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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Jan 30. 2022

함께 만들어 가는 수학 이야기

쏭쌤, 정담(2021), 『적분이 콩나물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

최수일(2017),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



MF23 워크숍 '추천도서 북토크'를 제안받다


Math Festival 추천도서들을 읽고 자기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샘이 사회를 맡아주시면 너무 좋겠는데 괜찮으실까요?


두 달 전 쯤으로 기억합니다. 전국수학교사모임 집행부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습니다. 2022년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온라인으로 전국수학교사모임 제23회 Math Festival(MF 23)이 열리는데 MF23에서 추천된 도서들을 중심으로 북토크를 진행해주었으면 한다는 거였습니다. 수학교사로서, 또 책과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하여 (서울시교육청 중장기교육계획 수립을 위한 서울교육중기발전계획위원회를 추진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제안을 수락하자 그 다음 과정은 오로지 저의 몫이었죠. 과연 어떤 방식으로 북토크를 진행해야 재미와 의미를 모두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게 관건이었습니다.


제23회 Math Festival(MF 23) 웹자보


일단은 MF23에서 추천된 도서들의 목록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주옥같은 책들이 많았지만 일단 저의 취항에도 맞고 북토크의 성격과도 어울리는 책들을 꼽아보니 여섯 권으로 압축이 되었습니다. 국내서로는 쏭샘, 정담의 『적분이 콩나물을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 최수일의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 최지범의 『개미의 수학』이, 국외서로는 알렉산더 즈본킨의 『내 아이와 함께한 수학일기』, 메리 케인 스테인의 『효과적인 수학적 논의를 위해 교사가 알아야 할 5가지 관행』, 그리고 이언 스튜어트의 『생명의 수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섯 권도 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국외서의 경우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할지 더 막막했구요. 고민 끝에 쏭샘, 정담의 『적분이 콩나물을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와 최수일의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를 북토크 주제도서로 선정했습니다.



나는 왜 이 책을 선정했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두 권의 책을 선정했는가? 이 글은 바로 그 이유에 대하여 저 나름대로 정리해보고자 하는 일종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쏭쌤, 정담의 『적분이 콩나물을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 프롤로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도대체  수학은 배워서 뭐해요?


아마도 이 질문은 대한민국의 수학교사라면 누구나 받았을 질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질문 속에 이미 '수학을 왜 배우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산에 있는 한 학교에서 수학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하고 있는 『적분이 콩나물을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의 공저자 쏭쌤 역시 이 질문을 마주한 것입니다. 이 상황을 그대로 옮겨 볼게요.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방청객으로 온 수학 교사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차함수 같은 건 왜 배우는 겁니까?" 마치 나에게 질문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고민이 팟캐스트 방송으로 연결되었고, 운좋게 좋은 출판사를 만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 쏭쌤·정담 『적분이 콩나물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 중에서


이 질문은 저를 흔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같은 고민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한성여자중학교에서 수학교사로 학생들을 교육할 때 '수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학생들에게 - 그리고 심지어는 학부모와 동료교사들에게 - 나름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오늘의 교육> 지면에 동료 수학 선생님들과 함께 일 년 간 '삶을 위한 수학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그 중 한 편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ysh2084/11


이 글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온통 0부터 9까지의 숫자들로만 이루어진 이상의 시 <오감도 시제4호>를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존 케이지의 음악 <4분 33초>는요? 피아니스트가 건반 덮개를 열었다가 4분 33초 후에 다시 닫는 것으로 끝이 나는 음악말입니다. 수학 교과서를 이상의 시처럼 읽고 수학 선생님의 음성을 존 케이지의 음악처럼 듣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상의 시보다, 존 케이지의 음악보다 더 막막하게 수학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이러한 질문이 적콩무의 질문을 통해 다시 저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삶을 위한 수학교육의 두 가지 방향


『적분이 콩나물을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의 최대 강점은 "학창 시절 수학이 참 싫었다"는, ‘수포자의 대변인' 정담과 쏭쌤의 티키타카에 있습니다. 다음은 책의 에필로그에 나와 있는 정담의 고백입니다.


나는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데 수학은 그런 내 발목을 잡는 괴물 같았다. 그런 불안감과 긴장감에 마침내 수학 수능 1번을 틀리고 만다(1번은 맞히라고 주는 단순 계산 문제다). 수능 다음 날, 수학 교과서와 문제집을 그냥 버리는 게 분이 안 풀려서 모두 모아 불태웠다. 수학은 어떤 의미로든 트라우마가 되어 인생으 오점으로 남았다.

- 쏭쌤·정담 『적분이 콩나물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 중에서


이게 정담만의 고백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팟캐스트 '적콩무'의 성공은 정담과 같은 '수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적콩무'가 더 이상 세간의 화제가 되지 않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 걸까요?


MF23 추천도서 북토크 「數Book數Book: 함께 만들어 가는 수학 이야기」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수학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제23회 Math Festival의 주제가 ‘수학교육의 방향을 묻다’이기도 했죠. 저는 수학교육의 방향에 있어서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새로운 서사의 창조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수학을 배우는 이유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사실 누구나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학이 변별력의 도구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수학을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등의 엘리트적 사고방식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새로운 교수법의 발명입니다. 획일적인 교육과정과 주입·암기식 교육에 대한 오래된 비판은 수학교육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야 합니다. 학습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깊은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적 실천들이 수학교육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 - 서사의 창조와 교수법의 발명 - 는 상호보완적입니다. 그런데 두 권의 책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분이 콩나물을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가 '배우는 존재'를 독자로 설정하고 있다면,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는 '가르치는 존재'를 독자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후자가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수학, 수학 맞습니까?’라고 독자에게 묻고 있는 것처럼 전자 역시 ‘당신이 학창시절에 배웠던 수학, 그거 수학 맞습니까?’라고 질문하고 있거든요.


최수일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右)와 쏭쌤, 정담 『적분이 콩나물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右)



서로를 보완하는 『적콩무』와 『지금 수학』


단순하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적분이 콩나물을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가 다가가기가 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죠.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학교사들 역시 자주 받는 질문이기도 하구요. 그러다보니 책 제목을 보고 ‘그래 맞아.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되는 겁니다. 반면에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는 왠지 책을 읽으면 뜨끔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꾸짖는 것 같고 반성해야 할 것 같고 그런 느낌이요. 큰 맘 먹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책.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지금 수학』은 ‘A 선생님’의 질문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더군요. 그리고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라는 질문 역시 저자 본인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하여 책을 읽는 내내 (당시 초임 교사였던) A 선생님이 10여 년 전 따지듯 던진 질문이 모였는지, 그때 저자는 뭐라고 답변을 했었던 것인지, 그리고 (그때의 부족한 답변으로부터 시작된) 이 책의 내용이 이제는 A 선생님에게 충분한 답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교육 분야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교수자 위주의 전통적인 수업에서 학습자의 배움 중심, 협력과 배려, 토의와 토론 등으로 학습의 초점을 옮길 것을 요구합니다. (중략) 수학교육에도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 개발이 시급합니다. 지금 수학교과서의 내용과 형식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내지 못합니다. 학습자의 배움 중심, 협력과 배려, 토의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교과서가 아닙니다. 

- 최수일,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 중에서


30여 년간 한국 수학교육의 최전선에서 수학-교사-학생의 소통을 위해 힘써 온 최수일 선생님은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에서 구성주의적 교육론의 입장에서 현 수학교육 시스템을 비판, 해외의 사례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좋은 과제'로 대표되는 배움 중심의 교육철학과 '3단계 학생 활동론'으로 대표되는 미래를 향한 수업 방법론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바로 '개념학습'입니다. "수학 학습에서는 수학의 본질적 구조 그 자체오 그것을 둘러싼 연결 관계를 개념이라고 통칭"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정의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정리를 유도 또는 증명하는 공부를 하는 것, 그리고 이것들을 연결하는 것"이 개념학습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학생의 자기주도성 개발과 개념 연결성 확보를 통해 ‘외우는 수학, 포기하는 학생’을 위한 소통과 배움의 수학 교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지하철을 타면 책은커녕 신문을 읽는 사람도 찾기 어려운 요즘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또 그걸 토론을 한다구요? 수학교육의 방향을 묻는다고요? 가장 쓸모없는 방식으로 너무나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보다 수학 선생님들 중에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기는 한 걸까요? 그것도 수학과 관련된 책을요. 솔직히 말해서 워크숍을 준비하는 내내 이런 질문이 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여 쏭쌤·정담과 최수일 선생님 외에 두 분의 특별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책으로따뜻한세상을 만드는 교사들(책따세)을 중심으로 수학교육을 책읽기 및 책쓰기 교육과 접목하여 실천해 온 류수경 선생님과 수포자 문제를 교육사회학적 관점에서 심도깊게 다루어온 김성수 선생님을 지원군으로 섭외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워크숍은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첫째날 45명, 둘째 날 35명 총 80명의 동료 수학선생님들이 MF23 추천도서 북토크 「數Book數Book: 함께 만들어 가는 수학 이야기」에 참여해주셨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북토크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지난 해 말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이 발표되었습니다. 현재는 총론의 방향성에 기반하여 각 교과별로 각론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이후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학교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포함한 국가 수준 평가의 변화 없이 수학교육의 개혁만을 논하는 것은 '언발에 오줌누기'나 다름없습니다. 수능 절대평가를 비롯하여 국가 수준 평가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평가 혁신 없이 '4차 산업 혁명', '미래교육' 운운하는 사람은 일단 사기꾼이라고 봐야 합니다.


교육과정에 대한 성찰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국가 수준 교육과정 개발의 중심이 현장 교사들에게로 이전되어야 합니다. '왜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들여다보지 않는가?' 교육과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교사가 교육과정 개발의 주체가 되는 순간 모든 교사가 교육과정을 들여다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둘째, 수학교사들이 단순히 수학 교과라는 틀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생들은 단지 수학만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수학교사들에게는 수학교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모든 교과의 교사들에게 마찬가지이겠지요. 이제 교사 입장이 아니라 학생 입장에서 교육과정을 바라봐야 합니다. 교육공동체가 숙의하여 만들어가는 학교교육과정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MF23의 성료와 함께 북토크도 끝이 났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수학교육 이야기 말입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 2단계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각론입니다. 전국의 수학교사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학생 중심의 미래지향적인 2022 수학과 교육과정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함께 합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제안서>와 <2단계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 홍보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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