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수

낙엽 위에서 천원을 주웠고 자전거 바퀴는 펑크가 났다.

by 유승혜

오랜만이다. 쓰고 싶어서 쓰고야 말았던 문장들은 똥글이 되었고, 어찌저찌 삼킨 문장들은 오래 전에 증발했다. 지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컨대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정신이 맑고, 쓰고 싶을 때는 정신이 흐릿한 것 같다. 고로 맑을 때 써야 된장이 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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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이번 주를 넘기면 손이 시려울 것 같아서 목표한 장소까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뒷바퀴가 터진 풍선처럼 너덜너덜해져 펌프로 바람을 채우고 달렸다. 오늘의 운세는 90점. 떨어지는 낙엽비를 맞으며 95점도 될 수 있는 날이라 생각했고 꽤, 살만한 하루라 느꼈다. 길가에는 낙엽이 수북했다. 낙엽이 수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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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익. 자전거를 세웠다. 수북한 낙엽 위에 낙엽처럼 떨어져 있는, 흡사 인삼밭의 고구마 같은 모양으로 아무렇지 않게 누워있는 지폐를 주웠다. 빳빳한 천 원 한 장. 별 일이네. 11월 무토 일간에겐 횡재수가 따를 것이라 하더니 이건가. 주울까 말까 찰나의 고민이 있었으나 내 앞뒤로 사람이 없고 경찰서에 가져다줄 액수도 아니라고 판단해 주머니에 넣었다. 돼지꿈을 꿔서 산 복권은 꽝이었고 너구리를 뜯었더니 다시마가 두 장이었다는 오래된 썰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복권도 안샀는데? 고백도 안하고 차인 사람 마음이 되었지만 사고수보다야 오백만배 낫지 싶었다. 멀쩡하게 길을 걷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자전거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차라리 걷는 게 나았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운동을 하지 않았다지만 이 정도로 체력이 엉망이라고? 아아... 그럴 줄 알았다. 뒷바퀴가 주저 앉아 있었다. 바람을 넣어도 쉬이 빠지는 크랙이 생긴 듯 했다. 가야할 거리 4.5km 중 이제 겨우 1km를 달렸을 뿐이었다.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더이상 낙엽 같은 건 보이지 않았고 이 수고로운 시간이 천원의 가치는 될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차 안에서 맞는 낙엽비도 나름 운치 있었다. 페달을 굴리며 낑낑대던 길을 다시 지나 도심 변두리로 차를 몰았다. 내 차는 '핸따' 기능이 없어서 장갑 없이 가을 끝을 달리고자 했던 소망은 그런대로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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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자 한 곳이 카페는 아니었는데 그곳 지척에 카페가 있었고, 차를 댈 곳도 마땅치 않아 카페에 들렀다. 배밭이 보이는 아담한 카페는 장년의 부부가 운영 중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인상이 밝았고 목소리의 높이와 말의 속도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그들은 수년 전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이 카페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어쩌다보니 두 시간을 꼬박 그들과 대화했다.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는데 그들이 압축한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아이스로 주문한 드립커피를 조금씩 나눠 마시면서 부부의 말끝에 기호를 다는 느낌으로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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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이울고 있음을 느끼며 본래의 목적, 즉 가고자 한 곳을 둘러보고 사진 찍는 일을 이제는 해야한다고 생각할 때 부부 중 아내가 차가운 밀크티 한 잔을 만들어줬다. 내가 커피와 밀크티를 놓고 고민했음을 일찍이 알았던 것처럼. 그렇다면 날이 어두워지더라도 그들과 이야기를 좀더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할 때, 마침 새로운 손님이 카페에 들어왔다. 나는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처럼 밀크티를 후루룩 마시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한 후 카페를 나섰다. 헤어질 때 명함을 요청하는 그들에게 12년 전 프로필 사진을 새긴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조금 쑥스러웠는데 뭐랄까, 20대 끝자락에서 막 여행작가로 일을 시작할 때의 설렜던 마음이 불쑥 떠올라 묘했다.

소규모 카페에 들른 것도, 또 카페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들이 말한 여러가지 소재들 중 하나인 '나무'와 '비석'을 둘러보고 지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에는 장갑을 챙겨 나가기로 한다. 조금 멀리.



덧. "그걸 왜 주워와!" 동생한테 혼났다. 내 도덕성을 성찰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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