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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Jun 20. 2021

미래를 예측하는 언어, 미분과 적분

한화택, 『미적분의 쓸모』를 읽고

깨달음의 길


1990년 여름이었다. 집 근처 독서실에 틀어박혀 『수학의 정석』 (아마 수학Ⅱ였을 거다)을 공부하고 있었다. 수열의 극한, 무한급수, 함수의 극한, 도함수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씨름하고 있었다. 숫자들의 배열에서 패턴을 찾는다는 것. 특히 영원히 나열되는 숫자들의 끝을 예측한다는 것은 뭔가 매혹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이고 당혹스러워서 자꾸만 꿈을 꾸게 하는 것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극한에 대한 문제를 풀다가 숱하게 잠이 들곤 했다. 어떤 때는 꿈 속에서 문제가 풀려 깨기도 했고 어떤 때는 팔이 저려서 깨기도 했다.


그렇게 현실과 꿈 속 세계를 오가며 씨름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이해되는 듯한 느낌이 온 것이었다. 그것은 끝없는 반복 - 내용설명, 문제, 유제, 연습문제, 그리고 해설집을 반복적으로 오고 가는 - 그러니까 학(學)과 습(習)의 교차 속에서 어느 순간 도달한 깨달음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여름방학 특강을 받으러 학교에 등교해야 했지만 가지 않았다. 학교가 너무 멀었고(집은 강서구 화곡동인데 학교는 마포구 연남동이었다) 그 시간이면 문제를 푸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사흘쯤 지났나.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상혁아 왜 학교에 안 오니?"


왜 안 갔는지, 그동안 뭘 했는지 설명을 드렸다.


"그래? 그럼 나오지 마라."


(그때 담임 선생님이 신규진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은 나중에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상담교사가 되셨고, 이후 과학과 상담에 관한 다수의 스테디 셀러를 출간하셨다.) 극한부터 도함수까지 '깨달음의 길'이 뚫리고 나니 그 다음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뭐 술술 풀리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미분'의 눈이 열리자 극대/극소 개념이든 최대/최소 개념이든 깊이 숙고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한편 당시 수학을 가르치셨던 이기백 선생님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매우 자유분방한 분이셨는데 수학을 푸는 것에 얽매이기보다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자유로움을 몸소 보여주시던 분이셨다. 오리엔테어링을 매우 좋아하셨고, 문제를 풀다가 가끔 막히기도 해서 그 문제로 수업 시간을 다 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업 준비를 잘 안 하신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ㅎㅎ 그래도 수학을 무척 좋아하신다는 느낌을 받았고 무엇보다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라 그것만으로도 뭔가 '좋은 선생님'이란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을 가르치셨던 정병채 선생님과 조두현 선생님도 각자 나름대로 개성이 뚜렷한 좋은 선생님들이셨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 어떻게 해서 나도 수학교사가 되었다.


한화택, 『미적분의 쓸모』



미적분의 쓸모


한화택의 『미적분의 쓸모』를 읽다가 괜한 상념에 빠졌다. 30년 전의 일이 주마등처러 흘러간다. 그리웠던 시간들이다. 책의 제목이 '미적분의 쓸모'다. 글쎄.. 사실 즐겁다면 쓸모까지 따질 필요도 없겠지. 이 책의 전작인 닉 폴슨, 제임스 스콧의 『수학의 쓸모』나 이 책 『미적분의 쓸모』나 결국 "도대체 수학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일 테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미적분의 쓸모를 느낄 것 같지는 않다. "와 정말? 그렇다면 미적분을 공부해야 겠구나!"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 책은 고등학교에서 미분과 적분의 개념을 열심히 익혔지만 이것이 실제 생활에서 왜 필요한지 납득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좀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어렵더라도 자신의 반복된 훈련과 노력으로 미분과 적분의 산등성이에 오른 사람에게 주는 망원경과 같은 책이랄까.


F=ma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미덕이 있다면 미분이라는 개념이 뉴턴의 운동법칙(동역학의 기본법칙)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뉴턴의 꿈으로 돌아가보자. 뉴턴의 꿈은 천체의 움직임, 즉 우주라는 공간상에서 시간에 따른 천체의 위치 변화로 만유인력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의 공식(F=ma)을 이용하면 뉴턴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단 천체의 움직임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시간에 따른 천체의 위치를 관찰하고, 이로부터 천체의 가속도를 알아내야 했다. 
뉴턴에게 남은 숙제는 이 가속도를 이해하고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속도를 수학적으로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 만든 개념이 바로 미분이다. 미분은 근대에 탄생한 움직임에 관한 수학이다.

한화택, 『수학의 쓸모』 19~20쪽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미분학(Differential calculus)은 변화에 대한 학문이다 데카르트에 의해 공간 상의 물체의 이동을 숫자와 문자로 표현하게 된 이후, 뉴턴이 밝혀낸 힘-물체-가속도 사이의 관계를 통해 시간에 따른 물체의 변화를 예측하게 된 것인데, 이를 표현하기 위한 사유의 언어가 바로 '미분'인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책은 최적화, 적분, 미분방정식 등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일상생활 속의 현상들과 관련지어 나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수학이라는 것이 대학입시와 그 관문으로서의 특수목적고 입시의 도구일 때, 수학의 쓸모를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학서열화와 이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의 결과로 파생된 것이지 수학 그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엘리트주의의 도구로서의 수학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반대하지만 반지성주의에서 비롯된 수학에 대한 적대심도 경멸한다. 이 책이 그 사이를 지나가게 해주는 하나의 지도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미분은 근대에 탄생한 움직임에 관한 수학이다.



덧: 나비에-스토크스 유동 방정식


이 책은 Ⅳ장에서 미분방정식, 특히 나비에-스토크스 유동방정식을 다루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미분방정식은 "미지의 함수와 그 도함수, 그리고 이 함수들의 함수값에 관계된 여러 개의 변수들에 대한 수학적 방정식이다. 미분방정식의 계수는 미분 횟수가 가장 많은 독립 변수의 계수가 결정짓고, 차수는 계수를 결정 지은 독립 변수의 미분꼴이 거듭제곱된 횟수에 따라 결정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분방정식"으로는 맥스웰 전자기 방정식, 슈뢰딩거 파동 방정식, 블랙숄즈 방정식, 감염확산 SIR 방정식, 그리고 나비에-스토크스 유동 방정식이 있다. 


유체의 속도 벡터를 구하기 위한 나비에-스토크스 유동 방정식은 "압력, 점성력, 중력 등 유체에 작용하는 힘과 가속도의 관계로부터 유도된 비선형 편미분방정식"으로 F=ma라는 뉴턴의 제2법칙을 연속적으로 흐르는 유체에 적용한 것이다. 클로드 루이 나비에는 프랑스의 공학자이자 물리학자였고, 조지 가브리엘 스토크스는 아일랜드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다. 나비에는 1822년에 점성이 있는 유체의 흐름에 대한 편미분 방정식 체계를 세웠고, 20년 후에 - 이  방정식의 수학적 완성도를 높인 - 스토크스가 발표했다.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자세하고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한 권은 케이스 데블린이 쓴 『수학의 밀레니엄 문제들 7』이고, 다른 하나는 이언 스튜어트의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이다. 특히, 이언 스튜어트의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에서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응용 분야 중 하나로 기후 변화, 다르게는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왜 그런가? 


기후의 두 가지 핵심적인 구성 요소는 대기와 대양이다. 둘 다 유체이고, 둘 다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통해 연구될 수 있다. 2010년에 영국의 주요 과학 기금 제공 단체인 공학 및 물리학 연구 위원회에서는 기후 변화에 대한 보고서 한 편을 발표하면서 수학의 힘에 주목했다. "기상학, 물리학, 지리학을 비롯한 수많은 분야들의 연구자들 모두 자기드르이 전문성을 기여하지만, 수학은 이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기후 모형에서 실현시켜 주는 통합적 언어다." 수학의 통합적인 힘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 보고서는 또한 "기후 시스템의 비밀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에 감춰져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곧장 풀기에 너무 복잡하다."라고 설명했다.

- 이언 스튜어트,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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