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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Nov 08. 2019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조건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이 아쉬운 이유

교육자치 시대의 교사: 교사 전문성의 새로운 지평

03.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조건                                        


왜 교육자치를 말하는가? 누가 교육자치를 말하는가? 교육자치를 말하기 전에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교육자치의 핵심은 가르침과 배움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이 없는 교육자치는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그것이 교육자치의 존재 이유입니다. 교육자치는 오직 가르침과 배움의 옹호를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학교는 가르침에 대한 존중과 배움에 대한 경탄이 넘쳐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교육자치의 구조 속에서 배움과 삶이 선순환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공유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까지 학교 자율운영체제를 정점으로 하는 교육과정 거버넌스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교육자치 시대의 교사 전문성이 새로운 상상을 필요로 하는 까닭입니다.

사진출처 : 2019 세계 교사의 날 포스터




브라운 판결


1951년 미국 캔자스 주 토피카에 살고있던 여덟 살 초등학교 3학년 흑인소녀 린다 브라운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놔두고 1마일이나 떨어진 흑인들만 다니는 학교를 매일 걸어서 가야했습니다. 이에 린다의 아버지 올리브 브라운은 집에서 가까운 백인들만이 다니는 섬너 초등학교로 전학을 신청했으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교장이 이를 거절하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올리브 브라운은 소송을 걸게 됩니다. 미국 공교육 역사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 소송입니다.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 소송은 결국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고, 3년 간의 긴 소송의 과정을 거쳐 1954년 5월 17일 대법원이 '공립학교의 인종 차별은 위헌' 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아무리 평등한 시설과 교육을 제공한다고 해도 인종을 분리시켜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인종을 차별한다는 것이 결정의 근거였습니다. 사실상 이 판결은 1896년 인종은 분리하되 평등한 교육을 가르친다는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사건이었습니다. '브라운 판결'은 이후 인종차별 철폐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연방대법원의 존재 의의와 역할에 대해서도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1) 이후, 미국은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교교육에 더욱 더 매진하게 되죠. 이는 1960년대 중반에 최고조에 달했는데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에 따라 Head Start, Follow Through, Parent-Child Centers 등을 추진하였습니다.2)  


Head Start: 저소득층 어린이 및 가족에게 포괄적 인 유아 교육, 건강, 영양 및 부모 참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보건 복지부 프로그램
Follow Through: Head Start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효과를 꾀하기 위하여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계속적인 보장을 해주는 프로그램
Parent-Child Centers: 3세 이하의 자녀을 가진 부모를 위한 부모아동센터



콜맨 보고서


교육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후, 정책 결정자들은 갈수록 궁금했습니다. 그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의도한대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특히, 1964년 미국의 민권법(Civil Rights Act)에 따라 여러 인종 집단 간의 교육적 기회균등에 대한 연구가 시행되었는데요, 콜맨이 주도한 이 연구를 가리켜 흔히 콜맨 보고서(Coleman Report)라고 부릅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교육 성취와 다양한 요인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60만 명의 학생, 6천 명의 교사, 4천 개의 학교가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콜맨의 연구에 의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학교에 투입된 교육비는 학생들의 성적에 별다른 차이를 낳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인종·종족 집단에 따라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의 물리적 환경은 아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설이나 전문 인력의 차이가 학생들의 성적 차이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백인 학생들이 학교에서 학습한 것은 다른 인종·종족 집단의 학생들이 학습한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즉, 교육 시설을 평등하게 만든다고 해서 교육 성취가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죠. 학교에서 교육적 성취에 영향을 미친 것은 학생들의 배경, 특히 부모의 수입과 교육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콜맨 보고서 역시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것은 '교육의 질'이라는 것을 교실 환경 개선이나 도서관 장서 확보 등과 같은 물리적 요소들만으로 한정한 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교사의 수업 전문성'을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죠. 결국 콜맨 보고서의 후속 연구는 교사의 특정한 교수 행위가 학생들의 성취를 체계적으로 향상시켰음을 입증했습니다. 문제는 이 연구를 주도한 것이 당시 교육계를 주름잡던 행동주의자들의 과정-산출 교수 모형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후 인지주의 심리학이 등장하면서 행동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현저히 줄었지만 엄격한 표준과 책무성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고 표준화된 시험을 실시하는 교육정책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악명 높은 NCLB(No Child Left Behind)법의 통과로 이어집니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강조되고 있는 이해중심교육과정 혹은 백워드 디자인은 NCLB의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별도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2019년 11월 7일 13시 20분.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발표 내용을 보면서 '브라운 판결'과 '콜맨 보고서'가 떠오른 이유는 (브라운 판결처럼) '모두에게 공정한 교육'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취지에 큰 틀에서 공감이 되면서도 (콜맨 보고서처럼) 이 방안이 여전히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저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우려와 보완되어야 할 점들을 몇 자 적어봅니다.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추진 방향



첫째, 말의 상찬으로 끝날까 두렵습니다. 우선 특권계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를 개혁해내야 합니다. '공정한 교육가치'가 무엇인지 모호합니다. 공정한 교육가치가 아니라 공정한 사회가치를 재생산하는 것이 교육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 "돈 가는데 마음 간다"고 했습니다. 정책을 뒷받침할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합니다.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이 '방안'에 그치지 않으려면 최소한 현재 계획된 예산이라도 (기획재정부나 국회를 거치면서 축소되는일 일 없이)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와 동시에 학교에 대한 무분별한 성과요구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합니다. 성취도 평가 결과나 대학교 합격률 등 기존의 관행으로 학교를 평가해서는 미래형 고교교육 혁신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콜맨 보고서 이후 미국에서 진행된 교육개혁의 실패한 역사에서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둘째, 고교 서열화 해소는 대학교 서열화 해소와 병행되어야 하고,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는 지방대 교육역량 강화와 병행되어야 합니다. 즉, 고교 서열화 해소와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대학교 서열화 해소와 지방대 교육역량 강화도 연계되어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좀 더 폭넓게는 초중등교육개혁과 고등교육 및 평생직업교육 개혁이 서로 맞물려 진행되어야 합니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등 기존에 논의되었던, 그리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제안들을 검토하고 종합하여 우선순위를 정하고 서두르지는 않되 과감하고 담대하게 추진해나가야 할 것 입니다.


셋째, 공교육의 성공은 교실의 성공에 달려있습니다. "교실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이 공염불이 되지 않게 하려면 먼저 교사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지난 세기 대한민국 교육의 성공은 교사에 대한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교사는 지역사회에서 고학력의 지성인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권력의 말단으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경제적으로 소득수준도 향상되면서 사회가 교사집단에 기대하는 눈높이가 높아졌습니다.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학생인권담론이 자리를 잡았지만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득세하면서 학교교육에 대한 소비자적 접근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유튜브로 상징되는 지능정보사회로의 급속한 변화는 교사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래저래 교사의 전문성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11월 7일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이 발표되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정반대였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고 결국 문제의 원인으로 교사가 지목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문구가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교사를 단순히 전문성이 향상되어야만 하는 집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방안을 완성시킬 주체로 자리매김시켜야 합니다. 교육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가르침과 배움의 주체로서 교사라는 존재를 호명하고 그들에게 소명의식을 불러일으켰어야 합니다.


물론 교육의 질과 교사의 질은 깊은 상관관계를 갖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이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율과 자치'입니다. 교육에 있어서의 자율과 자치란 무엇일까요? <교육기본법> 제5조(교육의 자주성 등)을 보면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여야 하며,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ㆍ실시하여야 한다.

②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 교직원ㆍ학생ㆍ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학교자율운영의 핵심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의 구성원들이 학교운영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것. 교육기본법은 그것이 바로 교육에 있어서의 자율과 자치라고 말합니다. 김용(2019)은 학교자율운영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3)


첫째, 학교를 말단 행정기관이 아닌 교육조직이자 학습조직, 더 나아가 공동체로 만든다.

둘째, 교사의 전문성을 배양하는 일이 학교자율운영의 핵심이다.

셋째, 규제 완화는 교사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경우에 한해서만 활용한다.

넷째, 교육은 공산적共産的 활동으로 학교의 구성원들 각자가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학교의 일에 참여한다.

다섯째, 학교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을 강화한다.

여섯째, 책무성이 아닌 책임을 강조한다.

일곱째, 가급적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제도를 폐지하거나 수정・보완한다.

여덟째, 학교 서열화 체제나 입시 경쟁 구조 등 학교를 둘러싼 정책 및 제도적 환경의 개혁과 병행한다.


김용이 언급하고 있듯이 학교자율운영의 핵심은 “교사의 전문성을 배양하는 일”입니다. <교육기본법> 제14조(교원)에서도 “학교교육에서 교원(敎員)의 전문성은 존중되며, 교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는 우대되고 그 신분은 보장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프리드슨Eliot Freidson(2001)은 전문성의 핵심은 전문가가 자율성을 갖고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전문가로부터 전문 지식과 기술을 제공받는 사람들과 신뢰가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프리드슨이 볼 때 자율성은 전문성이 실천되기 위해 전문가가 반드시 가져야 할 전문적 덕목professional virtue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의 경우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합니다. 여기서 자율성은 진료와 치료의 과정에서 환자에 따라 전문 지식과 기술을 달리 적용하는 작동 기제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자율성은 진료와 치료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교사의 자기주체성


“한국은 우수 인재가 교직에 들어온다. 이들을 내용 전달 전문가에 머무르는 게 아닌 스마트한 학습 환경의 디자이너 및 창조자로 여기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23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OECD 국제교육컨퍼런스>에서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2030년을 향한 한국교육, 학생 성공을 다시 정의하다’라는 주제의 기조 연설을 통해  “한국의 교사는 미래 학생 성공에 있어 가장 큰 자산”이라며 “금전적 측면뿐만 아니라 전문성 측면에서도 가르치는 일은 더 매력적 직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현재 교사 전문성과 경력 관리 및 역량 개발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할 적기”라며 “교육의 변화를 위해 교사의 자기 주체성(Teacher Agency)을 장려해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4) 교사의 자기주체성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5)

 

교사들이 그들 자신의 전문적 성장을 기획하고 동료들의 성장에 기여하기 위해 과감하고 건설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


슐라이허는 교사의 자기주체성 장려를 위해 (1)자율성, (2)동료네트워크, (3)지식기반교수 등 3가지 교사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정책 수단을 제안했는데요. 이는 하그리브스Andy Hargreaves와 풀란Michael Fullan(2014)이 교사의 전문적 자본Profession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하그리브스와 풀란의 전문적 자본을 공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PC = f(HC, SC, DC)

PC=Professional Capital / HC=Human Capital / SC=Social Capital / DC=Decisional Capital


공식에서 PC는 전문적 자본, HC는 인적 자본, SC는 사회적 자본, 그리고 DC는 의사결정적 자본을 말합니다. 즉 전문적 자본은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과 의사결정적 자본을 변수로 갖는 함수입니다.


인적자본이란 지식과 기술의 소유와 개발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사가 자신의 교과목과 그것을 가르치는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알고 그들이 어떻게 학습하는지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문화적‧가정적 환경을 이해하는 것도 인적자본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직무 수행능력과 학생 및 동료교사들과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능력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한마디로 인적자본이란 교육을 위해 필요한 개인의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적자본만 가지고는 전문적 자본을 늘릴 수 없습니다. 혁신을 일으키는 가장 강한 원천은 동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회적 자본입니다. 교육학자 콜만은 사회적 자본이 사람들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뢰감에 기반을 두고 목표가 있는 집단은 학습도 더 많이 하고 직무도 더 잘수행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자본은 교사가 서로의 인적 자본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개혁에서든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적 변인은
학교의 문화 속에 있는 사회적 자본이다.
- 하그리브스 & 풀란 (2014) -


전문적 자본의 세 번째 변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수는 자율적 판단 능력을 의미하는 의사결정적 자본입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와 그가 속해있는 교사학습공동체의 자율적 판단 능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교사공동체가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긴 교육행위들은 일종의 권위있는 판례처럼 다음 교육활동에 참조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교사의 전문적 자본, 즉 전문성은 흔히 생각하는 바와 같이 인적 자본으로만 구성되지 않으며 사회적 자본과 의사결정적 자본이 입체적으로 결합할 때 발휘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교사 전문성 담론의 전제 자체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전제1. 교육자치는 교사(학습공동체)의 전문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전제2. 교사(학습공동체)의 전문성은 교육자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전제조건


왜 교육자치를 말하는가? 누가 교육자치를 말하는가? 교육자치를 말하기 전에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교육자치의 핵심은 가르침과 배움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이 없는 교육자치는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그것이 교육자치의 존재 이유입니다. 교육자치는 오직 가르침과 배움의 옹호를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학교는 가르침에 대한 존중과 배움에 대한 경탄이 넘쳐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교육자치의 구조 속에서 배움과 삶이 선순환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공유지가 되어야 합니다.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구조. 학교가 교육개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교육자치가 구호에 불과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교육의 변화를 위해 교사의 자기 주체성을 장려해야 한다”는 안드레아스 슐라이허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가칭) 고교교육 혁신 추진단의 구성체계를 보면 이를 체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항상 그래왔듯이) 교육부와 전문가 집단이 중심이 되어 계획자의 위치에 서고 학교와 풀뿌리 교육 주체들은 점검의 대상일 뿐 어디서도 개혁의 동력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학생중심의 교육 다양화를 이끌어 온 혁신교육의 성과에 대한 평가나 교육자치분권이라는 시대정신과의 연결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칭) 고교교육 혁신 추진단의 구성체계


이런 상황이라면 (학교와 특별한 정서적 접점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도 점점 더 희미해져 갈 것으로 보입니다.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에 교사학습공동체 및 마을교육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상향식 교육혁신의 구조가 포함되어야 했습니다. 교사들을 "내용 전달 전문가에 머무르는 게 아닌 스마트한 학습 환경의 디자이너 및 창조자"로 전환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방안>에 교사 전문성 지원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사 패싱을 우려하는 까닭입니다. (계속)




1) 이혁규(2013). 누구나 경험하지만 누구도 잘 모르는 수업. 교육공동체벗.    

                                           

2) Fenstermacher(2011).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교육과학사.


3) 김용(2019). 『학교자율운영 2.0 학교개혁의 전개와 전망』. 살림터.


4) https://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1


5) https://www.edutopia.org/blog/five-ways-increase-teacher-agency-professional-development-anne-obrien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capacity of teachers to act purposefully and constructively to direct their professional growth and contribute to the growth of their collea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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