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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Aug 13. 2021

Y 선생님께

중등 수학교육과정에 대한 단상

Y 선생님께

저녁 식사는 하셨겠죠? X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저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수학 시험에서 35점을 받았던 충격부터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겠습니까?) 1년 내내 끙끙대고 수학만 공부했던 우울한 기억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2015 개정교육과정 <수학> - 고등학교 1학년에서 배우는 - 내용체계를 다시 꼼꼼히 봤어요. 다항식으로 시작하여 방정식과 부등식, 도형의 방정식, 집합과 명제, 함수와 그래프, 그리고 경우의 수로 끝나는. 참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게 하나의 책인데 말이죠. 교과서도 완결성을 갖춘 한 권의 책이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이 책은 서론도 없고 결론도 없는 그저 병렬식으로 나열된 매우 재미없는 책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서 미분과 적분을 공부할 때는 극한이라는 개념부터 시작하여 수학의 실로 꿰어지는 하나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어렵지만 재미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은 오직 이를 위한 준비기인가 그런 생각이 든 겁니다. 중학교 1학년 수학에서는 음수, 유리수, 미지수, 변수, 함수라는 수 인듯 수 아닌 듯한 ‘수’들 때문에 중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들이 큰 충격을 받는데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서는 이와는 차원이 다른 고등 개념과 난해한 수식의 폭탄을 맞게 되는 것이죠. 단지 미적분을 위해서. 그래도 되는 걸까요? 열 일곱 황금기를 이렇게 희생시켜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대안도 없으면서요...

생각이 여기서 멈추고 그럼 ‘중학교 수학은 어떻지?’ 하고 중학교 교육과정 쪽으로 내려가 봤어요. 중학교는 그래도 대수 - (통계) - 기하라는 흐름이 있고 학기별로 어느 정도의 완결성도 있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중학교 수학교육과정에 더 익숙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피타고라스 정리가 중학교 2학년으로 내려간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떠올랐어요. 다시 3학년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거죠. 아시겠지만 피타고라스 정리로부터 무리수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발생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피타고라스 정리가 무리수보다 먼저 나오는 게 맞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처럼 2학년에 있는 흐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곱셈공식이 2학년으로 내려오면 더 좋겠지만요. 그러다가 또다시 문득 이런 생각까지 떠올랐답니다. ‘아니, 중학교는 하나의 학년군인데 어떤 교과서는 2학년 때 피타고라스를 전개하고 어떤 교과서는 3학년 때 피타고라스를 전개하면 왜 안되는 거지? 학년군 내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영역들만 제시하고 그 내용체계의 흐름은 교과서별로 자율적으로 구조화하면 안되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나아간 것입니다. 한참 여기저기서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교육과정을 바꿀 때가 오니 그런 소리가 다시 잦아들고 있는 듯 합니다. 상상하지 않는다면, 아니 상상할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창의성은 나올 수 없습니다. 교육과정 개정 논의와 함께 또다시 어떤 내용 요소를 넣고 뺄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저는 이것보다 배치의 자율성을 허락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학교에 그리고 교사에게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허하라! 어떻게 저는 결론이 항상 똑같네요.. ㅎㅎ

늦은 밤 죄송해요. 푹 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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