이른바 인서울(in서울) 대학이 선호되는 현상

⑤ 동료효과(peer effect)
재학 중 소속 집단에 의한 영향. '또래효과'라고도 함


그리고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① 교육 여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근거는 '학생 1인당 교육비' 통계다. 교육 여건을 충실히 확보해 대학을 설립하자마자 최상위 대학이 된 사례들 - 1980년대의 포항공대(포스텍)와 1990년대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 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대학들은 신생 대학이어서 학벌효과 ②, ③이 전혀 없는데도 단시간 내에 최상위 서열의 대학이 되었다. 또한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도 마찬가지다. 이 대학들은학벌효과 ②, ③ 뿐만 아니라 ④(인서울효과)도 없었다. 이러한 예를 통해 저자는 대학 서열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재정과 교육 여건이라고 강변한다.


저자는 대학 서열화가 학생 서열화(성적순 선발)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한다. 성적순으로 선발하면 대학 서열이 합격자의 합격선(커트라인) 순서로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 서열화(성적순 선발)가 대학 서열화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핀란드, 스웨덴, 독일(일부 전공) 등의 대학에서 지원자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워 선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이 서열화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학 서열은 물질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인서울 대학과 지방대학 사이의 교육 여건의 격차, 즉 큰 물질적 격차가 강력한 '경쟁의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득 격차가 커지고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보다 훨씬 이전으로 1980년대 후반 내지 1990년대 초반부터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때 시작된 한국사회의 양극화 원인을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를 꼽고 있다.


① 경제의 글로벌화 
특히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진입하면서 전 세계 평균 인건비가 반토막 난 것은 세계사적 사건이다. 브랑코 밀라노비 치가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Global inequality, 2017)에서 이른바 '코끼리 곡선'을 제시하며 지적한 요인이다. 특히 한국은 1980년대 말부터 수도권, 부산, 대구 등지의 수많은 섬유, 신발 등 경공업 업체 들이 폐업하거나 중국으로 옮겨갔다. 통계상으로도 1990년대부터 경공업 근로자 비율이 낮아진다. 1980년대 낮아지던 자영업자 비율이 1990년대 들어 다시 높아진 것도 이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② 노조의 분포와 전략
노조 조직률이 11.8%밖에 안 되는데 (2018년 기준) 그나마 그 분포가 매우 불균등하여 임금 지불 여력이 높은 대기 업·공기업 위주로 노조가 존재한다. 게다가 독일·스웨덴·일본 등지의 사민주의적 노동운동이 임금 평준화 전략 (특히 '동일 노동 동일 임금'으로 대표되는 연대임금 전략)을 구사한 데 반해, 한국에서는 기업별 노조를 중심으로 임금 극대화 전략을 구사했다. 자연히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가 강해질수록 경영진은 외주화와 비정규직 고용을 늘려 결과적으로 임금 격차가 심해졌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 비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진 시점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③ 기업 간 위계와 갑질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이에 나타나는 종속적 관계와 불공정 행위(각종 갑질 등)가 심해질수록 대기업 원청업체가 부당한 이익을 흡수해 임금 격차가 심해진다. 흔히 거론되는 '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탈취 (빼앗기)'뿐만 아니라 하청업체가 다른 원청업체에 납품하면 계약을 끊는 독점 거래 요구' 등 잘 드러나지 않는 불공정 행위가 적지 않다.

④ 일부 기업의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경쟁력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LG화학, SK 하이닉스 등 한국의 대표적 대기업들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런 기업들의 경쟁력과 순익을 하청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③) 만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기업들은 압도적인 연구개발 - 상품화 -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 또한 양극화를 심화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이범이 제시하는 문재인 이후 교육의 방향


이 책의 2~4부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정 담론을 상수로 취급해야 한다. 양극화의 심화가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렸다. 계층 상승 사다리의 붕괴는 헬조선을 탄생시키고 '공정' 신드롬을 불러왔다. 양극화의 심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개혁해야지 '공정 담론'을 '능력주의'에서 비롯한 허구/착각으로 해석하거나 차별/혐오로 간주하는 것은 정곡을 놓치는 것이며, "'구조'의 문제를 '도덕'의 문제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 양극화라는 구조가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 담론'을 대중의 무지 또는 오해로 바라보는 진보적 교육전문가들의 시각은 도덕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그 어떤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공정 담론을 양극화의 완화와 해소라는 중장기적 전략 속에서 잠정적인 상수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공정 담론'을 기본 전제로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물질적 접근을 해야 한다. 이범 평론가는 대입 경쟁은 학벌주의나 학생 서열화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학들 간의 교육 여건에 심각한 격차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며,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이른바 '공교육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하다. (대한민국 초중등교육은 투입과 산출 모두 OECD 상위권에 속하는 반면, 고등교육은 투입과 산출 모두 OECD 하위권이며, 고등교육 개혁이 대한민국 교육 개혁의 핵심이다.) 즉, 양질의 공공주택을 공급하지 않고 집값을 잡을 수 없듯이 양질의 공공대학들을 공급하지 않고 대입 경쟁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문재인 이후의 대한민국 교육은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구조적 해법을 제시한다는 전제 하에 '대학의 포용적 상향평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가지 모두 천문학적 재정이 요구되는 일로서 사회적 합의가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결국 제도적 개선이란 물질적 뒷받침을 필요로 한다. 물질적 개선 없이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고 해서, 출신 대학 차별 금지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이범 평론가는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를 대학의 '포용적 상형평준화-공동입학시스템'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포용적 상향평준화의 세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① 서울·수도권 주요 사립대를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② 대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 대학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③ 대학의 자율적 발전 전략을 허용해야 한다. 


물론 이 방식도 (당연히) 여러가지 난점이 존재할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스스로 예상 질문을 만들었다: 첫째, 어떤 대학들에 공동입학제 참여를 제안할 것인가? 둘째, 많은 학생이 공동입학하면 대학 교육의 수준이 하향평준화되지 않을까? 셋째, 의대·치대·한의대·수의대·약대·교대처럼 정원이 면허 숫자와 연동되어 상당한 경쟁이 불가피한 학과들은 어떻게 할까? 넷째, 대입제도는 어떻게 할까? 다섯째, 음악·미술·체육·무용 등 실기 평가를 요구하는 전공들은 어떻게 할까?


그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 역시 아직은 원론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야박하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는 당위에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려 노력한 것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교육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소위 '정치적 올바름' 혹은 '도적적 우위'에 서는 것으로 자족하는 것을 넘어 현실적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치밀한 준비를 필요로 하는지 보여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대한민국 교육의 뿌리깊은 문제는 '타일러주의'와 '입시경쟁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상호 연결된 문제로 산업화 시대의 추격자 모델에 따른 것이다. 즉 '동일 교재, 동일 진도, 동일 시험'이라는 규격화된 알고리즘을 통해 산업화시대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저비용으로 생산해내고 입시경쟁체제를 통하여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추구해 온 것이다.



함께 읽는 책 No. 27

이범(2020), 『문재인 이후의 교육』

이범(2020), 『문재인 이후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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