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생각의 지도를 그리지 못한 것뿐이다.
문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그것을 한 번에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제나 거대해 보이지만, 그것을 작게 쪼개면 단순한 조각들로 흩어진다.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순서를 따라가 보자.
그리고 조건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라.
세상에서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오직 ‘빅뱅’뿐이다.
그 외의 일은 모두 순서를 가지고 흘러간다.
다르게 생각하려 애쓰기보다, 먼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일이다.
스스로가 문제를 인식하고 해석하고 결론 내리는 그 과정을 한 번 관찰해 보라.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이미 깨달음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사고의 방향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목적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과정을 먼저 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또 다른 사람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체를 바라본다.
그러니 남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사유는 모방될 수 없고, 각자의 내면 구조 속에서만 자란다.
감정 또한 문제 해결의 일부다.
걱정해서 바뀔 수 있는 일이라면 걱정하면 되고 화내서 바뀔 수 있는 일이라면 화를 내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단지 싫은 상황을 피하려고 감정을 터뜨릴 뿐이다.
화를 낸다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다.
강아지가 낯선 사람에게 짖듯, 우리는 마음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소리를 높인다.
상대가 화를 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약함을 숨기려는 또 다른 방어일 뿐이다.
그 사실을 알면, 굳이 함께 흔들릴 필요가 없다.
환경은 감정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우리가 특정 상황에서 화를 내는 이유는 그 환경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그 환경을 인식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벗어나면 된다.
화를 내는 대신 환경을 바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기 보호다.
스스로 깨닫는 것을 명상이라 부른다면, 나는 지금 명상 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동안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이제 하나로 모여 정리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느냐가 다를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비록 그것이 ‘개똥철학’이라 불릴지라도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철학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중심이 된다.
더 이상 남의 기준에 흔들리기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가진 것이 없어도 이미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과거보다 여전히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젊음이다.
하지만 버킷리스트를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하던 일을 줄이고, 익숙한 속도를 늦추며, 이제는 ‘밖에서 찾던 것’을 ‘안에서 찾는 시간’으로 바꿀 때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확신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밖으로 확신을 구하러 나선다.
그러나 진정한 확신은 언제나 내면에서 시작된다.
생각의 지도는 이미 내 안에 있다.
다만, 아직 펼쳐보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