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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자 May 09. 2020

행복은 물의 '양'이 아닌 '만족할 수 있는 용기'에서

<초예측: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를 읽고.


제5장: 다니엘 코엔, 기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가.



5장은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기술혁명을 두고, 지금껏 인류가 겪어온 찬란한 기술문명과 행복의 상관성에 대해 물으며 시작한다.






다니엘 코엔은 기술발전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 원인을 기술발전에 따른 이익이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술발전과 불평등이란 소재는 숱하게 회자되는 것이라 일종의 클리셰 같았고, 미적지근하지만 타당한 이야기라며 그냥 넘길 법도 했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여러 물음들이 계속 맴돌았다.





기술 발전의 이익은 그 범주를 어디까지라고 생각할 것이며, 공평한 배분이란 건 무엇인가. 만약 공평한 배분이 가능하다면 정말 모두가 행복할 것인가?







앞선 질문들에 대해 다니엘 코엔도 충분히 고민했을 것이며 스스로 정리한 나름의 견해가 있겠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그 부분까진 확인할 수 없었다. '공평'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주장의 핵심인 것 같은데 그 부분이 누락되어있으니 달콤한 무언가를 먹다 도중에 뺏긴 기분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공평한 배분'이 전 인류, 혹은 전 국민에게 계량적으로 1/n 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건 당연하거니와 혹여 가능하다 할지라도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를 가져오진 않는다. 어쩌면 기술발전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행복은 애초에 다른 차원의 영역인지라 두 개를 같이 논한다는 거 자체가 모순인 것 같다.



절대적 총량이 같은 배분이 이뤄지더라도 모두가 행복할 순 없다. [사진 출처: 필자 인스타그램]


너무나 흔한 예시이지만 같은 양의 물을 보고도 누군가는 '절반밖에 없다' 불평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며 웃는다. 이 상황에서 물의 절대적인 양은 인간의 행복 또는 불만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결국 행복은 기술발전이나 경제적 풍요로움과는 별개로 '만족'이라는 심리적 문제로 귀결된다. 언젠가 최대 빈국 중 하나인 네팔이 행복지수 1위에 오른 것처럼,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용기'가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기술발전이 우리로부터 앗아간 것은 바로 이 '만족할 수 있는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첨단기술이 절대적 빈곤은 크게 해결해줬을지언정, 끝없는 물욕을 바탕으로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함으로써 상대적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코엔도 결국 경제학자라는 점에서 계량적 수치에 매몰되다 보니 그 부분은 놓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봤다.



오늘 하루에 대해 '삼시 세 끼 잘 먹고 구름 동동 하늘도 보고 잘살았다'며 쉬이 행복하다고 내뱉지 못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나 자신과 우리를 조용히 되새겨보면서 조금은 씁쓸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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