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문제는 항상 늦게 도착한다

by 한유신

1. 회사 동료들의 엉뚱한 해결책


입사한 지 일주일.

회의 시간은 언제나 대표의 말로 시작된다.

“자, 이번엔 이 문제야.”

그날의 문제는… 아아 컵 홀더였다.

“요즘 여름이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많이 마시잖아?

근데 종이 컵 홀더가 금방 축축해진다는 불만이 많더라고.”


대표가 아아 5잔을 들고 들어왔다. 컵 밑부분은 이미 눅눅했다.

우리는 고객이었다. 그리고 고객은 불만을 가질 권리가 있다.

“물방울이 흘러내려서 손도 젖고, 책상에도 얼룩이 남죠.”

바로 옆자리에 앉은 선임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코팅지를 입히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친환경 기준에 안 맞겠지.” 대표는 단호했다.

“그냥 빨리 마시면 되죠.”

또 다른 동료는 웃으며 말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물방울이 싫으면 얼음을 빼면 되잖아요.”

누군가는 정말 그렇게 믿는 듯했다.


“컵을 두 겹으로 만들면 되죠. 안에 하나, 밖에 하나.”

“그러면 제조 단가가 두 배가 돼.”

“아예 텀블러만 사용하게 하면 되죠. 환경도 지키고, 물도 안 흐르고.”

“그건 소비자의 선택이지, 우리가 강요할 수 없지.”

해결책은 쏟아졌고, 그만큼 현실의 제약도 드러났다.

대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웃었다.


“다들 해결책부터 얘기하네. 우리는 그걸 잠시 멈춰야 해.”

“네?”

“문제가 뭔지, 정말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그걸 보라는 거야. 그게 우리가 훈련받는 방식이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차가운 컵이 테이블 위에서 물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문제를 만나면 해결책부터 말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틀리면, 그냥 문제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다르다.

“문제를 먼저 보라.”

대표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건 단순히 관찰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해결하고 싶은 욕망보다, 이해하고 싶은 시선을 가지라는 말.


이건 커피가 아니었다.

이건 문제를 사랑하는 연습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물방울 맺힌 컵을 바라보며, 해결책 없이 문제만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2. 문제란 무엇인가?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도, 머릿속은 여전히 물방울을 떠올리고 있었다.

‘왜 젖을까?’가 아니라 ‘왜 우리는 이걸 문제라고 여길까?’

문제란 뭘까.


학교에서는 문제를 풀라고 배웠다.

정해진 정답이 있고, 거기로 향하는 공식을 외우면 되었다.

틀린 답은 오답이고, 정답은 고득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답보다 먼저 문제를 보라고 한다.


TRIZ에서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까?

나는 예전에 교육시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문제란, 원하는 상태와 실제 상태 사이의 차이에서 생긴다.”

그러니까 문제를 보려면, 먼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차가운 음료를 시원하게 즐기는 것

손이나 책상이 젖지 않는 것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

그리고 현실은?

컵에 물방울이 맺히고, 종이 홀더는 젖는다

플라스틱 홀더는 비싸고 환경에 해롭다

손은 미끄럽고 책상은 얼룩진다

이 간극.

이것이 문제다.

그러고 보니, 이 문제는 하나가 아니다.

손의 젖음이라는 문제, 환경이라는 문제, 원가라는 문제, 감성적인 만족도까지.

문제는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겹으로 얽혀 있다.

마치 얼음처럼, 겉은 투명해 보여도 속은 단단히 얼어 있다.

이건 단순히 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느냐에 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대표가 말한 "문제를 먼저 보라"는 말의 진짜 의미였다.


3. TRIZ의 ‘문제 정의’ 개념 도입

회의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종이 홀더가 젖는 건 분명한 문제다.

그런데 대표는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정말, 내가 본 건 문제였을까? 아니면 단지 결과였을까?

TRIZ에서 말하는 ‘문제’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TRIZ는 문제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조화한다.

대표가 말했던 개념들이 떠올랐다.


행정적 모순:

목표는 분명하다. “젖지 않는 종이 홀더를 만들어라.”

그런데 조건이 충돌한다.

종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약과 젖지 말아야 한다는 목표가 부딪힌다.

이처럼 해결 방향 없이 던져진 목표가 행정적 모순이다.


기술적 모순:

종이 홀더는 친환경적이지만 물에 약하다.

반대로 플라스틱 홀더는 물에는 강하지만 환경에 해롭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기술적 모순이다.


물리적 모순:

기술적 모순을 한 걸음 더 깊이 보면, 물리적 모순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의 종이 홀더가

→ 동시에 ‘물을 흡수해야 한다’ (손까지 물이 가지 않게)

→ 그리고 동시에 ‘물을 흡수하지 않아야 한다’ (홀더가 젖지 않게)

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한 개의 파라미터, 즉 ‘흡수율’이라는 속성에 정반대의 특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상태다.

이게 바로 TRIZ에서 말하는 물리적 모순이다.


나는 이 세 가지 구조를 종이에 그려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건 문제의 정의다.’

대표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해결하지 마라, 먼저 정의하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함이 오히려 문제를 흐릿하게 만든다.

TRIZ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란, 원하는 상태와 실제 상태 사이의 차이에서 생긴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상태는 정확히 무엇인가?

단지 “홀더가 젖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손이 젖지 않는 것”, “책상이 젖지 않는 것”, 혹은 “음료 경험 전체가 쾌적한 것”일 수도 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먼저 문제를 명확하게 해체해야 한다.

단순한 젖음의 현상 속에는 수많은 기대와 전제가 얽혀 있다.

그리고 대표가 말한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친환경이어야 하지.

또 젖지 않아야 해.

이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까?”

겉으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조건처럼 보이지만,

이 두 조건은 공통된 속성(파라미터)을 기준으로 서로 충돌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통 파라미터 친환경 측면에서 요구 방수 측면에서 요구

재료의 화학 구성 자연 분해 가능한 섬유 소재 합성 방수 코팅 필요

흡수율 수분과 반응해 분해가 용이함 흡수하지 않아야 젖지 않음

표면 특성 무가공 천연 표면 물방울이 튕기는 코팅 필요


이처럼 하나의 속성에 상반된 요구가 동시에 걸리는 순간, 우리는 물리적 모순을 만난다.

TRIZ는 그 지점을 문제의 ‘핵심’이라 부른다.

문제를 구조화하고, 정의하고, 분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해결은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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