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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자 May 09. 2020

그래서 불평등이 왜 문제인거죠?

<초예측: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를 읽고.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생각들.


이 책을 읽으며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을 곱씹던 중에  문득 머릿속에 '우리는 왜 평등해야 하는 거지?'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평등은 '그냥 좋은 것' 정도로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로 생각하며 더 이상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항상 생각은 거기에 그쳐있었다.



언론, 각종 sns 등 매체가 범람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여러 말들에 휩싸이다 보면 언어 자체에 매몰되어 생각 없이 주입되기 십상인데 그 기분이 상당히 언짢고 불편하다. 내 식 대로 이해해보고 싶어서 '불평등'이란 단어를 수십 번 곱씹어보면서 대체 불평등이란 무엇인지, 대체 어떤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나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실은 불평등하다'는 명제는 빈곤층이 스스로 신세 한탄하거나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고자 쓰는 문장이라기보다 사실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70억 인구가 제각각 생김새가 다르며 각자 타고난 기질, 주어진 환경이 다르듯이 불평등은 마치 숨 쉬는 것과 같이 당연하다. 따지고 보면 개성도 불평등의 다른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명제는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 명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인간다운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는 당위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의 문장으로 설명되는 정치적 평등은 프랑스 인권선언과 미국 독립전쟁 이후 헌법에 처음 적히기 시작했다. 자유와 평등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출된 18세기 말 서구에서의 일련의 사건들은 사실상 인간의 '권리' 차원에서의 평등을 쟁취한 역사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평등의 가치가 너무 익숙하기에 한때 나는 인권선언, 헌법과 같은 '종이 쪼가리들'에 불과한 게 무슨 큰 의미를 갖겠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노예가 존재하던 혁명 이전 계급사회에서의 '평등'은 '평평한 전등'이라는 형광등 브랜드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엔 정말 당연한 게 하나도 없다.



평등이란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엔 '평평한 전등'이란 브랜드 이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필자 인스타그램]



물론, 현대에 이르러 헌법 조문상에서의 선언적 의미를 실제로 얼마나 실현하느냐는 각 사회마다 다르고 북한이라는 예외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평등이란 무질서가 팽배하고 불평등이 일상화된 정글과 같은 인간사회의 현실을 교정하고 인간의 '권리'를 증진하고자 노력하자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한편 경제적 관점에서 불평등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낳은 불가피한 모순덩어리이다. 시장질서에서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에 따라 각자 상이한 능력을 발현하다 보면 경제적 불평등은 자연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와 민주당이 놓친 것이 바로 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경제적 자유가 최대로 보장되는 만큼 불평등도 세계 최대 수준인 미국 사회에서 몰락한 제조업에 종사하던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참다 참다 못살겠다고 소리 지르는 것이다.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백인 트럭 운전사에게 권리라는 단어는 불필요한 공상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기에 모든 정치적 논의를 잠식할 잠재력을 갖는다. 불평등이 점차 가속화됨에 따라 계층 간 양극화를 초래하고 상대적 빈곤층으로 하여금 끝없는 무력감과 사회 불만을 고조시킨다. 


이는 결국 빈곤층의 정치참여 의지를 꺾어 정치적 평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자칫 빈곤층의 대규모 소요사태로 공동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전에 읽은 토마 피케티의 저서에서는 세계화로 전 세계가 단일시장으로 구축되는 것이 국가 내, 국가 간 경제적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주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부유한 계층이 이미 세계화의 이득을 맛본 상황에서 미국발 보호주의 기조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기도 하다.



경제적 불평등의 관리는 공동체의 지속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국과 각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만하다. 거시적인 층위에서 고민하며 재미를 느끼지만 당장 나는 이 긴 인생을 끝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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