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구를 구하는 싸움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팔레스타인의 현재와 기후위기의 기원

by 윤상혁

함께 읽는 책 No. 49

안드레아스 말름(2025),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한쪽에서는 화석연료가 타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도시가 불타오른다. 한쪽은 이윤을 위해, 다른 한쪽은 생존을 위해 싸운다. 저자의 전작 『화석 자본』이 자본주의가 석탄과 함께 불을 붙인 기후폭력의 역사를 추적했다면, 이 책은 그 불길이 화석연료 제국(fossil empire)의 탱크와 드론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의 기원과 팔레스타인의 현재는 같은 뿌리를 갖는다. 즉, 화석 자본의 폭력에 맞서는 지구적 저항의 서사를 발견해야 한다. 저자는 산업혁명이 단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자본이 노동을 통제하기 위해 선택한 에너지 체제의 정치적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석탄과 증기기관은 노동을 해방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을 시간표 안에 가두고, 자연을 무한히 추출 가능한 자원으로 전락시켰다. 그리하여 화석연료의 불길은 공장 굴뚝을 넘어 지구의 기후를 변형시켰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왜곡시켰다. 기후위기의 기원은 기술이 아니라 지배의 구조, 곧 자본의 욕망에 있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는 이 논리를 21세기 제국의 전쟁으로 확장한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군사력과 점령체제를 단순한 정치 갈등이 아닌 화석연료 제국의 한 축으로 읽는다. 중동의 석유는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를 지탱해온 에너지 혈관이자, 이스라엘과 서방이 결속하는 제국적 인프라의 핵심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은 단지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화석자본의 지속을 위한 폭력적 질서의 재생산이다. 저자가 지적하듯 전투기를 띄우고 탱크를 움직이는 것 역시 화석연료이며, 전쟁의 배후에는 석유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군산복합체가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라는 언명은 군사적 폭력과 기후폭력이 사실상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통찰에서 비롯된다.


기후위기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나 대기 중 탄소 농도로 표현되는 과학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더 많이 소비하고, 누가 피해를 떠안는가의 문제인 동시에 어떤 생명은 보호받고 어떤 생명은 파괴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다. 그리고 위기의 가장 첨예한 현장이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기후정의의 눈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은 기후 부정의의 최전선이자 탈화석 세계로의 정의로운 전환이 가로막히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한 전쟁 비판서가 아니다. 증기선을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도시 아크레를 폐허로 만들었던 1840년 11월 3일을 기점으로 팔레스타인의 투쟁이 기후 재난을 만든 서구 부르주아 문명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 문명 비판서다. 기후정의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능력, 함께 살아갈 세계를 상상하는 윤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의 파괴를 멈추는 일은 지구를 지키는 일이며, 그들의 저항은 인간과 자연 모두의 존엄을 회복하려는 지구적 정의의 일부다. 지구를 구하는 싸움은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저자의 대답은 분명하다. 가자의 불길 속에서, 저항의 자리에서.


안르데아스 말름(2025),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파괴와 건설은 서로를 전제로, 관통하는 상반된 개념이다. 즉, 지구의 파괴는 곧 화석연료 기반시설의 건설이고,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곧 민족 식민지의 건설이다. (131쪽)




이 글은 환경정의가 주관하는 제24회 환경책 큰잔치 <2025 올해의 환경책> 서평입니다. '2025 올해의 환경책'은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출간된 환경책 중에서 일반 12종, 청소년 12종, 어린이 12종 등 총 36종이 선정되었으며 전체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더 나은 체제, 더 좋은 삶을 위한 첫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