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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Aug 24. 2020

교육의 위기 2

교사도 사유하지 않는 관료가 될 수 있다

지난 번 글(https://brunch.co.kr/@ysh2084/89)에서 "'모든 교사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비교육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지만 그 전제 속에 감춰진 부끄러운 현실에 직면해야만 한다."고 쓴 바 있다. 오늘은 그 ‘부끄러운 현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1)


그 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수업'에만 전념한다는 것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수업'의 관점이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의미로 축소되고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시간이 급격히 줄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학교에 나와서도 아이들의 손과 발은 홀로 떨어진 책상 위에 묶이고 입은 마스크로 닫혔다. 학교는 그저 가만히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혁신학교 운동과 함께 활발하게 실험되고 확산되어 온 교실을 질문이 있는 공간으로 재구조화하기 위한 시도들이 무너지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수업혁신이 위축되는 가운데 소수의 온라인 플랫폼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온라인 플랫폼은 교사와 학생 모두 성과와 결과에만 집중하게 할 우려가 있다. 둘째, 이로 인하여 교실이 점점 더 의미없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교실이 마스크를 쓴 아이들에게 일방향적으로 교과서적 지식을 전달하거나 집에서 이루어진 '온라인 학습'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블렌디드 러닝'으로 통칭되는 파괴적 혁신에 대한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 논의가 파괴적인 이유는 블렌디드 러닝이 단순히 온-오프라인의 결합을 넘어 다른 의미의 교실, 다른 의미의 학교에 대하여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블렌디드 러닝'이 '자치분권+공공성'과 결합할 수도 있지만 '국가주의+시장경쟁'과도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출발은 비슷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코로나 시대, 수업에 전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다. 학생중심/활동중심 수업 자체가 경원시 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다른 반에 방해된다는 말이 나오던 시절이다. '빛깔이 있는 학급운영' 따위는 필요 없이 오직 수업에만 전념하던 시절이다. 숙제를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체벌이 정당화되던 시절이다. 당신만 잘났느냐고, 혼자 나대지말라는 말을 듣던 시절이다.   


몇 가지 불길한 징후들이 보인다. 진화된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교사와 학생 사이에 벌어진 배움의 거리를 메우려는 참신한 시도에 혼자 나대지마라 우리는 뭐가 되느냐는 압박이 가해지기도 하고 온라인 플랫폼에 교과서적 지식을 업로드하고 아이들이 그걸 다운로드했는지 확인하는 업무가 수업의 모든 것인양 착각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단방향/쌍방향의 문제가 아니다. 수업에 대한 관점의 문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 교사들의 업무가 너무 많아 근본적 혁신이 어렵다는 나의 말에 절친인 한 고교교사가 "윤샘, 교사 업무가 많다고? 그게 모두에게 그런게 아냐."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교사의 일은 이중적이다. 교사 역시 얼마든지 사유하지 않는 관료가 될 수 있다. 연초 업무분장과 수업시수를 가지고 다투는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꽤 오랫동안 들어왔다. 왜 어떤 교사는 점점 더 바빠지는데 다른 교사는 점점 더 한가해 지는가.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고, (기존의) 일이 많은 척 하는 것이 (나쁜 의미의) 관료적 특성이다. 교사는 여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언제나 '자율적 책임'이 사라진 자리에는 '관료적 책무'가 비집고 들어온다. '쌍방향 원격수업 논란'에도 그러한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 두렵다.


그림 출처 : Nikolai Petrovich Bogdanov-Belsky, <In the village school2)> 




1) 지난 7월 23일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라서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읽으면 다소 생뚱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2)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의 그림은 영감을 준다. 마을학교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글을 읽어주는 듯 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음성을 통해 함께 글을 읽는다. 선생님의 음성이 울려퍼지고 있는 이 공간은 배움의 성소가 된다. 과연 무엇이 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무엇이 이 아이들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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