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나는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른 최초의 인간이다. 엄마는 나로 인해 엄마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 두번째 인간이 나오고 엄마의 삶은 더욱 견고하고 완전하게 '엄마'로서 추동했다. 61세의 엄마는 오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면접을 봤다. 면접장으로 가는 길, 엄마는 둘째딸이 운전하는 차를 탔고 첫째딸의 모의면접으로 실전을 대비했다. 엄마 화이팅. 면접을 마치고 차로 돌아온 엄마는 표정도 목소리도 상기되어 있었다. 답변은 막힘이 없었고 어떤 질문에선 면접관이 '잘 알고 계시다'며 추켜세웠다고. 나와 동생은 기뻐했고 합격을 확신했다. 그때 우리의 표정은 어땠을까. 지난 삶에서 숱한 시험, 면접, 대회를 무사히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때 엄마가 보여주었던 기쁨의 표정과 닮아 있었을까.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많은 생각이 오갔던 하루였다. 엄마가 내게 주었던 사랑을, 나는 앞으로도 평생 엄마에게 다 돌려주지 못할 것이다. 내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으나 내 삶은 엄마로 인해 이토록 충만해왔다. 엄마는 엄마의 진심대로, 맑고 깊은 진심으로 나와 동생을 길러냈다. 엄마의 기쁨과 슬픔 대부분이 나와 동생에게서 나왔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나는 마음이 많이 아플 것이다. 엄마가 되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엄마같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나여서 결혼도 육아도 이 생에는 없다고 못박은지 오래. 내 자궁은 빈 채로 늙어가다 곧 기능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을 쓰지 않기로 한 이상 내가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기란 불가능하다. 헤아린다한들 엄마에게 받은 사랑총량을 그대로 돌려드리지도 못하겠지만...소위 '비혼'을 말하는 삶을 살면서 적어도 현재의 나는 내 선택에 대한 고민과 미련이 없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은 그것이다. 엄마를 엄마로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저 오늘도 철부지 딸.
동생은 항상 엄마가 전생에 동물이었을거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이렇게 착하고 또 착할 수는 없을거라고. 엄마, 엄마만 엄마하게 해서 미안해요...
내가 엄마더러 엄마는 엄마가 언제 보고 싶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매일 보고 싶다고 했다.
옛날부터 우리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도 이제 꽤 나이 들었다 생각하며 찾아갔는데 홀로 사는 엄마는 어느새 또 나보다 나이가 많아 있었다. 흰머리 이고 저만큼 가신 당신을 서둘러 따라가 동무해주지 못하는 그것이 오늘 슬펐다. - <엄마>, 김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