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문제는 언제나 돌아온다

by 한유신


1. 새로운 해결이 새로운 문제를 부른다


손이 젖지 않게 하려는 고민은 곧 해결되는 듯 보였다. 나는 종이 홀더를 방수 코팅 처리하는 방안을 떠올렸고, 이중 구조로 물방울이 닿지 않게 막는 디자인도 스케치해봤다.


코팅된 종이, 내부 공기층, 물방울을 튕기는 재질, 심지어는 컵을 잡지 않고도 마실 수 있는 집게형 홀더까지——해결책은 쏟아졌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그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부른다는 사실을.


코팅하면 재활용이 어려워졌다. 이중 구조는 단가를 높였고, 새로운 장비가 필요했다. 접촉면을 줄이면 손은 마르지만, 물은 바닥으로 떨어져 책상을 적셨다.


대표는 한 마디를 던졌다.


“해결책이 문제를 없애지 않아. 문제를 옮길 뿐이지.”


나는 멈칫했다. 그 말은 너무 간단했지만, 이상하게 깊었다.


“우리는 종이 홀더가 젖는다는 문제를 풀려고 했지. 그런데 그 문제는 진짜 문제였을까?”


대표의 말에 다시 생각이 돌아갔다.


손이 젖는 게 문제였고, 그 손에 닿게 만드는 건 홀더였고, 홀더를 적시는 건 컵 표면의 물방울이었고, 그 물방울은 응결 현상이었고, 응결은 얼음과 공기, 온도 차에서 시작됐다.


문제는 늘 한 걸음 더 앞에 있었다.


그리고 해결책은 늘, 문제를 따라다녔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됐다. 문제는 제거되는 게 아니라, 순환한다는 것.


문제를 덮으면 다른 곳에서 터지고, 막으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TRIZ는 말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바꿔라.”


문제는 종이 홀더가 아니다. 문제는 컵도 아니다. 그 모든 사건의 시작점——물방울이다.


물방울은 조용히 태어난다. 컵 표면 어딘가에서 응결로 생겨난다. 가볍고 둥글고 맑다. 하지만 그 하나가 흘러내릴 때마다 문제는 실체를 얻는다.


물방울은 아무 말 없이 문제를 만든다. 손을 젖게 하고, 종이를 무겁게 만들고, 책상에 얼룩을 남긴다.


컵은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얼음도 가만히 있었다. 움직이는 건 언제나 물방울이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고치려 했던 건 물방울의 결과였다. 이제는 물방울의 ‘이동 경로’를 봐야 했다.


그리고 그 경로를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문제가 스스로 사라질 수 있도록 길을 바꾸는 것.


2. 숨은 모순, 그리고 새로운 질문


책상에 떨어진 물방울을 닦다가, 나는 다시 멈췄다.


“손이 안 젖는 대신, 책상이 젖네.”


기능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였다. 손은 말랐고, 홀더는 튼튼했다. 하지만 바닥은 젖어 있었다. 그리고 물방울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이건 새로운 모순이었다.


TRIZ에서는 이를 '2차 문제(Secondary Problem)'라고 부른다. 처음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 해결책이 또 다른 위치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나는 홀더, 손, 책상, 컵, 물방울의 관계를 다시 노트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엔 언제나——물방울이 있었다.


문제는 대상이 아니라 관계였다.


컵이 있기에 물방울이 생기고, 물방울이 움직이기에 종이가 젖고, 종이가 젖기에 손이 불편하고, 손을 보호하려다 바닥이 젖는다.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물방울이 앉아 있었다. 그것도 제멋대로 자리를 옮기는 ‘고정 좌석 없는 관객’처럼.


나는 이 문제를 원인별로 잘게 쪼개 보기 시작했다.


물방울은 왜 생겼을까?


물방울은 왜 흘러내릴까?


어디를 통해 이동하고 있을까?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때 대표가 다가와 내 노트를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물방울은 가해자가 아니라, 메신저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문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문제를 알려주는 신호란 거지. 어디에 응결이 있고, 어디에 흡수가 부족하고, 어디에 길이 막혔는지를 말이야.”


“그럼 물방울은 문제를 적는… 필기 도구네요.”


대표가 웃었다. “그래. 문제를 볼펜으로 쓰면 안 지워지지만, 물방울로 쓰면 흔적은 남아도 물티슈로 지울 수 있지. 물론, 그 물티슈가 책상이라면 문제가 되는 거고.”


“결국, 우리가 물방울을 막아야 하는 게 아니라, 물방울이 흘러가야 할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지. 물방울도 길을 몰라서 헤매는 게 아냐. 중력이 있는 한 아래로는 흘러. 하지만 그 경로에 울퉁불퉁한 장애물만 없으면 돼. 너는 그걸 설계하는 사람이야.”


나는 처음으로 물방울이 미워지지 않았다.


그건 그냥 흘렀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어디로 흐르게 둘지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흐르게 ‘상상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3. 작은 사람 이론과 흐름의 상상력


대표는 내 노트를 들여다보다가, 컵 옆에 그려진 물방울을 가리켰다.


“이 물방울을 그냥 물방울로 보지 마. 이걸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봐.”


“작은 사람... 이요?”


“그래. 물방울 자체가 작은 사람인 거야.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는 존재. 이 컵은 작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스키장 같은 거지.”


나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점점 그 비유가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대표가 말을 이었다. “공기 중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물방울 사람들이 숨어 있어. 그런데 컵 표면에 있는 컵 사람들이 ‘야, 여긴 시원하다! 놀러와!’ 하고 손짓하면, 물방울들이 하나둘 그 표면에 도착하지.”


“그럼 물방울 사람이 표면에 도착해서 앉는 거네요.”


“응. 그 사람은 작은 얼음 벤치에 앉는 거야. 그런데 그 벤치에 또 다른 물방울 사람이 계속 앉아. 또 한 명, 또 한 명. 그러다 보니 벤치가 점점 무거워지지. 그러다 중심을 잃고——슉——미끄러지는 거야.”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 그게 응결과 흐름의 메커니즘이군요.”


“맞아. 우리는 지금까지 물, 컵, 공기만 봤지만, 이젠 시스템을 잊고 현상만 보자. 스키장에서 썰매 타듯, 물방울 사람은 컵 표면을 따라 흘러내려. 만약 컵 사람들이 길을 막거나, 울타리를 치거나, 손을 뻗어 방향을 제어하면 어떻게 될까?”


“흐름이 바뀌거나, 멈추거나, 튕기거나 하겠죠.”


“그래. 우리가 할 일은 그거야. 물방울을 없애는 게 아니라, 물방울 사람들의 경로를 ‘조율’하는 것.”


그 순간 나는 스키장 슬로프를 따라 내려가는 수많은 물방울 사람들을 상상했다. 어떤 길은 곧고, 어떤 길은 꼬불꼬불하며, 어떤 길은 안전하고, 어떤 길은 위험했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적었다.


“물방울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초대받은 것이다.”


4. 흐름을 바꾼다는 것


물방울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없앨 수도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 ‘흐름’을 설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대표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문제를 막으려 한다. 하지만 TRIZ는 문제를 통과시키는 방법을 알려주지.”


그때였다. 구석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신입 디자이너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요... 흐름을 바꾼다는 게, 물리적으로 뭔가를 설치하거나 막는 거 말고도 가능한 걸까요?”


대표가 미소 지으며 되물었다. “예를 들면?”


그 디자이너는 종이컵을 가리키며 말했다. “컵 디자인에 미세한 패턴을 넣어서, 물방울이 흘러가는 방향을 유도한다든지요. 방향을 틀어주는 무늬 같은 거요. 그걸 물방울이 인식할 수는 없겠지만, 표면 장력이 영향을 받을 순 있잖아요.”


대표는 감탄하듯 말했다. “좋은 발상이야. 바로 그게 흐름을 설계하는 사고지.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시스템 내부에 ‘길’을 만드는 것. 강을 막는 게 아니라, 수로를 새로 만드는 것처럼.”


나도 거들었다. “그럼 만약 종이 홀더의 외부에 홈을 파서, 물이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면 어떨까요? 잡는 손과 반대쪽으로요.”


디자이너가 웃었다. “그럼 물방울도 인공지능처럼 경로를 학습하겠네요. ‘아, 나는 여길 타고 내려가야 해!’”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시스템은 사용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거야. 문제를 억지로 끌어안지 말고, 그 문제의 방향을 바꿔줘. 그러면 사용자는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돼.”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껏 했던 건 물방울을 막는 일이었다. 코팅, 분리, 단열, 차단——모두 ‘저지’였다.


그런데도 물방울은 계속 흘렀다. 그리고 결국, 문제는 우리 손끝이 아니라 바닥에 닿고 있었다.


“흐름을 바꿔야 해요.” 내가 말했다.


“맞아.” 대표가 받아쳤다. “길을 바꾸면, 방향이 바뀌지.”


TRIZ는 시스템을 조정한다. 흐름을 재설계하고, 구조를 재배치한다. 문제는 멈추지 않지만, 흘러갈 방향은 조정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사실 물방울뿐 아니라, 문제 자체도 흘러가야 하는 거네요. 막히면 쌓이고, 흐르면 풀리는 것처럼.” “문제를 멈추려 하지 말고, 흘러가게 도와주는 거군요. 물방울을 적이 아니라 손님으로 대하듯이.”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는 물방울 하나로부터 시작해, 문제의 본질까지 왔다.


그건 더 이상 젖은 손이나 얼룩진 책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흐름의 문제였고, 흐름은 언제나 설계 가능하다는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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