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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Aug 12. 2024

개학 첫날에

다시, 모두가 행복한 영림중학교

선생님 안녕하세요.

개학 첫날,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드립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     


나는 문학에는 항상 일종의 이타심이 함께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저자로서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고,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기를 원합니다. 칭찬과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또한 보편적인 다수의 시각에서 봐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뭔가를 쓰고 싶어 합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모든 좋은 책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세상에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인물들과 질문들, 새로운 발견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 올가 토카르추크, 『다정한 서술자』 중에서     


선생님. 너무나 짧은 여름방학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 여름방학에 우리 영림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다독다독 독서 챌린지에 도전하면서 몇 권의 책들을 읽었는데요, 위의 글은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에세이 『다정한 서술자』에서 읽었던 문장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를 향한 작가의 마음과 학생을 향한 교사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사는 보편적인 다수의 시각에서 봐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죠. 우리 모두는 교육을 통해 세상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소망하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지난 7월 방학 준비 교직원회의에서 제가 선생님들께 두 가지를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나는 서울서이초 교사의 순직 1주기에 즈음하여 과연 우리 교육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물었습니다. 교육부가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학교에 소위 ‘민원대응시스템’이라는 것을 구축했으나 과연 그것을 통해 진정으로 교권이 회복되었는가.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점점 더 마음이 아픈 아이, 배움에서 도주하는 아이, 발달과 성장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아이가 많아지는 현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교권’이라는 것은 교사의 가르침과 학생의 배움이 상호의존적으로 교차하면서 배움의 기쁨을 경험할 때 만들어집니다. 아픈 아이가 낫고, 도망가는 아이가 돌아오고, 누리지 못하는 아이가 누리게 될 때, 우리는 교권의 회복을 넘어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다시 얻게 될 것입니다.     


학교장 편지 2024.08.12 

 


다시, 모두가 행복한 영림중학교     


지난 1학기, 성장통을 아주 세게 겪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한편으로는 꾸짖고 다른 한편으로는 품으면서 참 많이 수고하셨던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2학기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방학 동안에도 농구 수업으로, 배드민턴 수업으로, 뮤지컬 수업으로, 일본어 수업으로, 독서 토론 수업으로, 레벨 업 챌린지로, 자원 순환 시설 견학으로, 육상부 훈련과 도서관 개방으로 쉼 없이 움직이는 우리 학교를 보면서 ‘함께 가르치고 서로 배우며 돌봄을 통해 꿈을 키워가는 행복한 학교’라는 영림중학교의 비전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여름방학 기간에 출근하신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다가, (5년간의 임기를 훌륭히 마치시고 이제 곧 다른 학교로 옮기시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영림중학교 아이들, 참 품격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품격은 선생님들의 품격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영림중학교 교육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온 시스템과 학교문화의 품격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하는 일–가르침과 배움–이 관심과 존경을 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곳에서 가르침과 배움은 오직 인간만이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로 칭송받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성별, 피부색, 장애의 유무, 사회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동등한 발달 기회를 누릴 것입니다. 교사들은 우리 교육이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과 이념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추구하는 인간상–자기 주도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의 구현을 위해 토론을 벌일 것입니다.


물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건널 수 있는 용기와 지혜 역시 우리 자신–지식의 생산자, 지혜의 연결자, 반성적 실천가로서의 교사-에게서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극이 교사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님을 기억해 주세요. 미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현대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작가들이 처한 상황은 현대교육에서 교사들이 처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의 〇〇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쪽으로, 때로는 저쪽으로 방향을 바꿔 가며 그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일 뿐입니다. 적절한 높이에서 우리가 움직이는 경로를 내려다본다면 아마도 우리는 원을 그리며 이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잠시라도 그렇게 위에서 내려다볼 권리가 허락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이 평평한 대지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인파 속에서, 자욱한 먼지에 반쯤 눈이 먼 채로, 전투에서 승리한 과거의 행복한 전사들을 부러워하며 위쪽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이룩한 위대한 성취가 뿜어내는 빛나는 아우라 앞에서 이따금 우리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곤 합니다. ‘아마도 그들의 싸움은 우리만큼 힘들지는 않았을 거야.’라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 버지니아 울프, 『현대소설』 중에서1)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윤상혁 드림



1) 올가 토카르추크(2022), 『다정한 서술자』에서 재인용. ○○은 ‘창작’을 의미하지만, 이 빈칸을 ‘교육’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 보입니다.




올가 토카르추크(2022), 『다정한 서술자』


매주 한 차례 선생님들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편지는 2023년 3월 1일 영림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매주 수요일 썼는데, 올해는 매주 월요일 편지를 발송합니다. 누군가는 열어보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옮길지 모르지만 괜찮습니다. 그것은 그의 당연한 권리니까요. 누군가 저의 글에서 작은 위로를 얻었으면 합니다. 누군가 저의 글을 읽고 작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행복할 겁니다. 아니, 누군가에게 저의 마음이 가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편지는 이미 제 손을 떠났고, 글이 어떤 열매를 맺을 지는 오직 받는 사람에게 달려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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