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보다 구조, 혁신보다 설계가 중요하다
함께 읽는 책 No. 31
사피 바칼(2020), 『룬샷』
직무연수 원고는 손도 안대고 - 아니 초안이 있으니 금방 쓸 수 있다는 근자감으로 - 계속 이 책만 읽었다. 사피 바칼의 <룬샷>이다.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목차만 훓어 보다가 "문화보다 구조(System), 혁신보다 설계가 중요하다"는 말에 홀려 계속 읽게 되었다. 사피 바칼은 물리학자 출신의 CEO답게 '상분리(phase separation)'과 '동적평형(dynamic equilibrium)'이라는 변수로 좌표평면을 구성하고, 두 변수가 모두 활성화된 상태로서 '부시-베일 균형'이라는 영역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뭔 소린가 싶겠지만 ㅎㅎ 책을 읽어보면 금새 알 것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룬샷(loonshot)'은 한 마디로 '주창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며,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바칼은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샷(moonshot)'과 '프랜차이즈'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 책은 어떤 원리로 룬샷이 문샷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결론만 말하면 룬샷이 문샷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조건1) 상분리: 룬샷 그룹과 프랜차이즈 그룹을 분리한다
(조건2) 동적평형: 양 그룹 간에 막힘없는 교환이 오간다.
(조건3) 임계질량: 룬샷 그룹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크다.
많으면 달라진다.
이는 공동체/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혁신이 어려운 이유를 말해준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창발성'이고 이론적 배경은 '행동경제학'이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을 출범시킨 공로로 2017년 노벨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와 개인의 의사결정에 관한 심리학을 경제학에 도입해 탈러의 작업에 영감을 준 2002년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의 연장선 상에 있다.
차이점은 지금까지의 행동경제학이 '환경'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면, <룬샷>은 '환경'이 '집합적 행위자'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합적 행위자'의 문제는 에릭 올린 라이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에서도 심도 있게 고찰한 부분이기도 한데 '변혁의 주체'를 생성하는 것은 사회 변혁을 위한 구조의 질적 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면서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