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 무게보다 무거운 건 힘이었다

by 한유신


1. 우리는 힘이 부족하다

“지금 우리는 힘이 부족한 거야.”

대표가 그렇게 말한 순간, 나는 줄다리기를 떠올렸다.

운동회에서 늘 벌어지던 풍경.

반에서 힘 좋은 애들은 맨 뒤로,

키 큰 애들은 앞쪽에.

나는 늘 중간에 섰다.

힘도 없고, 작전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 팀이 이기고 있어도 내 손엔 항상 무게감이 느껴졌다는 거다.

이기든 지든, 줄은 늘 당겨야 했다.

상대가 줄을 놓지 않는 한, 힘을 계속 써야 하는 구조였던 거다.


대표가 말했다.

“무거운 걸 옮기는 게 힘든 게 아니야. 계속 힘을 써야 한다는 게 더 힘든 거지.”

회의실에서 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창을 여는 힘은 한 번만 주면 되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 밀어야 했고, 밀면서도 계속 저항을 견뎌야 했다.

줄다리기에서 상대가 버티는 동안 계속 잡아당기듯이.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일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상대는 창이고, 우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은 아이일 수도 있고, 고령자일 수도 있다.

상대는 단열 유리로 된 100kg 가까운 창이고, 우리는 뼈 약한 손목으로 그것을 끌고 있는 셈이다.


“힘이 부족한 거야.”

대표는 다시 말했다.

나는 물었다.

“정확히 어떤 힘이요? 창을 움직이는 힘? 아니면 저항을 넘기는 힘?”

대표는 웃었다.

“좋은 질문이야. 그 질문이, 다음 단계로 가게 해줄 거야.”

나는 노트를 펼치며 중얼거렸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힘보다 더 많은 힘을 요구하는 구조겠군요.”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사람이 낼 수 있는 힘의 한계에서 문제를 다시 보게 됐다.


2. 두 갈래의 해결 방향


대표는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힘이 부족할 땐, 방법은 두 가지야.

힘을 더 세게 만들든가, 아니면 덜 필요하게 만들든가.”

회의실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 말은 너무 당연했지만, 동시에 낯설게 들렸다.


나는 생각했다.

더 세게 만든다는 건 무슨 뜻일까?

“스프링이나 가스 실린더를 써서 보조하는 방식이 하나 있어요.”

한 동료가 말했다.

“또는 손잡이 위치를 조절해서 지렛대 원리를 쓰는 것도 가능하죠.”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쳤다.

“그래, 그게 첫 번째 방향.

사람의 힘을 보완하거나 증폭시키는 장치를 붙이는 거지.”

하지만 그는 곧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런 장치를 붙이면 뭐가 달라지지?”

“구조가 복잡해지죠.”

“비용도 올라가겠네요.”

“유지보수도 필요해지고…”


대표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바로 그거야.

힘은 늘릴 수 있지만, 대가도 같이 따라와.”

그러고는 또 다른 방향을 열었다.

“반대로, 아예 덜 힘들게 만드는 방법도 있지.”


나는 중얼거렸다.

“창을 가볍게 만들면 되긴 하죠.

하지만 그럼 성능이 떨어지니까…”

대표가 맞장구쳤다.

“그렇지.

무게를 줄이면 단열도 떨어지고, 방음도 약해져.

그러면 좋은 창이 아니게 되지.”

회의실에는 생각의 무게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제야 또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창의 무게는 그대로 두되, 마찰을 줄이는 구조를 만들면 어떨까?


모헤어.

롤러.

창틀과 레일.


모든 접촉점이 곧 저항의 출발점이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두 가지 중에 하나야.

사람의 힘을 키우거나, 창이 요구하는 힘을 줄이거나.”

나는 조용히 적었다.

‘힘을 이기는 건, 힘이 아니라 구조일지도 모른다.’



3. 작용구역을 다시 그리다


“문제는 항상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아.

문제는, 어디에서 발생하느냐가 더 중요해.”

대표는 창의 구조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창 전체가 문제 같지만, 사실 사람의 힘이 닿는 지점,

그리고 그 힘이 전달되는 경로, 그 안에 있는 ‘작용구역’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는 거야.”


나는 창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내 손이 닿는 건 손잡이다.

손잡이는 프레임과 연결돼 있고, 프레임은 롤러를 통해 바닥 레일과 접촉하고 있다.

또, 프레임의 측면은 모헤어와 맞닿아 있다.


손 → 손잡이 → 프레임 → 롤러 → 레일

그리고

손 → 손잡이 → 프레임 옆면 → 모헤어


“이게 전부 힘의 경로야.”

대표가 덧붙였다.

“여기서 어딘가 하나라도 마찰이 크거나,

힘이 손실되면 사용자는 ‘무겁다’고 느끼는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문제는 전체가 아니라, 접촉이다.”

창이 아무리 잘 설계되어도, 사람이 닿는 그 작은 접점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용자는 그걸 ‘전체의 불편’으로 받아들인다.


“작용구역은 말 그대로 힘이 작용하는 구역이야.

그걸 재설계하면 전체를 바꿀 수도 있지.”

대표는 화이트보드에 조그만 사각형을 그렸다.

“이게 손잡이. 여기가 시작이야.

그 다음은 여길 통해 연결되는 롤러, 그리고 모헤어.

이 세 곳만 바꿔도 체감은 완전히 달라져.”

나는 노트에 크게 썼다.


작용구역 ≠ 창 전체.

작용구역 = 손잡이 + 롤러 + 모헤어.


대표는 덧붙였다.

“작용구역은 문제의 진심이 드러나는 곳이야.

그곳을 보면, ‘진짜 무엇이 힘든가’를 알 수 있어.”

나는 그 말을 따라 적었다.

‘진짜 문제는 언제나 가장 작고, 가장 구체적인 곳에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창 전체를 보는 대신, 손잡이 옆을, 프레임의 모서리를, 레일 위의 작은 틈새를 더 오래 보게 되었다.

거기서 문제는 조용히, 무게보다 무겁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4. 무게를 바꾸지 않고 움직이는 법


창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리고 그 무게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방음과 단열을 유지하려면 그 무게는 감당해야 하는 조건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날 밤, 우연히 창문과 전혀 다른 물건 앞에서 멈춰 섰다.

현관 옆에 세워둔 건조대.

빨래를 말리고 접으려다 문득 멈췄다.

건조대의 다리는 얇았다.

하지만 접을 때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


왜 그럴까?

자세히 보니, 다리 안쪽에 얇은 철심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에서 들어올리자 양쪽 다리가 동시에 안으로 접혔다.

나는 앉은 채로 관찰했다.

힘은 아래에서 위로 작용하고 있었고, 그 힘은 좌우로 갈라져 다리를 당기고 있었다.

“힘이, 방향을 바꾼다.”

나는 입을 다물고 되뇌었다.

힘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힘이 분산된 것도 아니었다.

힘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어릴 적 커튼줄을 당기던 장면이 떠올랐다.

줄을 당기면, 위에 있던 봉이 움직였다.

나는 커튼을 직접 밀지 않았다.

그저 줄을 아래로 당겼을 뿐인데, 무거운 커튼이 옆으로 움직였다.

나는 커튼의 무게를 이긴 게 아니었다.

내 힘이 방향을 틀었고, 그 힘은 곧 움직임이 되었다.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힘을 세게 하려 하지 마.

힘이 가는 길을 바꾸는 게 더 빠를 때도 있어.”

나는 노트에 조용히 한 단어를 적었다.


도르래


그리고 그 밑에 썼다.

‘무게를 줄이지 않고, 힘의 길이를 늘리는 법’

창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이미 창 너머의 구조로 가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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