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창의성은 재능이 아니라 구조다

창의 루틴

by 한유신

디자인에 집중하라, 김영사

창의성은 과학이다 (Creativity as an Exact Science, 1984). 인터비전

(2004). 열정과 기질, 북스넛

창의성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타고난 재능’으로 여겨진다.

학교와 직장에서 “저 사람은 원래 창의적이야”라는 말을 쉽게 듣는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창의성을 특정한 사람만 가진 선물처럼 만들고, 대다수 사람은 스스로를 창의성과 무관한 존재로 느끼게 한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다양한 분야의 창의적 인물을 연구하며 창의성이 유전적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창의성이 환경, 경험, 지속적인 훈련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한다고 결론 내렸다(Gardner, 1993).


신경과학은 창의성이 훈련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은 반복 학습과 새로운 자극이 뇌의 연결망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Draganski et al., 2004). 즉, 창의적 발상도 반복적으로 자극하면 신경 회로가 강화되고 더 쉽게 발현된다.


테레사 아마빌레(Teresa Amabile)는 창의적 성과가 전문성, 창의적 사고 기술, 내적 동기라는 세 요소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Amabile, 1996). 이 중 창의적 사고 기술은 반복 훈련과 습관을 통해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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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을 쓰는 작가, 매일 스케치를 하는 디자이너, 매일 실험을 기록하는 과학자는 창의적 발상을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만든다.


창의성 연구를 구조화한 대표적인 방법론 중 하나가 TRIZ(창의적 문제 해결 이론)다.

겐리히 알츠슐러(Genrich Altshuller)는 수천 건의 특허를 분석해 모든 창의적 발명이 일정한 패턴과 원리를 따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40가지 발명 원리와 모순 해결 방법으로 체계화했다(Altshuller, 1984).

TRIZ는 창의성을 ‘문제를 정의하고, 모순을 해결하며, 이상해결안을 찾는 구조화된 과정’으로 본다.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역시 창의성을 구조화한다.

스탠퍼드 d.school과 IDEO가 발전시킨 이 방법론은 공감(Empathize) → 문제 정의(Define) → 아이데이션(Ideate) → 프로토타입(Prototype) → 테스트(Test)라는 다섯 단계로 진행된다(Brown, 2009).


두 방법론은 접근 방식과 용어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창의성을 ‘즉흥’이 아닌 ‘반복 가능한 구조’로 본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역사와 현실 속에는 이러한 구조와 루틴이 창의성을 키운 사례가 많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매일 관찰 일기를 썼다. 그는 물이 흐르는 모습, 사람의 표정 변화, 빛과 그림자의 이동, 식물의 줄기 구조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기록했다. 이 습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물의 형태와 원리를 반복적으로 분석하고 연결하는 훈련이 되었고, 그 결과 예술뿐 아니라 해부학, 공학, 기계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퍼스트 프린시플(First Principle)’ 사고법을 루틴화했다.

그는 문제를 기존 관점에서 단순 비교하거나 응용하지 않고, 물리학처럼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 쪼갠 뒤 다시 조합한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존 가격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원자재 가격부터 제조 공정까지 재설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접근은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강력한 루틴이 되었다.


삼성전자의 일부 개발 조직은 ‘오답 회의’를 운영한다. 잘 작동하는 제품이나 시스템을 가져와 의도적으로 결함을 찾고, 있을 법한 문제 상황을 가정하여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정상 상황에서도 숨겨진 위험과 개선 기회를 발견하는 훈련이다. 덕분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설계 개선이 가능해졌다.


핀란드 교육은 학생들에게 ‘실패 숙제’를 내준다.

정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실패를 경험하고, 그 실패를 분석해 개선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반복하며 학생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문제 해결 과정을 즐기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학습이다.


개인의 경험에서도 루틴의 힘은 드러난다. LG생산기술원 재직 시절 운영했던 ‘생트집의 날’이 그렇다. ‘생트집’은 ‘생기원 TRIZ 집중의 날’의 줄임말이자,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억지로 ‘트집’을 잡아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각 부서는 현재 아무 문제가 없는 설비나 공정을 하나씩 선정했고,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혹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제안했다.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아이디어도 일단 수집한 뒤 일부를 구체화했다. 몇 번 운영되지는 않았지만, 이 자리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일부는 실제 개선안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이 ‘문제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라는 태도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모든 사례는 창의성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뇌는 훈련에 반응하고, 구조와 루틴은 창의성을 재현 가능하게 만든다.

TRIZ와 디자인 싱킹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둘 다 창의성을 ‘반복 가능한 과정’으로 보고, 그 과정을 실천 가능한 형태로 만든다. 개인의 작은 습관과 의도적인 훈련이 쌓여 거대한 혁신의 기반이 된다.



참고문헌 · 출처

Gardner, H. (2004). 열정과 기질, 북스넛.

Draganski, B., et al. (2004). Neuroplasticity: Changes in grey matter induced by training. Nature, 427(6972), 311-312.

Amabile, T. M. (1996). Creativity in Context. Westview Press.

Altshuller, G. (2006). 창의성은 과학이다. 인터비전

Brown, T. (2019). 디자인에 집중하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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