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루틴
창의적 활동은 마음속에서만 머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그것을 꺼내고, 손을 움직이고,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시작은 생각보다 어렵다.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책상을 치우거나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다른 할 일을 찾는다. 행동을 미루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시작의 문턱’이 높게 느껴진다.
심리학자 비제이 파그(B.J. Fogg)는 습관 형성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트리거’를 강조했다(Fogg, 2019). 트리거란 행동을 촉발하는 신호다. 아침에 커피 향을 맡으면 커피를 마시는 행동이 시작되듯, 창의 활동에도 시작을 알리는 고유한 신호가 필요하다.
예술가이자 안무가인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는 매일 아침 5시에 집을 나서 택시를 잡아 체육관으로 향하는 것을 ‘창작의 시작 의식’으로 삼았다(Tharp, 2003). 그녀에게 창작의 시작은 택시를 부르는 순간이었다. 이 단순한 행동은 몸과 마음을 ‘창작 모드’로 전환시켰다.
창의적 활동의 시작 신호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어떤 작가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늘 같은 음악을 듣는다. 어떤 디자이너는 첫 선을 긋는 행위로 작업을 연다. 이런 반복적 의식은 뇌에게 “지금부터 창의적 일을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에너지를 만든다.
TRIZ 관점에서 시작의 신호는 ‘문제 해결 프로세스의 첫 단계’를 촉발하는 장치다.
문제 정의를 위한 첫 질문, 시스템 분석을 시작하는 도표 그리기, 자원 목록 작성 같은 간단한 행동이 그 역할을 한다.
디자인 씽킹에서도 초기 ‘공감’ 단계에서 현장을 찾고, 관찰을 기록하는 작은 행동이 전체 프로젝트를 움직인다.
CID에서는 상상력 훈련 전 특정한 이미지나 단어를 꺼내는 것이 신호 역할을 한다.
저자 역시 창의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활용해 왔다. 특허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늘 같은 노트와 펜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펜을 쥐고 첫 단어를 적는 순간, 머릿속이 ‘발명 모드’로 바뀌었다. 나중에 회고해 보니, 이 간단한 신호 덕분에 아이디어 구상이 지연되지 않았다.
시작 신호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 특정한 사물이나 소리를 활용하는 방식, 행동의 순서를 고정하는 방식 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같은 신호를 반복할수록 뇌는 그것을 특정 행동과 강하게 연결한다.
핀란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창작 종’을 사용한다. 수업 중 창작 활동을 시작할 때마다 종을 울린다. 학생들은 종소리를 들으면 책을 덮고 창작 도구를 꺼낸다. 이 간단한 신호가 창작 활동을 신속하게 시작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몰입도도 높였다.
시작의 신호는 창의 루틴의 ‘점화 장치’다. 신호가 있어야 엔진이 켜지고, 켜진 엔진이 일을 시작한다. 창의성은 실행을 통해 현실에 드러나고, 실행은 시작에서만 출발한다. 따라서 각자는 자신만의 확실한 신호를 찾아야 한다. 커피 향일 수도, 음악일 수도, 노트 첫 장을 여는 행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매번 같은 신호로 몸과 마음을 창의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