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사랑하는 법

프롤로그

by 한유신

“내일은 3박 4일 짐 싸서 출근하세요.”


입사 첫날, 대표가 건넨 첫 마디였다.
출장이라는 말도 없었고, 설명도 없었다.
그냥, “짐 싸서 출근하라”는 지시 하나.
순간 나는 출근을 잘못 이해한 건 아닐까, 입사가 아니라 입박인가 싶었다.


문제를 잘 푼다는 말, 어릴 땐 자주 들었다.
수학 문제도, 교실 싸움도, 복잡한 게임 퀘스트도 나름대로 풀어가는 능력은 있었다.
그래서 문제를 푼다는 것이 내 무기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오고 나니 문제는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늘어나고, 바뀌고, 사라졌다가 되살아나고,
그리고 무엇보다——문제가 문제인지조차 불분명했다.


전 회사에서는 붙잡혔다.
이직한다고 하니 팀장은 묻지도 않았다.
“어디 가는데? 왜 가는데?” 대신, “한 번만 더 생각해보지 그래?”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 없이 확신했던 이직을 조금은 생각 있게 주저하게 되었다.

그래도 새로운 곳은 달라보였다.

대표는 교육 시간 내내 문제 얘기만 했다.
“우리 회사 비전은 LTE에서 KTX,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LM이 되는 거예요.”
LTE가 뭐냐 물으니, “Local TRIZ Expert.
일단 우리 동네에서 문제 해결사가 되자는 거죠.”

KTX는?
“Korea TRIZ Expert.”

그리고 LM은?
“Legend Maker. 전설을 만드는 거지.”


전설을 왜 만들죠? 라고 물었더니
“그럴 바엔 안 살지. 문제 하나쯤은 전설로 남겨야지.”
그 말에 조금 어이없었지만, 왠지, 말이 됐다.


대표는 운전을 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문제를 푸는 이유는 문제와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야.
문제는 도망가지만, 사랑은 붙잡게 하거든.”


그리고 회사 첫 미션은 이랬다.
“치약을 끝까지 쓰는 방법을 찾아봐요.”


치약이요?

마트에만 가도 디스펜서가 수두룩한데?
끝까지 짜는 보조 기구도 많은데?

하지만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추가 도구 없이, 치약 튜브만으로.
그리고 가격은 지금보다 더 들면 안 돼.
이건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보는 훈련이야.”


순간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이건 단지 치약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문제를 대하는 태도,
내가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
그리고——내가 문제를 사랑하는 능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날부터, 나는 문제와 연애를 시작했다.
싸우기도 했고, 밀당도 있었고, 무시하다가 밤새 붙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문제는, 그냥 바라봐주는 걸 원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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