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에서 행복을 그리는 법
함께 읽는 책 No. 32
이소영(2019),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진정한 탐험의 여정은 새로운 경치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데에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2020년 한 해가 통째로 날아간 것 같애."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어제 밤 아내와 나눈 이야기의 일부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아니, 단지 바뀌기만 했다면 그나마 문제가 덜 할텐데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소멸의 공포.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희망을 잃었다. 생물학적 소멸을 피하려하자 사회적 소멸이 위협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범지구적 재난 앞에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바이러스가 앗아간 것들이 너무 많다. 가히 '상실의 시대'라 할 만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실감과 고립감 속에서 우리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바로 '가족' 말이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이라는 것도 포기한지 오래다. 밖으로 여행을 다닐 수 없다보니 집에서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특별한 날들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지나온 날들을 다시 바라보니 일년 내내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하여 새로운 경치를 잃었지만 새로운 시각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삶의 행복
'아트메신저' 이소영씨가 쓴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를 읽었다. 아내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이다. 처음부터 표지에 자꾸만 눈길이 갔더랬다. 참다 참다 표지를 넘겨보니 예상치 못했던 사연이 주루륵 흘러나온다. 표지 그림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열어주는 그림들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그리고 곧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세상을 떠난 101세까지 모두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중 250점이 100세 이후에 그린 그림일 정도로 삶의 마지막까지 열정으로 가득했던 화가다"라는 말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Grandma Moses'는 1860년 가난한 소작농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당시의 미국 농촌이 그렇듯, 그녀 역시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제대로 된 공교육을 받기는 힘들었다. 그녀가 딸로, 아내로, 엄마로서 가정에서 그녀가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기꺼이 해내고난 후 평생의 반려자였던 남편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큰 딸 애나마저 먼저 하늘로 보낸 바로 그 때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 시절은 희미해지며
어른으로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시절의 추억은 불쑥 나타나 또렷해진다
- 이소영,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중에서
요즘 불쑥불쑥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이제 곧 오십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몸의 노화를 실감하며 (여전히 어리석은) 정신과 (점점 더 굼떠지는) 육체의 불일치가 나를 힘들게 한다. 어렸을 때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생각이 깊어지고 행동이 노련해질 줄 알았다. 심지어 '죽음'이라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은 덧없고 남은 시간은 보잘것 없게 느껴진다. 지금 내 나이 때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회상해보면, 그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그리움만 사무치고 후회만 밀려온다. 바로 그 순간 이 책을 만난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께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젋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 이소영,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중에서
일흔 다섯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다. 누가 감히 '이미 늦었다'고 말하랴. 지금이 진정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추구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되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테니.
좋은 하루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마치 좋은 하루였던 것 같아요. 이제 끝났고, 나는 내 삶에 만족합니다. 저는 누구보다 행복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요. 나는 삶의 역경을 만날 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삶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 이소영,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중에서
모지스 할머니에게 삶이란 그저 좋은 하루였다.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처럼 어떤 아쉬움도 없이 만족스럽게 이별을 고하고 싶다. 행복한 삶은 역경이 없는 삶이 아니라 역경에 직면하여 성실과 열정을 다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꿈, 그런데 "그래도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시니 다행이다"라고 안도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깰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또 한동안은 어머니가 계신 집을 잃어버리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애태우는 꿈들을 꾸었다.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의 삶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가 안다. 아들아." 마치 이런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과거는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기억이라는 것은 회한이 아닌 희망을 위해 쓰여야 한다. 평범한 삶의 행복을 꼼꼼히 그려낸 모지스 할머니를 소개해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덧
책에 옥의 티가 하나 있다.
64쪽과 65쪽의 본문이 통째로 바뀌었다.
(개정판이던데) 제3판에서는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다.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처럼 어떤 아쉬움도 없이 만족스럽게 이별을 고하고 싶다. 행복한 삶은 역경이 없는 삶이 아니라 역경에 직면하여 성실과 열정을 다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