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10년의 역사를 돌아본다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EBS에서 3월 16일부터 혁신학교 5부작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를 방영한다. EBS에서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거대한 질문이다. 목차를 살펴보았다.
1부 학교변화의 열쇠
2부 수업의 주인
3부 혁신의 또 다른 상상
4부 대학 갈 수 있을까?
5부 우리는 혁신학교 졸업생입니다
아직 다큐멘터리가 시작되지 않아 뭐라 말하는 것은 제작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다만, 대학진학에 대한 문제를 다룬 4부와 혁신학교 졸업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5부의 배치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도 좀 된다. 일단은 다큐멘터리를 보자. 그러고나서 비평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지구적) 여파로 3주 간의 휴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 5부작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의 방영은 시의적절하다. 왜냐하면 경기도를 필두로하여 올해는 서울과 몇몇 시도의 (제도로서의) 혁신학교운동이 10년을 맞이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현재 혁신학교의 제도화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 전국단위로 확산되었고 전국 12,000 여학교 중에서 11.7%에 해당하는 1,400 여 학교에서 혁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학교 운동에서 내세운 대다수의 의제들마다 정치권, 관료, 교육현장, 시민사회 등 다방면에서 격렬한 반대와 저항에 시달려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혁신학교와 여기서부터 파생된 혁신교육지구, 마을교육공동체 등은 교육자치 및 학교자치 담론의 든든한 기초자료다.
경기혁신교육 10년의 역사
마침 작년에 경기도에서 혁신학교 10년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10년을 전망하는 두 권의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하나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경기혁신교육 10년 : 혁신학교에서 마을교육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연구 보고서로 발간된 <경기혁신교육 정책 10년사>이다. EBS의 혁신학교 5부작과 병행하여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하나하나의 의제를 만들고 확산하는 데까지 큰 저항과 어려움이 있었다.) 무상급식만하더라도 초기 포퓰리즘(populism)이라 비판받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모든 시·군·구에서 대상만 차이가 있을 뿐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혁신학교도 초기에는 특정 색깔과 이념을 가르치는 문제 있는 학교라고 비판 받았지만, 2019년 현재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17개 시·도교육청이 명칭만 다르지만 모두 실시하고 있고, 전국 1만 2000개의 학교 중 1400개의 학교가 혁신학교에 해당한다."
(중략)
경기혁신교육 10년 동안 만들 수 있는 교육 아젠다는 충분히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추가적인 정책 기획보다는 기존의 정책들을 더욱 세밀화하고, 기획하는 일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파급시킬 수 있을까?’ ‘행정지원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교사재교육이나 교육전문직원 재교육을 통해 경기혁신교육의 철학을 파급시킬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해야 한다. 가령 혁신교육지구는 2019년 하반기 현재 31개 시·군·구 중 27개가 지정되었지만 그 편차는 굉장히 심하다.
- 이영희 외(2019), <경기혁신교육 정책 10년사> 중에서
학생은 삶과의 연계, 독창성과 창의력 교육, 꿈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교육, 예체능 교육 활성화, 소통과 존중이 있는 관계, 모든 학생에게 공평한 민주적인 학교 등을 기대하고 있다. 교사는 자발성 촉진, 기본에 충실한 책무성, 학생자치, 민주적인 교육과정 거버넌스 구축, 교사의 교육환경 개선, 교육청 개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학부모 및 시민사회단체는 지역별 이형화, 혁신교육의 기본 지키기, 지역과 함께 학교 혁신 추진, 선언적 수준이 아닌 체감하는 학부모 거버넌스 구축, 성찰에 기반한 문제 해결 등을 제시한다. 전문가는 현장과 정책의 괴리 현상 극복, 학교별 맞춤형 전략, 미래학교를 위한 과감한 실험 시도, 개별화 교육과정 및 단위학교 교육과정 자율성 강화, 경기혁신교육의 기본 철학의 지속적 실천, 실질적 학교자치, 공공성과 비전에 근거한 학교 구성원 전체의 동시적 실천 등을 주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청 혁신 및 시스템 대전환이 뒷받침되어야 경기혁신교육 3.0은 의미가 있고 도약을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교육 구성원들의 기대와 요구사항에 부응하고 경기혁신교육 3.0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기혁신교육정책에 대한 평가와 진단, 현장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폐지 및 축소, 유지, 통합 및 강화 영역을 검토하여 경기혁신교육의 성숙과 진화,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정책 모니터링, 연구, 조사, 평가 기능 강화를 수반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정책은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담당자가 교체되면서 그 취지와 목적은 사라지고 행정행위만 남거나 관행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기존 정책을 냉정하게 재평가하면서 끊임없이 정책을 업데이트하고, 정책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정책은 과감하게 축소 내지는 폐지해야 한다. 정책-예산-평가 선순환 체제를 구축하되 상시적 정책 모니터링과 제안, 피드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일상적 정책 모니터링 시스템과 함께 주요 정책에 대한 체계적 평가시스템을 구축하여 일정 예산 이상 집행되는 정책은 반드시 외부에 의한 객관적인 정책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서 실행할 필요가 있다.
(중략)
교육부와 교육청의 정책은 교육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가져 단위학교의 특색 있는 교육과정 구현을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공간이지 도교육청의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하는 기관으로 봐서는 안 되며, 교육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학생의 성장에 있다는 교육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청은 교육과정을 여러 부서 중 하나인 1/n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교육과정을 중심에 놓고, 이를 지원 또는 연계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를 교육과정 중심 학교(Curriculum-centered school)라 칭하고, 자율과 자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빛깔 있는 학교들이 나타나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채로운 성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 경기도교육청(2019), <경기혁신교육 10년 : 혁신학교에서 마을교육까지> 중에서
혁신학교 운동의 역사는 학교자치의 역사 그 자체다. 제도로서의 혁신학교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관통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 혁신의 아이콘, 혁신학교
최근에 서울시교육청에서 '평가방법 개선'과 관련하여 웃픈 해프닝이 있었다. 과정 중심 평가를 '내실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규정'을 통해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모든 학교가 과정중심 평가를 시행하게끔 강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야 하는가? 당연히 후자가 맞다고 생각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안내만 해서는 학교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강력하게 '정책'으로 구현해 달라는 요구도 분명히 존재한다.
누구나 탑다운방식에 대해서 비판한다. 그렇다고 비판자들 모두가 학교에서 수평적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미지수다. 담론과 현실은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학교의 문화와 그동안의 운동의 역사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의 질적심화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지만 나는 이미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자치와 전문학습공동체가 그 단초다. 학교교육과정과 교사교육과정 논의를 통해 교육과정 분권의 실질적 데이터들을 쌓아온 것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혁신학교 운동의 역사는 학교자치의 역사 그 자체다. 제도로서의 혁신학교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관통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나의 대답은 이렇다. 혁신학교가 학교를 바꾼다. 혁신학교 1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이제 더 이상 학교에만 변화를 요구하지 마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혁신이 이루어진 곳이 초중등학교다. 대한민국 혁신의 아이콘이다. 이제 시야를 넓혀야 한다. 대학의 교육과정과 수업과 평가에 대해서 연구하라. (아래 '서울대에서 A+받는 학생들의 비법을 시청해보라.) 4차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라. (최근에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듯이)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에 대해서 고민하라. 미래세대의 노동과 주거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고민하라. 위가 꽉 막힌 상황에서 아래만 계속 키우다보면 결국은 터지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을 자꾸만 학교에 전가하지 마라.
덧붙임
2014년. 당시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이었던 이계삼 선생님의 한겨레 칼럼 '혁신학교는 답이 아니다(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1584.html)'가 혁신학교 운동의 선두에 섰던 교사들은 물론 진보적 교육운동에 동의하던 많은 실천적 지성들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했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은 그 글의 일부다.
일부 초등학교·중학교 혁신학교의 성공이 그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어이없는 역설, 고등학교 혁신학교가 결국 대학입시의 입학사정관제를 뚫어내는 방편으로서 성공의 근거를 찾아야 하는 역설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이렇게 성공적으로 정착한 혁신학교가 ‘부동산 가격 상승’이라는 중산층의 진입장벽으로 귀결되고, 오늘날 이 거대한 낭비의 종착점이자 모든 교육적 에너지의 블랙홀인 대학입시를 피해갈 수 없게 된다면 이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 것인가? 이렇게 해서 혁신학교의 트랙을 따라 나온 아이들을 기다리는 현실이 청년실업, 비정규직, 극악한 지위경쟁이라면 혁신학교는 결국 또 하나의 희망고문이자 문제의 떠넘기기 곧 ‘폭탄 돌리기 게임’이 아닌가? 그러므로 교육불가능의 이야기는 혁신학교가 집중하는 ‘수업과 학교문화’로 수렴되는 ‘배움의 적응’이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라는 ‘다른 배움’의 이야기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의 교육 체제를 어떻게 새롭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체제 전환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그것은 실제의 사회경제적 삶과 연관되는 ‘삶의 기술’, 앞으로 닥쳐올 세상을 미리 살아가는 ‘연습’의 과정들을 학교 교육과정 안으로 진입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 이계삼, <혁신학교는 답이 아니다>
혁신학교 운동 10년을 평가하는 지금, 우리는 이계삼이 지적한 "혁신학교의 트랙을 따라 나온 아이들을 기다리는 현실이 청년실업, 비정규직, 극악한 지위경쟁이라면 혁신학교는 결국 또 하나의 희망고문이자 문제의 떠넘기기 곧 ‘폭탄 돌리기 게임’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자신있게 답변할 수 있을까?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기후위기'와 '4차산업혁명'이라는 "앞으로 닥쳐올 세상을 미리 살아가는 연습의 과정들을 학교 교육과정 안으로 진입"시켜 왔는가. 우리는 과연 "지금의 교육 체제를 어떻게 새롭게 설계할" 것인지 논의해 왔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우리는 이계삼이 '혁신학교는 답이 아니다'라고 말한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불가능의 시대'라는 시대 규정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미뤄둔 채 오직 학교와 교육에만 책임을 전가해 온, "거대한 낭비의" 체제 바로 그 심장에 대한 선언이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는 이계삼이 '혁신학교는 답이 아니다'라고 말한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불가능의 시대'라는 시대 규정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미뤄둔 채 오직 학교와 교육에만 책임을 전가해 온, "거대한 낭비의" 체제 바로 그 심장에 대한 선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