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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Aug 13. 2021

커서 뭐 할래?

한치 앞은 어느 방향일까?

얼마 전 페이스북에 과거 오늘이라는 알람을 보니 엘지에 입사한 지 10년이 지났다고 알려줬다.


지금 나는 퇴사해서 제주에 살고 있는데 계속 다녔으면 10주년이 됐겠지.


모스크바에서 박사를 마치고 삼성에 입사해서 경력사원 입사 교육을 받을 때 미래에 대하여 설계해 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10년 후 삼성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연구원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을 했다.

우리 식구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미래를 생각해서 썼을 것이다.

물론 과제를 해야겠기에 남들에게 보이는 그럴듯한 계획을 적었을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미래 모습.

내 속마음은 내가 10년 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미리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을 고정시키는 것이라 생각해서 별로 내키지 않았다.

교육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연구원이 아닌 트리즈 컨설팅과 강의 업무로 변경되었다. 

몇 개월 후도 난 예측을 못 하는데 10년 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역시나 계획한 것과 다르게 삼성에서 8년 있다가 엘지로 옮겼다.

입사 교육 때는 왜 10년 후를 생각하고 목표를 잡으라는 지 모르겠다.

10년 동안 회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주지 않고 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써본 경험으로 비슷하게 썼을 것이다.


또다시 엘지도 8년 근무하고 퇴사했다.

이쯤 되면 난 한 군데서 오래 있지를 못 하는 사람인가란 생각이 들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니깐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남들이 생각할 때는 정년까지 다니는데 지장 없는 일을 하는데 왜 고생하려고 나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한치 앞도 모르면서 10년 후를 어떻게 알까? 한치가 앞으로 가는 것은 다리 쪽으로 가는 것이 앞일까? 한치 앞이 어디지?


그냥 지겨워지면 떠나는 것 같다.

박수칠 때 떠나란 말이 있는데 박수받을 일을 하지 못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직 철이 없고 호기심만 많아서 새로운 곳을 가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난 이렇게 제주로 스며들고 있다.


어렸을 때 내가 생각한 내 모습과 지금 내 모습은 너무나 다를 것이다. 

난 어렸을 때 정치가가 된다고 했었고 (도대체 왜?) 또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한 기억이 있다.

차츰 세상을 알게 되면서 고등학교 때는 군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군인이 된다는 계획은 성취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군인이 된다는 꿈을 이룬 것이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된 것이다.

비록 육군 병장이지만 한때는 군인이었다. 이건 계획대로 된 것이다.


내가 유학을 가서 박사가 된다는 계획은 없었고 제주에 살 것이라는 막연한 계획도 없었고 강의와 컨설팅을 할 것이라는 심지어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다.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내 욕심으로 내가 깨버렸다.


10년 후를 예측한 20여 년 전에 삼성에서 교육받으며 생각했던 것 중에 내 예상대로 된 것은 내 나이밖에 없다.


욕심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하기 싫은 것, 먹기 싫은 것, 가지기 싫은 것은 확실하게 있다. 

이런 것도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보다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요즘, 그래서 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또다시 10년 후를 생각해보라고 한다면 그냥 내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나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10년 후는 10년 후에 사는 내가 알아서 하겠지.

난 단지 10년 후 나에게 지난 10년을 후회하지 않게 해 주면 된다.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겪어 왔다.

당장 이게 무슨 필요가 있는지 몰라도 언젠가는 필요하니깐 내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미 난 태어나면서 운명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깐 뜻대로 되지 않아도 큰 실망을 하지 않는다.

다른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 눈에는 해외에서 공부한 박사고 대기업도 다니고 결혼도 해보고 잘생긴 아들도 키우고 다들 살고 싶어 하는 제주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부러워 보일지는 몰라도 사실 내 상황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 부럽지도 않을 것이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만들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보이는 모습을 만들려고 살아왔을지 모른다.

나 스스로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내 마음을 나에게 숨기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향만 지키고 있다.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큰 욕심 내지 않고 주어진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있다.


제주에서 살 것이라고 전혀 생각도 못하다고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그냥 나 자신을 지켜봐야겠다.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을 만들기 전에 꿈부터 만들어야 한다.


제주로 와서 처음에는 뭐하고 살까 고민했지만 그냥 살다 보니깐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예상한 일이라고 할 수 없지만 큰 방향으로 보면 강의와 컨설팅이다.

요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 일은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다.

나를 도와주는 많은 사람이 고맙다. 갑자기 때가 되면 나타나서 도와주는 사람들.

무엇인가 각본에 충실하는 사람인 것 같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는 질문에 이제는 그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평범하게 사는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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