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호, 『질문과 유추로 탐구하는 수학수업나침반』
이 글은 교육공동체벗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오늘의 교육> 65호(2021년 11+12월호)에 실린 리뷰글입니다.
박철호 선생님의 『질문과 유추로 탐구하는 수학수업 나침반』은 귀한 책이다. 복잡다단한 교육현장에서 좋은 교사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피타고라스 정리에서는 이런 유형의 문제가 나와”라고 설명하는 교사와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라고 질문하는 교사 사이의 틈새 속에서 수학교사는 자신만의 교육적 관점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
우리나라가 백 명의 마을이라면 그중에 스무 명은 지금 학교에 있다.1) 2021년 기준 전국 초·중·고등학교 수는 총 11,777교이며2), 이 모든 학교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왜 그런 걸까? 수학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배운단 말인가?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일단 수(number)와 수학(mathematics)은 다르다. 수 개념 및 수 상징화의 기원은 인간이라는 종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할 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배우는 ‘mathematics’로서의 수학은 기본적으로 그리스 문명을 기원으로 한다. 이것은 마치 한 아이의 성장사와 유사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수 개념을 본능적으로 학습하며 심지어 그것을 즐긴다. ‘수학’ 포기자는 있을지언정 ‘수’ 포기자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제도로서의 학교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수학’을 학교 교육과정 속에 포함하고 있으며 심지어 국가별로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를 비교·분석하기까지 한다.3)
이 글에서 말하는 수학은 교육제도 속에서의 수학, 구체적으로는 초·중등 학교수학이다. 우리나라 수학과 교육과정은 ‘수학교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4)
수학과는 수학의 개념, 원리, 법칙을 이해하고 기능을 습득하여 주변의 여러 가지 현상을 수학적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태도를 기르는 교과이다.
또한 우리나라 수학과 교육과정에서 정의하고 있는 ‘수학’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5)
수학은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으며, 세계화・정보화가 가속화되는 미래 사회의 구성원에게 필수적인 역량을 제공한다. 수학 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수학의 규칙성과 구조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고, 수학의 지식과 기능을 활용하여 수학 문제뿐만 아니라 실생활과 다른 교과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세계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과 민주적 소통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
한편 대한민국의 (수학)교사는 다음과 같은 교육과정 역학 속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된다.
즉 학교수학은 시간적으로는 초·중·고 12년의 과정이며, 공간적으로는 교실과 교실 밖,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이루어지고, 내용적으로는 교육기본법에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국가교육과정에 규정된 교과로서의 수학을 학생의 삶의 맥락과 연결하는 복잡다단한 과정인 것이다.
좋은 수학 수업이란
박철호 선생님의 『질문과 유추로 탐구하는 수학수업 나침반』은 귀한 책이다. 복잡다단한 교육현장에서 좋은 교사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피타고라스 정리에서는 이런 유형의 문제가 나와”라고 설명하는 교사와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라고 질문하는 교사 사이의 틈새 속에서 수학교사는 자신만의 교육적 관점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전국수학교사모임의 학술지인 『수학과 교육』 등에 기고했던 글들을 주제별로 정리하여 논리적 순서로 재구성한 것으로 수학 수업 시간의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날카로운 지적에-속으로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태연작약하게 답변하는 상황들이 중간중간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다음은 고등학교 ‘경우의 수’ 수업의 한 장면.
학생 A: 선생님, 1, 2, 3, 4가 적힌 네 장의 카드를 섞은 후에 임의로 1장을 선택할 때, 1장을 그냥 통과시킨 뒤에 그 다음 장을 선택하면 가장 큰 수(4)를 뽑을 확률이 높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 글쎄, 그냥 임의로 선택하는 경우라면 두 번째 장을 선택하는 경우도 확률은 1/4로 같은데, 왜 그렇지?
학생 A: 선생님, 이 책(구로다 토시로, 『수학은 실험이다』)에 그렇게 나와 있는데, 선생님은 이 책을 다 읽지 않았습니까?
나: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책의 모든 내용을 정확하게 숙독한 것은 아니야. 이 책도 관심을 가지고 정확하게 읽은 내용도 있고, 그냥 가볍게 읽은 주제도 있어. 이 문제는 자세히 보지 않은 내용이네. 문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
- 박철호, 『질문과 유추로 탐구하는 수학수업 나침반』 213쪽
위의 밑줄은 저자가 원문에 직접 표시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사로서는 숨기고 싶은 내용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강조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장면은 책의 곳곳에 등장한다. 다음은 고등학교 ‘공간도형과 공간좌표’ 수업의 한 장면.
학생 C: (잠시 생각을 하더니) 정사면체의 경우, 회전축 말고 또 다른 모서리가 밑면에 평행할 때, 정사영의 최댓값이 나오므로 정육면체에서도 회전축 말고 또 다른 모서리가 밑면에 평행할 때인 것 같은데… 아무튼 정육면체일 때, 그림자의 모양을 조사하여 정사영의 최댓값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 글쎄, 좋은 질문인데 정육면체의 정사영의 최댓값이라는 문제를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음, 지금 당장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떠오르지 않는데 고민을 좀 해보고 설명하지. 너희들도 한 번 생각해봐.
학생 B: 샘, 당황했죠? 당황했다는 것은 좋은 질문을 했다는 의미니까 학생 C에게 두 문제를 푼 것으로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 박철호, 같은 책 262쪽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은 많지만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또 다른 노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이 책처럼 수학적 내용에 관한 학생의 질문과 교사의 답변, 교사와 교사의 대화가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교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화려하게 포장한 겉만 번지르르한 책들, 교육 공동체 공동의 성과를 마치 자신의 업적인 양 사유화한 책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수업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고민의 지점을 진중하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좋은) 수업의 출발은 (학생의) 질문이다.
학생의 질문을 잘 받아들이려면, 교사의 철학에 근거한 인식론적 바탕도 중요하다. 교사의 역할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인지, 학생들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게 하는 것인지, 수업에서 여러 요소를 모순론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인지 등이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분명한 것은 교사의 인식론적 안목이 넓을수록 학생의 질문을 잘 이해하고, 수업을 유의미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 박철호, 같은 책 서문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좋은 수학 수업이란 무엇인가?’ 둘째, ‘수학이란 무엇인가’ 이 두 질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수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의 차이에 따라 좋은 수학 수업의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지식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 이미 발견해 놓은 지식이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견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핵심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지식을 잘 전달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요즈음 선생님들 가운데는 교재 연구를 하기 전에 EBS 강사가 수업하는 장면을 연구하여 수업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술자리에서 자주 듣는다.
- 박철호, 같은 책 250쪽
독일의 교육학자 힐베르트 마이어는 좋은 수업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4개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4개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에게 좋은가? 좋은 수업은 인문계와 실업계, 남학생과 여학생, 재능이 많은 학생과 적은 학생의 구분 없이 모든 학생에게 타당해야 한다. 둘째, 어떤 교과를 위해서 좋은가? 좋은 수업은 모든 교과목, 모든 수준의 학교, 그리고 모든 학교 형태에 타당해야 한다. 셋째, 어떤 목표를 위해서 좋은가? 좋은 수업은 학생들의 인지적 학습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습과 실천적 학습도 촉진한다. (어쩌면 마지막 질문은 앞의 세 가지 질문을 포괄하는 질문일 수도 있다.) 넷째, 다른 수업을 위해 유용한가? 좋은 수업은 나뿐만 아니라 동료 교사에게도 좋은 수업이어야 한다. 즉, 교사(학습공동체)의 수업전문성의 기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힐베르트 마이어의 기준-물론 이것이 좋은 수업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겠지만-을 정확하게 충족한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수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폭넓고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수학교사라면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수학의 본질에 대한 교사의 해석과 교육학적 입장에 따라 수학 수업의 문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종희는 인지수학자 Keith Devlin을 인용하며 ‘what if?’ 라는 가설적 사고와 탈현장적 추상을 특징으로 하는 ‘off-line thinking’이 인류의 문법적 언어와 상징적 수학의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6) 즉 수학적 사유라는 것은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라인적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딴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위한 수학’이라고 하면 가끔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수학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칙연산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말한다. 또는 어려운 수학을 배우더라도 금융수학 등과 같이 뭔가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을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오해도 있다.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수학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니 뭔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수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오해가 발생하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학습자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없이 고난도 문제 풀이에 대한 화려한 스킬을 과시하거나(‘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높은 적중률을 자랑하는(‘다른 건 신경 쓰지마. 이것만 풀면 돼’) 오직 1등만을 신경 쓰는 수학 수업이 기성세대의 청소년기에 큰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저자가 말하는 수학의 본질은 책의 제목에 이미 나와 있다. 바로 질문, 유추, 그리고 탐구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유추(類推, analogy)다.7) 유추는 앞에서 말한 ‘what if?’ 혹은 ‘off-line thinking’의 핵심적 기술로 결국은 사물의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그리고 근경(近景)과 원경(遠景)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9월 수업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놀랍게도 부제가 ‘미적분 문제해결에서 교학상장하기’이다. 수능을 2개월 앞둔 시점에 ‘미적분’으로 ‘교학상장’을 하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물론 저자가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교사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입시제도가 당장 변할 것은 아니므로 교사가 수업에서 피폐해지지 않으려면 수업에서 발견의 기쁨이나 배움의 기쁨을 느끼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계속 강조하지만 이것은 단지 강의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상호작용을 통해 수업이 이루어진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수학교사도 최소한의 실천적 교육학 이론을 공부해야 함을 의미한다.”8)
결국 구조라는 것은 오직 행위자들의 실천을 통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 사실 구조와 행위자는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이다. 즉 행위자라는 것은 사람과 사물의 동맹이며, 구조라는 것은 행위자들의 연결망이다. 그리고 행위자들의 핵심은 교사와 학생이며 구조의 핵심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인 것이다.
학생 C: 선생님은 이런 풀이를 어떻게 다 알아요?
나: 선생님이 지난 토요일 오후부터 땀 흘리면서 교재 연구를 한 덕분이기도 하고, 여러분 선배들이나 옆 반 학생들의 생각을 끌어모은 덕분이야. 여러분이 예리한 질문이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을 선생님이 다시 공부해서 다양한 풀이 방법을 탐구하게 되는 거야.
학생 A: 그래도 선생님, 존경합니다!
- 박철호, 같은 책 276쪽
교사가 학생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좋은 수업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누구는 아직도 교과서와 칠판이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교사와 학생을 연결하는 목소리들과 칠판에 적힌 불완전한 사유의 흔적들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수학 수업이 구성될 수 있다. 삶을 위한 수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학교 밖으로 벗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학교는, 교실은 약육강식의 불공정한 세계로부터 학생들을 분리시키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세계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보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성찰하게 하는 장치일 수 있다. 그러니 ‘삶을 위한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교사와 학생의 치열한 수학적 추론, 수학적 문제해결, 수학적 의사소통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각주
1) 전국의 유·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6,493,520명이고, 대학생 수는 2,633,787명이며, 어린이집 보육 아동 수는 1,365,085명이다. 아동, 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교직원들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2) 초중등교육규모. e-나라지표. 2021년 전국의 초등학교 수는 6157, 중학교 수는 3,245, 고등학교 수는 2,375이다. 참고로 유치원 수는 8,705, 대학교 수는 336이다.
3) 대표적인 것으로 TIMSS(Trends in International Mathematics and Science Study;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와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가 있다.
4) 교육부(2015).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8] 수학과 교육과정.
5) 교육부(20155). 같은 책.
6) 이종희(2017). 인류의 처음 수학:수 개념 및 수 상징화의 기원에 관한 역사·인지적 탐구. 유아교육연구. 제37권 제5호, 105-128.
7) 수학은 원래 추론(推論, reasoning)의 학문으로 추론에는 유추 말고도 연역(演繹, deduction)과 귀납(歸納, induction)이 있다.
8) 박철호(2021). 질문과 유추로 탐구하는 수학수업 나침반. 경문사. 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