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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Jan 02. 2021

Alternative Math

Alternative Fact와 수학적 진실

Alternative Fact


David Maddox의 단편 영화 『Alternative Math』(2017)는 'Alternative Fact'에 영감을 얻은 듯하다. 'Alternative Fact'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인수위 고문이었던 켈리엔 콘웨이(Kellyanne Conway)가 창조해낸 말이다. 2017년 1월20일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다. 언론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 사진을 나란히 실어, 트럼프 때 참석 인원이 훨씬 적다는 ‘사실’을 내보였다. 화가난 트럼프는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에게 언론 브리핑을 지시했고, 이튿날 스파이서는 “역사상 최대 취임식 인파”였다고 발표한다. 압권은 1월22일 켈리엔 콘웨이의 NBC 뉴스 인터뷰였다. 진행자가 “왜 첫 브리핑부터 거짓말을 했느냐”고 묻자, 콘웨이는 “당신은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스파이서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답한 것이다.1)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사진(위)과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사진(아래).


그러니 이 영화의 제목 'Alternative Math'를 평범하게 '대안수학'으로 번역하면 의미 전달이 잘 안된다. 우리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대안'이라는 말은 이 영화에서 의미하는 - 또는 켈리엔 콘웨이가 말한 - 'alternative'와는 다른 용례를 갖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트럼프와 콘웨이가 'alternative'의 의미를 망쳐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역시 '대안'이라는 말의 의미가 꼭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안'을 허용하는 헌법의 정신을 교묘히 악용하여 제도를 사유화하고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Alternative Math


이 영화는 수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공교육에 대한 이야기, 정확히는 공교육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공교육의 위기는 정치적 위기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공적인 거버넌스가 약화되고 깨어있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때 가장 쉬운 표적이 되는 곳은 학교이다. 영화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벌어지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해프닝의 발단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2+2는 얼마인가? 


2 더하기 2는 4가 아니라 22일 수도 있지 않은가? 답이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누가 보장하는가? 답이 없을 수도 있고 무수히 많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은 질문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기본 전제를 흔들고 전복시키는 것은 사고의 전환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단지 흔들어만 놓고 멈췄을 때, 남는 것은 폐허가 된 사유의 잔재들 뿐이다. 


https://youtu.be/Zh3Yz3PiXZw


사실 2+2=4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은 페아노의 공리계(Peano’s axioms)에 의해 보장된다.2) 그러나 덧셈을 할 때마다 페아노의 공리계를 사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사고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니 학생이 교사에게 "선생님! 2 더하기 2는 4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교사가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그 학생의 발달 수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떤, 특히 이 영상에 나오는 학생에게는 "아니, 2 더하기 2는 4야. 선생님의 설명을 제대로 듣고 열심히 배우도록 해라."가 적절한 응답인 것이다. 


교육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적 사유체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사유의 모험이기를 포기하고 지적 흉내내기 혹은 또하나의 클리셰로 전락할 때, 폐허가 된 사유의 잔재들은 반지성주의의 도구가 된다. 이런 세상에서 차이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의 추구는 뻔뻔하고 몰지각한 자기 합리화의 근거로서만 악용될 뿐이다. 영화에서 미국 공교육의 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수학을 택한 이유는 자명해보인다. 수학이란 조던 엘렌버그가 표현한대로 '틀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수학적 사고의 힘이라고 부른다. 



배움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배움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수학은 단지 맞고 틀림을 판정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교육적이다. 틀리지도  않고 모르지도 않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배운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깨달아가는 성찰의 과정이다.   


영화에서 '정서적 학대', '전체주의', '급진적'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대안적 사실'을 만들어내는지 보는 것은 흥미롭다. 그것이 위악적이지도, 낯설지도 않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글을 쓰다 보니 '이 영화는 수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처음의 주장이 틀렸다는 걸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와 함께 명멸해온 다양한 수학 중에서 현재 우리가 배우는 수학의 상당 부분은 그리스 민주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수학적 추론, 수학적 의사소통, 수학적 문제해결은 교육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에 초대하는 것이 정서적 학대 운운될 때, 우리는 다시 2+2=4임을 증명하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


David Maddox, 『Alternative Math』(2017)


교육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적 사유체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사유의 모험이기를 포기하고 지적 흉내내기 혹은 또하나의 클리셰로 전락할 때, 폐허가 된 사유의 잔재들은 반지성주의의 도구가 된다. 이런 세상에서 차이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의 추구는 뻔뻔한 자기 합리화의 근거로서만 악용될 뿐이다. 


1) http://www.hani.co.kr/arti/871449.html


2) https://ko.wikipedia.org/wiki/%ED%8E%98%EC%95%84%EB%85%B8_%EA%B3%B5%EB%A6%AC%EA%B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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