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 문제는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by 한유신

1. 도르래는 구조가 아니라 시선이었다


우리는 결국 도르래를 적용했다.

줄이 드러나지도 않았고, 창의 형태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히, 도르래가 들어가 있었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도르래를 ‘기계’로 쓰지 마.

힘을 바꾸는 방식으로 써.”


그 말은, 우리에게 설계의 철학을 다시 세우게 했다.

우리는 줄을 창틀 안쪽으로 숨겼다.

미세한 케이블이 창의 하단을 지탱했고, 그 케이블은 내부 레일을 따라 도르래를 감고 뒤쪽 보조 장치로 연결되었다.

사용자는 여전히 손잡이를 잡고 창을 밀었다.

하지만 그 힘은 이제 직접 창을 미는 게 아니라, 안쪽 케이블을 당겨 도르래를 움직이는 힘으로 변환되었다.

창은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마치 창이 스스로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처음에는 아무도 바뀐 걸 몰랐다.

하지만 “왜 이렇게 부드럽지?”라는 말은 계속 들려왔다.

누군가는 말하길, “예전엔 왼손으로 열다가 오른손으로 마무리했는데, 이제는 한 손으로도 되네요.”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도르래야.

사람이 느끼지 못하게 힘의 방향을 틀어주는 장치.

보이지 않게 문제를 움직이게 만드는 거지.”

나는 노트에 썼다.

‘기존 구조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힘이 가는 길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창을 바꾼 게 아니었다.


2. 문제를 다르게 본다는 것


창은 이제 부드럽게 열리고 닫혔다.

도르래가 숨어 있는 줄도 모른 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창을 열었다.

내가 바라보던 문제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무게는 더 이상 버겁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 순간, 나는 오히려 ‘해결했다’는 감정보다 ‘이제 진짜 시작됐다’는 기분이 들었다.

대표는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이제 넌 문제를 보면, 바로 아이디어부터 내진 않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를 보면 먼저 생각해요.

힘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새고 있는지.

무게가 아니라, 흐름을 먼저 봐요.”


대표는 말했다.

“그게 구조를 보는 눈이야.

그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떤 문제를 봐도 겁내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문제를 피하거나 쌓아두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문제의 작용구역을 찾는다.

힘의 흐름을 따라가고, 저항이 태어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해결은 빠르지 않다.

하지만 방향은 잃지 않는다.

이제 나는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된다.

문제를 볼 수 있기만 하면, 그 문제는 언젠가 나를 풀어준다.

그리고 그 시선이야말로, 내가 이 회사에서 배운 가장 강력한 도르래였다.

3. 문제는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설치는 일주일 뒤였다.

고객사는 기존의 창이 너무 무거워 직원들이 여닫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의뢰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구조의 창을 트럭에 실었다.

도르래가 안에 숨겨져 있고, 손잡이는 각도를 살짝 틀어놨다.

레일은 그대로, 창도 그대로.

하지만 내부의 힘의 흐름만 달라졌다.

설치 당일, 나는 팀원들과 함께 현장에 나갔다.

팀원 중 하나가 줄을 고정하면서 말했다.

“이거, 진짜 잘 되면 기사님들 좀 놀라실 텐데요.”

다른 팀원은 창의 밸런스를 맞추며 말했다.

“설치하고 나면 아무도 우리가 도르래 썼는지 모를 거예요.”

“그게 제일 좋은 거지.” 대표가 웃으며 대답했다.

설치가 끝나고, 고객사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고 창을 밀었다.


찰칵.

창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는 눈을 한번 크게 깜빡이더니 다시 창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이거… 뭐예요? 왜 이렇게 가벼워요?”

대표가 대신 대답했다.

“창은 그대로인데, 당기는 힘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무게가 줄었나 했어요.”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게는 여전히 무겁습니다.

그냥, 당신의 손에서만 가벼워졌을 뿐이에요.


설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표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이제 다들 도르래 한 개쯤은 머릿속에 들고 다니는구나.”

팀원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마다 도르래 감는 스타일도 다르겠죠.”

대표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지 마라.

때론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그 문제는 스스로 풀리기 시작하니까.”

나는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노트를 꺼냈다.

빈 페이지에 천천히 글을 적었다.

문제는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무게를 미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 무게가 어디서부터,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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