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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자 May 09. 2020

인간은 비합리적이라 핵전쟁은 가능할지 모른다.

<초예측: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를 읽고.



 제8장: 윌리엄 페리, 핵 없는 동북아는 가능한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의 제네바회담에 대한 회고 부분과 현재 동북아 핵위협에 대한 그의 소견을 읽었다.



북한의 비핵화를 제때 막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럴듯한 분석을 가미한 전문가들의 저작물이 곳곳에 넘쳐나지만, 극보수주의 성향을 띄었던 부시 정부와 네오콘의 '고집'을 주원인으로 꼽은 것이 아주 인상 깊었다.



민주당 정책이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냥 부정하곤 했던 2001년 당시 백악관 분위기에 대북전략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오바마 정책이라면 치를 떨던 트럼프 정부 초기의 ABD나, 우리나라 정치권의 신물 나는 좌우분열을 생각하면 민주정치의 태생적인 한계인 것 같기도 했다.

(*ABD: Anything But Obama)






지나치게 거시적인 원인에 집착하고, 여러 전문적인 견해에 그냥 노출되다 보면 내 생각을 정리할 겨를 없이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여서 정작 문제의 핵심을 놓치곤 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비합리적인 인간'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머리가 커져가면서 '합리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체에 의문을 가질 때가 종종 있었다.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최대한 합리성을 갖춰야 할 정책결정도 사실은 너무 감정적일 때가 많다. 그리고 흔히 감정은 정책에 있어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정책결정자도 결국 한낱 인간에 불과하고,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모두 갖고 있으니 '비합리적인 정책'은 당연한 인간지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진 출처: 필자 인스타그램]



그러나 비합리적이지만 '인간적인' 감정이 핵문제와 만나게 된다면 단순히 인간지사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매우 심각해진다. 상대방이 핵을 갖고 있으니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핵을 가져야 한다는 나름 합리적인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지금껏 핵확산이 이뤄져 왔지만 한순간의 오판으로 인류의 현재와 미래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릴 테니 말이다. 결국 핵문제를 관리하기 위해선 '인간적인 지도자'들의 상호 시그널 교환에서 정치적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우발적인 핵전쟁 발발 가능성과 관련해 양국 지도자 간 정치적 의도에 대한 오해나 핵무기 발사를 감지하는 첨단장치의 오작동 등 어처구니없는 사소한 일로 공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윌리엄 페리는 냉전시기 쿠바 미사일 위협이나 미소 군비경쟁 때의 철 지난(?) 예시를 들기보다 2018년 하와이 경보 사태를 근거로 든다.



실제로 당시 하와이 주민들은 하와이에 탄도미사일이 발사되었으니 즉시 대피처를 찾으라는 경보 문자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첨단장비의 오작동으로 인한 해프닝이었고 13분 만에 주정부가 정정하기는 했으나 정치적 오판이 뒤따랐다면 국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요컨대 인간 이성의 최대 걸작인 첨단장비나 정책결정자의 판단이 항상 합리적일 것이라는 과도한 믿음이 파국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잊을만하면 속보를 장식하는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에 나조차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 현실을 되돌아보며 일상화되어 무뎌진 관념들과 사건들에 더 물음표를 던지고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 핵무기 위협에 대한 인식을 대중 일반에 확산하기 위한 윌리엄 페리의 사소한 노력들을 읽으며 역시나 작은 행동의 축적이 아주 중요함을 다시금 되새겼다. 나의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도.



핵무기의 위력을 몸소 겪은 피해자는 대부분 생존하지 못하거나 겨우 생존했더라도 인간의 형태가 아닐 터라 남은 인류에게 생생한 체험담을 전달할 수 없음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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