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도 자연치유가 되나요?

by 치유의 통로

세상의 달력에 월요일이 한번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나는 여지 1도 없이 내 삶에 절망했을 것이다. 신의 자비로 인하여 일 주일에 딱 한번만 월요일이라서 나는 오늘 구제되었다. 그 중심에 생채식이 있었다는 것은 신이 나에게 또 한번 베푼 은총이었다.


혹독하리만치 잔인하리만치 뭐라 더 보탤 수 없을 만치 혼쭐이 나도록 월요병을 겪은 오늘 같은 날의 퇴근 이후는, 아침까지 세상 모범적으로 멀쩡히 실행하던 생채식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위기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화식과 과식과 가공식에 대한 유혹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과거에 내가 즐겨먹던 그 찐득하고 맛깔난 음식들에 대한 향수 말이다. 로제함박파스타, 훈제연어, 통닭, 떡볶이를 비롯한 온갖 분식들, 떡, 빵, 우유... 딱 한번만 먹는다면 오늘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한 큐에 날려버릴 만병통치약이 될 것임을 의심해 마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앞에서 나의 의지란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인지...태초의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과연 이 골리앗과 같은 세상의 시험장을 무사 통과할 수 있을까. 허나, 아담과 하와도 뿌리치지 못한 식에 대한 욕망 아니었던가. 과연 인간이란 어디까지 육신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나와 한번 큰일을 하려거든,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려거든 그러나 참아야 하느니라...


여기까지 얘기가 거창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반기는 것은 이미 걸판지게 준비해놓은 생채식 도시락. 하지만 생채식이라는 이유로 식탐을 유발하지 않는 특이한 음식들인 것이다. 화식은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밀어넣는 게 가능한 반면 생채식은 아무리 많이 먹으려 해도 배가 불러서 먹지 못한다. 더 먹었다간? 호흡곤란이 오고야 말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 자타공인 대식가인 나조차도 더는 입에 대는 것이 불가능하다. 눈 앞에서 보이는 음식이 다 사라질 때까지 먹는 것이 나의 자존심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이고 뭐고 생채식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겸손히 이내 숟가락을 물리고야 만다. 이쯤되면 고질병인 과식병을 고치는 유력한 대안도 생채식이다.


침으로 희한한 것은 도대체 생채소와 과일 속에 무엇이 들었길래 식후에 심신이 점점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것인지? 밥이라곤 한 톨도 안 먹었음에도 전혀 배고프지 않은 이 포만감을 넘어선 충만함(?)이란... 마치 엉엉 울어대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것처럼 얌전해졌다. 신통방통이다. 아까 월요병에 자지러지던 그 분은 지금 어디에? 채소라고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생명력을 느낀다. 죽어가던 나를 기사회생시켰다.


입추를 갓 지난 요즘 같은 선선한 날씨가 되면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바야흐로 본격 생채식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생채식을 한다는 것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보냉백을 준비해야 하고 얼음도 있어야 한다. 틈틈이 냉장고라도 발견하면 얼른 집어넣기 바쁘다. 그러나 가을이 왔다는 것은 실로 맘껏 생채식을 즐기라는 자연의 무한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도시락을 준비한다. 오늘 생채식을 차리고 맛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하루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월요병으로 흘린 눈물, 자연치유로 닦으며 웃음으로 헤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