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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 Apr 22. 2016

LP

2016.4.19


"Across the universe"를 꽤나 좋아한다.
이 곡에 처음 빠져지낸 때가 3년전 쯤 아니었나 싶은데, 문득 그 날이 생각난다. 초여름 밤이었는데, 나는 산이언니의 집에 가볍게 옷을 입고서 가만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하고 있었다. 늘 우리의 일상이 그러했 듯 그 날 또한 여전히 즐거웠던 밤이었다. 파란색이었는지 초록색이었는지 여튼 기분좋은 색의 그림이 그려진 인도풍 천이 언니의 방에 드려져 있었다. 그 색이 아릿하게 기억나고 그날 밤 언니가 끓여준 라면과 만두도 기억이 난다. 즐거웠다고 썼지만, 정말로 즐거웠던 날이었다. 그래도 꽤나 더운 여름 밤이었다.

우리 둘다 어렸던 그 여름밤, 사실 이 노래는 가사가 꽤나 슬픈노래라고 잠들기 직전 나란히 누워있던 산니가 알려주었다.
Jai guru deva om 라는 산스크리트어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으로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라는 말만이 스스로에게 되뇌이듯이 되풀이된다.

'생각은 차분하지 못한 바람처럼 우편함 속에서 정처없이 흐르고,
우주 끝으로 가는 길에서 눈이 먼 것처럼 넘어지고 말아요.
'Jai guru deva om(산스크리트어_선지자여 진정한 깨달음을 주소서)'
아무것도 나의 세상을 바꿀수 없어
아무것도 나의 세상을 바꿀수 없어
아무것도 나의 세상을 바꿀수 없어
아무것도 나의 세상을 바꿀수 없어'

그제야 가사를 곱씹어보며 생각해보고 뒤늦게 깨달은, 그런 작은 추억이 있는 노래인데, 연남동의 조용한 골목 어귀에 있던 바에 갔다가 신청곡으로 적어 냈더니 사장님이 무려 LP판을 찾아서 틀어주셨다. 참 좋은 음악들에 걸맞는 참 좋은 공간이었다. 사장님 부부의 추억과 기억이 담겨있던 LP판들을 그대로 전부 모아, 손님들의 신청곡을 틀어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 친절하지도, 또 그리 살갑지도 않지만 그 바 곳곳에 숨겨진 작은 배려의 손길만으로도 충분했다. 담백했고, 소박했다. 또 작았고, 아름다웠다.

곧이어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를 LP버전으로 듣는 영광을 맛본다. 처음이었다. 디지털음원과 다르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 모르니까. 그렇지만 단지 오랜 몇 년간을 나의 애정하는 어떠한 것으로 있어온 존재를 다른 시공간에서 오롯이 담겨 경험한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것일지도 모른다. 뜨거운 기억으로 남았고, 또 미지근하게 오래 갈 기억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 순간이 좋아 마냥 가만히 또 잔잔히 있을 무렵, 내년 이맘때쯤의 나를 생각 해 본다. 나는 내년 이맘때 쯤 어떠한 모습으로 또 남아있을까. 나는 여전히 이러한 것들을 좋아할까. 옛날것들에 여전히 취향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들을 좇으며 살고 있을까. 그쯤 생각할 무렵 농도짙은 LP판의 음악소릴 들으며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우리 생각엔 디지털 앨범이 가장 좋은 음질일거라 생각하지만, 현존하는 것 중에 아직은 LP판을 능가할 수 있는 음질을 구현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아이러니하다는 말을 쓰고싶지 않지만 아이러니하다. 세상엔 이렇게 작고 사소한 아이러니함이 가벼운 기분좋음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다.

어릴 때 우리집 한 켠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많던 LP판들과 크고 검던 턴테이블이 생각난다. 먼지가 자욱했다. 가끔 꺼내어 보면 그 표지가 그렇게 촌스러울수가 없었지만 가끔 아주가끔 LP판을 돌려보는 재미가 있었다. 엄마아빠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취향을 알고 낭만을 알고 또 즐길줄을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십년 전쯤엔가, 이사로 정신이 없던 날, 그 LP판들과 턴테이블을 아빠가 갖다버렸다는 걸 알고는 신혼시절 3개월치 월급을 모아 산거였다며 그런걸 어떻게 내버렸냐고 울던 엄마가 기억나긴 하지만.

이 날 여기에서 느꼈던 짙은 LP판의 소리처럼, 또 어린시절 내 기억처럼 가끔은 그렇게 옛날의 것이 지금의 어떤것 보다도 값질때가 있다. 지금의 우리 모습들이 나중에 시간이 지난 때에 더욱 값진 모습으로 남아있었으면 한다. 모든것이 그렇게 되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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