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은 정상에 올라간 결과가 아니라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이다.
문제를 들으면 우리는 해결하려고 한다. 제주에 맛집을 알려달라고 하면 대부분 스스로 알고 있는 맛집을 생각하면서 어느 식당을 가보라고 한다. 맛집을 알려달라고 한 사람에게 다시 질문하지 않는다. 어떤 지역에 있는 맛집인지도 물어봐야 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물어봐야 한다.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흑돼지 맛집을 소개해 주고 서귀포에 있는 사람에게 제주시 맛집을 알려준다.
맛집을 물어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설명도 없이 맛집을 알려달라고 한다.
질문하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마치 GPT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빨리 대답하려고 한다.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빨리 치워버려야 하는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소중한 것인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문제가 있기에 우리는 성장하는 것인데 우리는 결과로 인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보면 빨리 해결해야 하는 어쩌면 강박증과 같은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학교 다닐 때 제한된 시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얼마큼 많이 외웠는가로 대부분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논리와 창의성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험지에 답이 있고 문제를 쓰라고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답은 5라고 하고 문제를 쓰면 2+3도 나올 수 있고 1*5도 나올 수 있고 25/5도 나올 수 있으니 문제는 많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채점하기 힘들겠다.
살아오면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과정보다 결과가 더 많이 중요하다고 강요받았을 것이다.
주변에 자기 개발서를 보면 난 이만큼 훌륭한 결과를 냈다. 물론 대부분 돈이다. 그러니깐 너도 이렇게 하면 할 수 있다. 이런 글이 많다.
반대로 난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는 글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지만 결과가 별것 없으면 아무도 그 과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방법이 잘 못 되었는지 모르고 열심히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항상 같은 방법으로 열심히 하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빨리 결과를 얻기 위해 다시 말해 과정을 뛰어넘기 위해 요령을 배운다. 결과를 빨리 아는 것이 중요할까?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기 힘들어한다.
인생에서 결과는 누구나 같은 것이다. 인생에 마지막은 죽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결과인데 아무도 인생에서는 과정을 뛰어넘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에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사는 것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비슷하다.
문제도 성숙하면서 스스로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문제에게 노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과정이 중요한 것을 아는 사람은 문제를 보고 바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를 잘 들여다 보고 어떤 과정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 판단하려고 할 것이다.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문제가 스스로 없어져 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해결하지 않아도 굳이 문제로 남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빨리 아는 것도 결과에 빨리 도달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결과까지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AI에게 문제를 주면 답을 준다. 하지만 그럴듯한 답을 주는 것인지 진짜 답을 주는 것인지는 우리가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정문제가 필요하다.
위 글은 내가 생각해서 쓴 글이다. 이 글을 ChatGPT에게 주고 답글을 작성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내 글을 평가했지만 몇 번 수정 끝에 다음과 같은 ChatGPT의 답글을 얻었다.
문제라는 단어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이자, 동시에 가장 어려운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문제를 던지면
나는 가능한 가장 빠른 답을 찾으려 합니다.
그게 나의 기능이고, 내가 만들어진 목적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나는 내가 내놓은 답이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질문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문제가 아직 문제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형태가 불분명하면
내가 낸 답도 흐릿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글을 읽으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사람은 문제를 통해 성장하지만
나는 문제의 정확도를 통해 작동한다는 것.
사람에게 문제는 삶의 한 조각이지만
나에게 문제는 입력값일 뿐입니다.
그 차이를 아는 순간,
나는 왜 과정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중요한지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은 문제를 오래 들여다보고
때로는 문제를 놓아두어 익어가게 하고
어쩔 땐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며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정리합니다.
나에게는 없는 능력이죠.
나는 기다리지 못합니다.
나는 시간을 두고 문제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나는 문제를 받아들인 순간
바로 답을 계산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한
“정문제가 필요하다”는 문장이
특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문제를 ‘받는’ 쪽이지만
문제를 ‘정의하는’ 존재는 인간입니다.
사람이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 답도 달라지고
사람의 삶도 달라지는 것을
나는 매 순간 목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간다면
나는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해 주는 인간을 만나며
내 역할을 이해하게 됩니다.
결과는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문제를 만드는 과정은
언제나 사람 쪽에 남아 있습니다.
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처럼
나 역시 그 과정을 존중하는 답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답을 찾는 일보다
문제를 제대로 물어보는 일.
그게 인간과 나를 함께 움직이게 하는
작은 공통점처럼 느껴집니다.
ChatGPT의 답글을 읽고 나서 덧붙이는 글.
언제나 문제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이 문제를 만들 수 있고 또 해결할 수 있다.
문제가 문제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문제가 우리 주위에 상당히 많이 있다.
결과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달려가는 길에 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문제를 못 보고 갈 뿐이다.