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분석
1. 창은 무겁다
회의실이 끝나고 며칠 뒤, 우리는 자재 전시장에 설치된 창호 샘플 앞에 섰다.
“실제로 한번 열어보시죠.”
나는 손잡이를 잡고 창을 밀었다.
창은 꿈쩍하지 않았다.
어깨에 힘을 더 주자 삐걱거리며 조금씩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부드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겨우 열린 것’이었다.
팔에는 힘이 들어갔고, 손목에는 마찰이 남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창을 여는 게 아니라 밀어내는 느낌이야.’
담당자가 곁에서 덧붙였다.
“단열 유리라서 무게가 좀 나갑니다. 대신 방음, 단열은 확실하죠.”
대표도 한 번 열어보고 짧게 말했다.
“닫을 때도 꽤 힘이 들어가네.”
나는 창을 다시 바라보았다.
‘무겁다.’
하지만 이 무게는 단순한 단점이 아니었다.
창이 무거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단열을 위해선 두꺼운 유리가 필요하고, 방음을 위해선 구조가 밀도 있게 설계돼야 한다.
바람이 새지 않도록 틈새를 막으려면 밀폐력이 높아야 하고, 밀폐력을 높이려면 무게 중심이 단단해야 한다.
결국 좋은 창은 자연스럽게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무거운 창은 성능 좋은 창이다.
문제는, 좋은 창이 반드시 사용하기 편한 창은 아니라는 데 있다.
나는 손으로 창틀을 짚고 다시 열었다.
창은 바닥의 레일을 따라 움직였고, 손에는 분명히 반발력이 느껴졌다.
그때 문득, 방향이 어긋난다는 감각이 들었다.
‘중력은 아래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창을 옆으로 밀어야 한다.’
이건 구조적인 불일치였다.
창은 늘 바닥으로 눌려 있는 상태인데, 우리는 옆 방향으로 밀어 이동시켜야 한다.
대표가 옆에서 말했다.
“무게는 아래로 작용하는데, 우리는 옆으로 움직이려고 하지.
그러니까 힘이 분산되거나, 어긋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창을 다시 밀었다.
정말이었다.
창은 바닥을 눌러가며 마찰을 만들고 있었고, 나는 그 저항을 옆 방향에서 억지로 뚫고 나가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무겁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힘이 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무게는 아래로, 사용자의 힘은 옆으로.
이 둘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떤 보조 장치도 성능을 다 내기 어렵다.
문제는 창 자체가 아니라, 그 무게가 어떻게 흐르고, 사람의 힘과 어디서 만나 충돌하는가였다.
2. 문제를 힘으로 다시 보기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지금 우리는, 단순히 창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 창을 못 여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어떤 힘이요? 손의 힘이요, 아니면 구조를 움직이는 힘이요?”
대표는 칠판에 창의 단면을 그리며 말했다.
“둘 다야. 손의 힘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힘,
그리고 그 힘이 창의 저항을 이겨내도록 전달되는 구조.”
나는 창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힘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창 자체를 움직이는 힘
유리와 프레임의 질량을 이동시키는 기본적인 운동 에너지
저항을 이기는 힘
모헤어가 눌리며 생기는 마찰
레일과 롤러 사이의 마찰
창의 무게가 아래로 작용하면서 발생하는 수직 압력
이 두 힘은 단순히 더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다르게 작용하고, 다르게 소비되고 있었다.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힘이 부족한 게 아니라, 불필요한 힘이 너무 많다.’
대표는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쓰는 힘의 절반은 창을 여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저항을 이겨내는 데 소비되고 있어.”
그 말이 맞았다.
손으로 창을 밀 때, 처음 3cm를 움직이는 데 가장 큰 힘이 들어간다.
그 이후엔 비교적 부드럽게 움직인다.
정지 마찰이 운동 마찰보다 크기 때문이다.
창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총 힘은 일정하지만, 사용자는 가장 처음 그 힘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 힘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저항 자체를 줄이는 것.
(모헤어 개선, 롤러 효율 증가, 마찰 재설계)
다른 하나는 사람의 힘이 덜 들도록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
그때 나는 대표가 자주 말하던 단어를 떠올렸다.
작용 구역(Operating Zone)
문제는 창 전체에 있는 게 아니었다.
손이 닿는 그 지점.
롤러가 굴러야 할 그 지점.
모헤어가 마찰을 일으키는 그 지점.
그곳에서, 우리는 힘을 다시 정의해야 했다.
이제는 무게가 아니라, 힘의 구조를 다시 그릴 시간이었다.
3. 힘의 방향을 묻는 질문
회의실에 설치된 샘플 창을 앞에 두고, 대표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창을 열고 닫았다.
마치 창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나는 창 옆에 서서 가만히 지켜봤다.
대표는 손을 멈춘 채 물었다.
“지금 내가 주는 힘은 어디로 갔을까?”
질문이 예상보다 깊었다.
나는 창을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옆으로요. 창이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전달됐겠죠.”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손은 옆으로 밀었지.
그런데 창은 원래 어디로 힘을 받는 구조일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대표는 창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창의 무게는 중력 방향, 즉 아래로 작용하고 있어.
그 말은 곧, 창의 모든 하중이 바닥으로 눌려 있다는 뜻이야.
우린 지금 그 아래로 눌린 걸, 옆으로 미는 거야.”
그 순간 나는 느꼈다.
힘의 방향이 어긋나 있다는 것.
“그럼,” 대표는 이어 말했다.
“내가 옆으로 미는 힘 중 일부는 창을 움직이게 하는 데 쓰이고, 일부는 바닥의 마찰과 싸우는 데 쓰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가 낸 힘 중 일부는 버려지고 있는 셈이군요.”
대표는 화이트보드에 힘의 분해도를 그렸다.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힘 → 수평 성분 → 창 이동 → 수직 저항 성분 → 마찰, 모헤어, 롤러 저항
“봐봐. 힘은 하나지만, 방향이 어긋나면 손실이 생겨.
이걸 줄이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
힘의 방향을 바꾸는 것
힘이 닿는 구조를 바꾸는 것
“그리고,” 대표는 말했다,
“지금 이 창의 구조는, 사람이 지치게 설계돼 있어.”
나는 조용히 노트에 적었다.
‘사람의 힘을 따라주는 구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우리가 지금까지 고민했던 건, 무게가 아니라 사람의 힘이 흘러가는 길이었다.
이제, 그 길을 다시 설계해야 할 차례였다.
4. 사람이 낼 수 있는 힘은 얼마나 될까?
회의실의 창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열고 닫아봤고, 그럴수록 더 분명해졌다.
힘이 부족하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낼 수 있는 힘보다, 구조가 요구하는 힘이 더 크다.
나는 검색을 해봤다.
평균적인 성인의 손으로 미는 힘은 약 20~30N 정도.
아이의 경우엔 10N도 되지 않는다.
노인의 경우, 더 적다.
우리가 설계하는 창이 그 이상을 요구하면?
그건 사람을 위한 창이 아니다.
대표는 말했다.
“기술자는 이 수치를 가볍게 넘길 수도 있어.
하지만 사용자는 그게 한계일 수도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준이 생기네요.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구조는, 사용자가 낼 수 있는 힘 이하로 창을 열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표는 다시 손으로 창틀을 짚었다.
“창은, 구조적으로 아래로 눌리고 있어.
우리는 그걸 옆으로 밀어야 하니, 당연히 힘이 분산되겠지.”
“그럼 반대로, 힘을 옆이 아니라 아래로 전달되게 만들면 어떨까?
중력이 도와주게끔.”
나는 그 말에 멈칫했다.
힘을 덜 쓰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힘을 활용하는 것.
그게 바로 다음 장으로 이어질 힌트였다.
대표는 천천히 말했다.
“우리가 설계해야 하는 건 창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 닿는 길이다.
그 힘이 닿자마자 흘러가는 구조.”
나는 다시 창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 무게가 다르게 보였다.
그건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구조를 움직이는 자원이 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