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함께 읽는 책 No. 40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2018),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 간 정당·정치제도의 차이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다. 트럼프 당선 직후인 2016년 12월16일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해 화제가 됐다. 이 칼럼을 기초로 동료 학자 대니얼 지블렛과 저술한 책이 바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이다.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신호
저자들은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 신호를 소개한다. 첫째,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둘째,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셋째,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넷째,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정치인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 중 하나라도 충족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감별법을 도널드 트럼프에 적용하고 있지만, 나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규범으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꼽는다. 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제도적 자제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제의 반대는 무엇일까?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 즉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밀어붙이고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발견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미국 민주주의의 시한폭탄
그렇다면 미국에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국이 민주주의의 모델이라서? 아니다. 저자들은 미국 정치 시스템을 떠받치는 규범이 인종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1877년 타협과 1890년 (헨리 캐벗 로지가 발의한) 연방 선거법안 부결. 즉 흑인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남부 지역의 민주당 일당 독제를 양당이 묵인한 것. 이것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의 기반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는 흑인과 여성이 미국을 대표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자들의 백래시였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이 시한폭탄에 불을 붙인 것이고.
물론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에 몰고 온 파장은 컸다. 그는 국가기관을 장악했고, 경쟁자와 반대자를 처벌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공격하고 공직자윤리국에 압박을 가하기까지 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전형적인 전제주의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민주주의 규범 파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선거 결과는 '부정선거'로,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은 '가짜뉴스'로 몰고 가면서 스스로 가짜뉴스의 생산자가 되었다. 그는 거짓 선동에 대해 댓가를 치르게 될까? 최근 콜로라도 대법원의 판결은 아직 미국 민주주의에 희망이 있음을 말해준다.
트럼프 충격 이후 일부 민주당 인사들이 백인 노동자 계층과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를 위해서 소위 '정체성 정치'에서 한 걸을 물러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핵심 메시지는 백인 노동 계층의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소수민족, 소수인종의 영향력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것이 끔찍한 발상이라고 말한다. 다민족 민주주의는 미국의 중차대한 과제이며 여기서 후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과연 미국은 다민족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민주주의란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미국의 운명이 위기를 맞았던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한 시점에, 작가 E. B. 화이트는 미 연방정부의 ‘작가 전쟁위원회’로부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짤막한 답변을 들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다음은 E. B. 화이트의 대답으로 8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답변이 아닐까 싶다.
“물론 위원회는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란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침이다. 민주주의는 ‘don’t shove(밀지 마세요)’에서 ‘don’t’에 해당하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톱밥을 가득 채운 셔츠에 난 구멍이며, 높은 모자 위에 움푹 들어간 곳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절반 이상의 경우에서 옳다는 생각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다. 투표장에서 느끼는 프라이버시, 도서관에서 느끼는 교감, 곳곳에서 느끼는 활력이다. 민주주의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9회 초의 점수다. 민주주의는 아직 반증되지 않은 이념이며, 타락하지 않은 노래 가사다. 민주주의는 핫도그에 바른 머스터드, 그리고 배급받은 커피에 넣은 크림이다. 민주주의는 전쟁이 한창인 어느 아침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대답해달라는 전쟁위원회의 요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