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은 현실보다 먼저 도착한다
회의실에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대표가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
“이제, 거꾸로 가보자.”
“거꾸로요?”
“현실에서 문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상에서 출발해 현실을 다시 보는 것도 필요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에서 출발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
대표는 컵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가장 이상적인 컵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젖지 않고, 단열도 잘되고, 가볍고, 생분해되면 좋겠죠. 손도 안 젖고, 책상도 안 젖고...”
“좋아. 그런데 그 이상적인 컵이 실제로 존재할까?”
“음... 아니요.”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건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기능은 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존재하지 않는데 기능은 한다는 게 무슨 말씀이에요?”
“플라톤을 아나?”
“...이름만 들어봤어요.”
“플라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두 가지 세계에 존재한다고 봤어. 하나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 그리고 또 하나는 이데아의 세계지.
이데아란, 사물이나 개념의 완전하고 본질적인 형태를 말해. 현실 세계의 모든 사물은 그 이데아의 불완전한 그림자일 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췄다.
“불완전한 그림자요? 이해가 안 돼요. 좀 더 설명해 주세요.”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아,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들어볼까.”
그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동굴을 그리듯 그렸다.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동굴 안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벽만 보고 있어. 그런데 그 벽에 그림자가 비쳐. 실체는 뒤에서 빛을 받아 벽에 비친 조각상들이지.”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세상을 이해하려 해.
그 그림자가 말이었고, 나무였고, 사람이라고 믿는 거야. 하지만 사실은 그 그림자들이 전부는 아니지. 바깥세상, 즉 진짜 실체가 있는 곳——그곳이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야.”
나는 조금씩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컵이나 홀더도, 어쩌면 그 벽에 비친 그림자 같은 거라는 거죠?”
“맞아. 지금 우리가 잡고 있는 컵은 수많은 조건과 타협 속에서 만들어진 그림자일 뿐이야. 이상적인 컵——그건 그림자의 원형이자, 본질이지.”
“이 컵을 봐. 이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제 물체야. 그런데 이 컵은 언제든 깨질 수도 있고, 뜨거운 물에는 변형될 수도 있지. 디자인도 다양하고, 재료도 플라스틱, 종이, 유리 등 여러 가지잖아. 하지만 '컵'이라는 개념은 그 모든 개별적 조건을 넘어서 존재하는 일종의 '본질'이 있어.”
“본질이요?”
“그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란 건 바로 그거야. 수많은 컵들이 다 다르지만, 우리가 '이건 컵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 그것이 바로 '이상적인 컵'이라는 개념이야. 우리는 그 완전한 컵, 즉 이데아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거지.”
“즉,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컵은 그 완전한 컵—이데아의 일종의 그림자이자 모사품이라는 거죠?”
“정확해. 불완전한 형태로 이데아의 기능을 따라가는 거야. 그래서 이데아는 현실에 없지만, 그 기능과 구조의 이상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더 잘 바라볼 수 있어.”
대표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적인 컵은 이 세상에 실체로 존재하진 않아.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상상하고 추구할 수는 있어. 그 상상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보는 기준이 되지. 그게 바로 이데아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야.”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상적인 컵은 컵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그 컵이 수행해야 할 기능의 총합이었다.
“그러면... 이상적 최종 결과라는 게 그거예요?”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지만 달라. 이상성은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이고, 이상적 최종 결과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조적 정의야. 지금은 아직 이상에 집중하자.”
나는 마음속에서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상적인 대상은 컵일까, 아니면 홀더일까?'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너무 컵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혹은, 진짜 이상은 컵도 홀더도 아닌 ‘젖지 않는 경험’, ‘불편하지 않은 일상’일지도 모른다.
이상은 대상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이루어야 할 의미를 묻는 질문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컵은 무엇일까?’
머릿속에서 상상해봤다.
젖지 않는 컵, 얼룩지지 않는 책상, 손이 항상 보송보송한 상태.
컵을 잡는 순간 온도가 적당히 유지되고, 어떤 홀더도 필요 없다.
다 쓰고 나면 생분해되고, 쓰는 동안은 가볍고 단단하다.
마시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불편함이 없다.
이상적인 컵은 현실에 없다.
플라톤이라면 말했을 것이다.
“그건 이데아에 존재하는 것, 본질의 세계에만 있다.”
TRIZ는 그것을 이상 시스템(Ideal System)이라고 정의한다.
기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 기능은 수행되고 있는 상태를 말하지.
다시 말해, 이상적인 컵이란
컵이라는 실체는 없지만, 그 기능—즉 액체의 위치를 유지하는 기능—은 완벽하게 수행되는 상태야.
예를 들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컵 없이 공중에 떠 있게 할 수 있다면?
물이 흐르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면?
그건 컵이 사라졌지만, 기능은 남아 있는 상태야.
그리고 그 상태에서는 당연히 컵 표면에 물방울이 맺힐 일도 없지.
그게 바로 이상 시스템이야.
문제 해결을 시작할 때, TRIZ는 항상 묻는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무엇인가?’
그건 단순한 공상도, 도달할 수 없는 목표도 아니다.
이상을 먼저 떠올려야 현실의 제약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컵은 젖지 않는다.
그럼 지금 우리가 만나는 젖음은 무엇인가?
이상을 기준 삼아 현실을 다시 바라보면,
젖는 것조차 피할 수 없는 법칙이 아니라,
조건의 조합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선택지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곧 가능성이기도 하다는 걸, 그때 나는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2. 현실과의 거리, 그 안에 숨은 질문
대표는 말했다.
“이상적인 컵이 있다면, 지금 우리 컵은 어디에 있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계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표는 말없이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컵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어. 용량은 300ml. 외벽엔 매장에서 찍은 로고가 프린트돼 있고, 표면은 단일층의 반투명 재질로 약간 미끄럽지. 뜨거운 음료엔 부적합하지만, 아이스 음료용으로는 가볍고 싸. 손이 시리지 않게 하기 위해 종이로 된 홀더를 덧씌워 사용하고 있어. 그 홀더는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재질이고, 보온 효과보다는 손의 시림 방지를 위한 구조야. 여름이라 컵 표면에는 응결된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현실의 컵이 머릿속에서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도식화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는 '컵'이라는 단어 하나로 많은 걸 뭉뚱그려 말하고 있었다.
“TRIZ에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감으로만 보지 않아. 이상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판단하려면, 그 거리를 측정할 기준이 필요하지. 그래서 TRIZ는 기능과 비용의 관점에서 이상성을 정량화하려고 해.”
“기능과 비용이요?”
“그래. 간단히 말하면, 이상성은 ‘기능 ÷ 비용’이라는 형태로 표현할 수 있어. 기능이 클수록 좋고, 비용이 적을수록 좋지. 여기서 비용에는 재료비, 제조비, 유지비 등 다양한 실제적 자원이 포함돼.”
나는 메모장에 '이상성 = 기능 ÷ 비용'이라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상이란 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 속 요소들을 기준으로 접근 가능한 목표군요.”
하지만 이상은, 그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순수한 목적’을 드러낸다.
나는 깨달았다.
현실은 조건의 집합이고, 이상은 의도의 정수다.
그래서 TRIZ는 현실의 문제에서 시작하되,
반드시 이상을 통해 문제를 다시 묻는다.
“정말 이건 필요한가?”
“우리가 원하는 건 이건가?”
“이대로일 필요는 있는가?”
문제가 고착되었을 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상적인 상태는 무엇이었지?”이다.
이 질문 하나로, 문제의 구조가 다시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지금껏 '홀더가 젖는다'는 현실만을 붙잡고 있었지만, 사실 우리가 원하는 건 ‘손이 젖지 않는 것’이었고,
더 깊게 들어가면 ‘불편하지 않은 음료 경험’이었다.
홀더는 그 수단이었을 뿐, 목적은 아니었다.
이상은 목적을 드러낸다.
현실은 수단을 강조한다.
그렇다면——지금 우리가 붙잡고 있는 문제는, 혹시 수단을 문제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생각이, 다음 도약을 준비시켰다.
3. 이상적 최종 결과에서 한발자국 물러서기
대표는 말했다.
“자, 이제 이상적 최종 결과에서 출발해보자.”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젖지 않는 것'인가요?”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결과일 수 있어. 중요한 건 그 상태가 의미하는 기능이 무엇인지야. 가장 먼저 확인할 건 문제 자체지. 지금 우리가 진짜 불편해하는 게 뭔지부터 다시 짚어보자.”
나는 컵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손이 젖어요.”
“좋아. 그게 문제라면, 이상적 최종 결과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손이 젖지 않는다 → 그건 명확한 상태다. 하지만 어떻게?
물이 손에 닿지 않는다 → 조금 더 근본적인 조건
물이 홀더를 적시지 않는다 → 더 깊이 들어간 조건
물이 생기지 않는다 → 현실에서 불가능할 수 있다
대표는 그걸 듣고 천천히 말했다.
“TRIZ에서는 이상적 최종 결과(IFR)를 '문제 해결을 위한 외부 자원의 추가 없이, 대상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부작용 없이 작동하는 상태'라고 정의하지. 가장 좋은 해결은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거야.”
나는 다시 질문을 바꿔 생각했다.
종이 홀더는 물에 젖지 않는다.
종이 홀더는 물에 젖더라도 손까지 전달하지 않는다.
종이 홀더는 물에 젖더라도 빠르게 마른다.
종이 홀더는 젖더라도 손에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
이처럼 한 걸음씩 물러나는 사고를 하다 보면,
현실적인 조건에서 점점 이상적인 조건에 가까워지는 경로가 보였다.
이건 단순히 '젖지 않음'이라는 명제를 붙잡는 게 아니라,
그 명제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실현 가능한 길들을 여는 작업이었다.
TRIZ가 이상을 향해 걷는 방식은,
그 이상을 그대로 붙잡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한 걸음씩 되짚으며 가능성을 좁혀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상은 별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 방향을 따라, 나는 현실의 문제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