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플 땐 병원에 갔다. 아픈 것 자체보다도 왜 아픈지 모른다는 게 더 두려웠다. 낫는다는 확신을 주었던 의사는 기억에 없다. 확신 같은 건 기대할 줄도 몰랐다. 나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그저 참는 거였다. 그렇게 병은 만성이 되어갔다. 통증을 늘 달고 살았다. 더 이상 병원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고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부터는 아예 가질 않았다.
목이 말랐던 나는 스스로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우물을 팠다. 간절하게. 여기도 파보고, 저기도 파보고 하나하나 맛을 봐가며, 뱉어내기도 하며... 그러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 유력한 답이 되어줄 만한 것과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엘림의 종려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자연치유는 내게 병의 원인도 가르쳐주었을 뿐 아니라 완치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출구 없는 긴 터널 속에서 눈먼 두더지처럼 오랜 세월 헤매던 나를 긍휼히 여긴, 삶이 베푼 한 줄기 빛이었다. 병에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먹은 음식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십 년 간의 식생활을 돌아보니 아찔했다. 너무나 많은 잘못된 것들을 먹어왔다. 안 아픈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나름 유별 떨며 건강식이라고 챙겨먹었던 것들도 차라리 먹지 않는 편이 좋았다. 완치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얼만큼 먹어야 하는지, 언제 먹어야 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자신의 식을 다스리면 더 이상 병으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왜 이렇게도 중요한 것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답은 명쾌했다. 모르고 허송한 세월이 억울하기까지 할 만큼. 그러나 이제 그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들도 몰랐기 때문이란 걸. 그리고 답이란 결국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는 걸. 삶이 나를 인도하는 대로.. 어쩌면 이 글을 쓰는 것도 단 한 명에게라도 전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연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게 제일 어려운 일 같다. 가까운 가족끼리도 자연식에 대한 저항이 심하다. 결국은 살리는 일임에도 본래의 습관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데서 오는 저항임을 안다. 그러나 막다른 순간을 맞이했을 때는 간혹 겸손해지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그러한 고난과 그 앞에서 당사자가 보이는 겸허한 제스처는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축복이다. 고난을 통해 얻는 것은 결국 회복이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인 것이다. 질병이라는 고통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죽을 때까지 내 식생활을 돌아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병은 나의 등뒤에서 끊임없이 나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준 스승이었다.
아마도 오늘 같은 퇴근 시간, 예전의 나라면 기진맥진함을 달래줄 진한 메뉴들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마트나 배달앱을 어슬렁거리며 수렵 채집 생활을 감행하는 데 아무런 마음의 갈등이 없었을 것이다. 하루종일 힘들게 일한 나에 대한 보상으로 정당화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젠 목으로 무언가를 넘기기 전에 바짝 브레이크를 걸게 된다. 질문 하나가 자동반사로 툭 튀어오른다. 이것은 과연 나를 살리는 음식인가, 죽이는 음식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한번뿐이며, 목숨은 하나이고, 생명은 더 없이 소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